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의 시험준비는 대부분이 벼락치기였다. 공부양이 많아져서 벼락치기가 불가능 했던 고3, 대학시절은 제외하고다.
해야할 일 중 우선순위는 높지만, 죽어라 하기싫은 일은 미루고 미루다 기한이 턱끝까지 차면 후다닥 해내는 식이었다. 어느 정도는 그게 잘 통한다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중요하지만 천천히 해도 되는 일, 중요하고 또 빨리 해야 하는 일, 중요하지도 않고 천천히 해도 되는 일, 중요하진 않지만 빨리 해야 하는 일. 넷 중 중요하지만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나 중요하지도 않고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완전 청개구리다. 빨리 해내야 하는 일은 대부분 미뤘다. 당장 눈앞에 불덩이가 떨어져서 해야 효율이 높다고 생각했다.(전형적인 이과인인 나는 적은 투입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효율'을 중요시했다....고 하면 변명일까?)
나의 일상은 아직도 어릴 때와 비슷하다.
이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비움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마음을 먹은지는 한참 됐다. 한달 즈음? 막상 실천한건 하나도 없다. 아이들 책, 안입는 옷, 안쓰는 식기, 자질구레한 아이들 장난감 등등. 이걸 벼락치기로 한다면 결국은 '이사 가서 정리하지뭐.' 또는 '우울증 때문에 도저히 의욕이 안생겼어.' 라고 합리화 할게 뻔하다.
다 모아 버리고 미니멀로 사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과연 가능할까?
남편은 옷 욕심이 많아 매일 새 옷을 입는 것 같이 안보던 옷들이 자꾸자꾸 나온다. 첫째 세랑이는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며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행여나 실수로라도 잘못 버리면 큰일 난다. 어릴 때도 밖에서 열매나 나뭇잎, 꽃이나 솔방울, 도토리 같은걸 주워와서 한참을 못버리게 했다. 나뭇잎이 말라서 바스라진 걸 치운 게 한두번이 아니다. 아이가 잊었겠지 싶을 즈음 몰래 버려야 한다. 일단 이 두 사람부터 내 미니멀 꿈에 거대한 장벽이다. 게다가 세랑이와 노이는 3살 차이이지만, 실제론 몸도 정신도 6살 정도 차이라 노이 물려준답시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까지.. 내 집에 내가 사는 건지, 짐들이 사는 집에 내가 들어온건지 아리송하다.
이사라는 명분이 있으니 짐들에게 내어준 내 자리를 찾아야 할 때이다.
이번 만큼은 벼락치기를 하지 않을 것이고, 물건에 미련을 두지 않고 아주 많이 비울 것이다.
혹시 나태함에 져서 또 짐을 이고지고 살게 될까봐 결연한 의지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한편으론 이걸 해내고 나면 엉망인 내 마음도 조금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등떠밀려 가는 이사라도, 미니멀로 가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일'부터는 반드시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