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은 마음

by 코스모스

아이의 학대 사건을 신고하고 우리에게 국선변호사가 배정 되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국선 변호사 말이다. 나라에서 피해자를 도와주는, 피해자가 수임료를 내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변호사.


우리는 국선 변호사와 연락을 하고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연락이 닿기까지 전화를 여러번 걸고 또 걸었다.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법률구조공단의 로고송이 흘러 나온다. 처음 듣는 노래지만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여러번 들었다.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릴 도와주어요~'

나는 법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렵고, 그래서 불편하고,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노래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희안하게도 첫 통화는 이렇듯 힘들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통화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변호사님의 첫인상은 얼굴에 '저 변호사입니다.'라고 적힌 듯이 너무나 변호사 같은 외모였다. 목소리와 말투는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을 전혀 알 수 없게 무미건조하기도 했다.


3월, 우리가 경찰청에 가서 학대 장면이 담긴 CCTV를 처음 보는 날과 마지막인 다섯번째로 보는 날 우리와 동행해 주었다. 고마웠다. 영상을 보는 일은 한두 시간에 끝나지 않고 기본 4-5시간 정도여서 변호사님 입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과정이 처음인 우리에게 상당한 의지가 되었다.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어 변호사님께 CCTV 열람이나 등사를 요청할 수 있냐고 물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장애아 학대 사건의 첫 재판 이후에 피해자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사님은 안된다고 하셨다. 두 세번이나 물었는데 그렇게 대답했고, 민사에 가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법에는 가능하다고 나와있었다. 물론 아주아주 특별한 경우, 그래서 변호사가 강력하게 어필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드물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변호사님께 물어보았다. 다른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지 못한다고 법에 나와 있지 않는 거라면 신청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절차상 꼭 변호사를 거쳐서 해야 하는 일이였다. 역시나 안된다는 답만 하셨다.


나는 아이 학대 사건의 재판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싶었다. 되든 안되든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에서 후회까지 남아버리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변호사에게도 했다. 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으니 신청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변호사님은 짜증이 조금 뭍어난 말투로,

"알겠습니다. 신청해 볼게요. 그런데 어머니, 안 될거예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는, 그 결과보다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나 역시 같은 말만 반복되는 대화에 지쳐 말투가 곱지 않게 나갔다.

"어머니, 그러면 다른 국선 변호사로 바꾸셔도 되니까 그렇게 하시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안다. 변호사님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안되는걸 왜 굳이 신청하고 싶어하는지, 내가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보지 않고 감정을 잔뜩 담은 내가 이해가 안 됐을 것이다. 변호사님과 나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법인의 사설 변호사를 선임했다. 돈이 얼마나 드느냐도 중요하지 않아졌다. 이전에 장애인 복지관에서 뇌병변 장애아 부모 교육에 참여했다가, 역시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복지관 직원분에게 법률 상담을 받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지 물었었다. 다행히 우연치 않게 소개받은 변호사님과 인연이 닿았다. 감사한 일이다. 변호사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열람 신청을 해보겠다 하셨다. 그냥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다음엔 내가 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는지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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