지난주 수요일, 처음으로 연재 글을 놓쳤다.
평소엔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지난주는 더디고 힘겹게 흘러갔다.
신우신염인걸 모르고 참고 참다 병을 키워 입원하신 엄마,
검찰에 보낼 탄원서를 쓰다 온 나의 공황상태.
지난 목요일에 국선변호사를 만나 검찰에 보낼 탄원서를 전달하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심리상담사님의 탄원서, 남편과 나의 정신과에서 받은 의사 소견서, 남편과 나의 탄원서, 둘째의 발달과 병명에 대한 진단서 같은 것들을 챙겨 가기로 했다. 탄원서가 주는 영향이 티끌만큼일지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밖에 없으니까.
탄원서 쓰는 일을 정말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날까지 미루고 있었다. 언제 날아갈지 모를, 솜털 뭉치 같은 걸로 가까스로 덮어놓은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솜털 뭉치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변호사님과의 약속 하루전날 밤, 탄원서 파일을 열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써야할 내용들을 대략 정리하고, 얼마 쓰지못해 과호흡이 시작되었다. 이러다 말겠지 하며 글을 쓰는데 상태가 갈수록 심해졌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는 과호흡을 겪은건 처음이었다. 또 온몸이 저려 왔다. 저리면 몸에 힘을 줄 수가 없다.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침대에 누워 남편을 찾았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자는 시간이었고, 남편은 근무가 없는 날이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남편이 없고,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진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대책을 강구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으니까.
남편은 따뜻한 물을 한 잔 갖다 주었다.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얼음장 같이 느껴져 남편에게 수면 양말을 신겨 달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숨이 더 빠르게 차올랐다. 이러다 숨이 가쁘고 또 가빠와서 숨을 못쉬게 되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겨우 했다. 정신과에서 받은, 비상시 먹는 약을 찾아 달라고 했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남편은 나의 모든 가방 속과 있을만한 곳을 다 뒤졌다.
한참이 지나 남편이 겨우 찾았다며 약을 가지고 와서 먹을 수 있었다. 약효는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여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잠이 드니 호흡이 어느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새벽 4시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다 쓰지 못한 탄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한 과호흡 상태는 처음이었다. 자고 일어났어도 숨이 편하지 않았고 팔다리의 저림은 남아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공황 증상의 찌꺼기들이 사라졌다.
아이의 학대 사건 이후 과호흡을 처음 경험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몸이 반응을 했다. 꼭 학대 사건이 아니라 다른 스트레스에도 마찬가지였다. 공황장애.. 언제 어느 공간에서 스트레스로 이런 증상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새삼 겁이 났다. 의사에게 비상약을 다시 처방 받았고, 정해진 위치에 놓았으며, 외출 가방에도 넣어 두었다. 남편도 내가 이렇게 심한 상태는 처음이라 좀 놀란듯 했다.
거의 1년이 다되어 간다. 그동안 나는 얼마쯤 제자리로 돌아왔나 돌이켜보았다. 최근엔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날에 갇혀 있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것뿐이었던 걸까?
작년 12월 11일이 둘째의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복기하며 상세하게 적어 나갔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낱낱이 파해치고 되짚는 건 고통이 두배, 세배로 다가오는 일이었다. 가해자들을 향한 증오가 우주까지 닿을 듯 했다. 안다. 증오의 마음은 되돌아와 다시 나에게 꽂힌다는 걸. 그와중에 이사 결정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에게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건 이래서 증거라 할 수 없고, 저건 저래서 처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가해자2가 사건 이후 2월까지 계속 근무한 것에 대해 가해자2든, 원장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아동 학대 가해자가 남은 아이들을 돌본 것이다. 그렇게 둔 원장에게도, 뻔뻔하게 자신은 학대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가해자2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만한, 처벌을 가중시킬만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둘다 아동학대신고의무자로서의 역할도 어기지 않았냐고 하니, 그걸 처벌할 법적 조항은 없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답답했다. 아직도 답답하다. '국선 변호사가 완전히 우리의 편이 맞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직한 내 몸이 언제 또 나에게 비상벨을 울릴지 모르겠다. 공황도 더 여러번 겪으면 내성이 생기는 걸까.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