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의 틈새

by 코스모스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의 학대사건 이후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나의 아이들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있을 땐 우울함의 기운을 저기 뒤로 보내놓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이것조차 곤역이었으나 그 시간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고작 5세, 8세인 아이들이 한 어른을 살리고 있다.


며칠전, 남편과 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세랑이(첫째)는 갑자기 그날 우리에게 줄 쿠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등 밟아주기, 꼭 안아서 충전 해주기, 설거지 해주기, 웃긴 춤 춰주기 등등이 있는 쿠폰이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절로 났다.

생각해보니 첫째를 안으며 놓아주지 않고, '엄마 지금 충전중이야. 너무 좋아.'라고 말하곤 했더랬다. 언젠가부터 첫째를 안고 충전하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를 꼬옥 안고 아이의 냄새를 맡는 그 찰나는 정말 나를 충전시켜주는 순간이었다. 쿠폰에 그 말이 있는 걸 보자 아이에게 그 쿠폰부터 쓰겠다고 했다. 아이도 그 때가 자신이 사랑받는,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는 시간었겠다 싶었다. 이런 순간이 있음을 많이 놓치고 지내온 것 같다.


우울함의 틈새로 환한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도 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들어오길 기다리기만 하며 절망하고 있을게 아니라, 분명 그 틈새로 따뜻한 빛이 들어올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리라. 들어온 빛의 온기로 틈새를 조금씩 벌려 나가며 자주, 오래 빛을 쬐고 싶다.


노이(둘째)는 요즘 첫째가 하는 것을 다 따라한다. 밥 먹을 때도 첫째가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면 자기도 입에 밥을 넣고, 물을 마시면 자기도 물을 마신다. 세랑이가 웃긴 춤을 추며 빙빙 돌면 까르르 웃으며 따라한다. 세랑이가 점프를 하면, 비록 점프가 안될지라도 몸을 살짝 웅크리고 발을 굴렸다 몸을 피며 따라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책읽는 자세도 똑같다. 쇼파에 앉아서 허벅지에 쿠션을 받치고 그 위에 책을 놓고 읽는 모습도 따라한다. 비록 글자를 읽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 모습들이 너무 웃긴다.

어떤 때 노이는 주변 구경을 한다고 한참을 더디게 걷는다. 내가 아무리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그 때 세랑이가 노이에게 뛰어가서 '나 잡아봐라~'하며 뛰면 쪼르르 언니를 잡으러 뛰어온다. 세랑이와 노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고 있다.

이런걸 보는 순간이 나에겐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내가 조금만 말투가 달라져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삐졌어요?'라고 하는 세랑이.

내가 너무 좋아 끊임 없이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

이 책 너무 재밌다고 '엄마 제가 읽어드릴까요?'라며 책을 읽어주는 세랑이의 목소리.

아무리 숙제가 많아도 결국은 다 해내는 아이.

혼자 이리저리 거울을 보며 옷을 고르고 어떤 머리띠가 좋을지 고민하는 사랑스런 우리집 초딩.


언니랑 뭘 하고 있으면 꼭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갈라놓는 노이.

나의 왼손은 늘 자기 것인듯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꼭 왼손을 잡는 아이.

현관에서 들어오지 않고 있어서 보니, 신발장 거울을 보며 유치원에서 연습하고 있는 학예회 춤을 어설프게 추고 있는 아이.

말은 못하지만 엄마, 언니와 같이 동요를 어설프게 흥얼거리는 아이.

가끔 차에서 잠이들어 집에 데리고 오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기절한 듯이 쌔근쌔근 자는, 아직은 영락없는 아기같은 5세.


빛은 틈새로 하루에도 수십번 들어오고 있다.

내가 그걸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가끔 그 틈새가 좁아져 빛이 들어오기 힘들어지더라도 틈새를 메꾸지만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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