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여행의 기억

by 코스모스

누구나 인정하던 여행 매니아였다. 시간만 되면 배낭을 메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녔다. 용기와 호기심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는 용기있고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억눌리고 눈치보며 살던 나는 자유를 느끼며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갔다. 20년이 넘도록 몰랐던 내 자신을 알아가는 그 시간이 소중했고 그만큼 행복했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의 여행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뭐든 휴대폰 화면의 정보를 찾아 의존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제대로된 '아날로그' 여행이었다.

두꺼운 가이드북을 정독해가며 여행을 준비하고(론니 플래닛을 좋아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 미리 예약 같은걸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고작 숙소 몇개와 오가는 비행기 정도였다.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타국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비일비재했고, 다시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갈 기회만 엿봤다. 한국이 아닌 지구 위 어딘가에서의 일몰은 눈물나게 아름다웠고, 다양하고 신기하기까지 한 문화들과 그 속에서 느끼는 사람의 따뜻함이 좋았다.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집착과 오만함을 경계할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새벽에 먹는 찐한 삼계탕 국물 같은 따뜻한 밥 한끼, 원빈을 좋아한다며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가족을 소개해 준 미얀마 소녀, 라마단 기간임에도 나에게는 밥을 내어 주던 터키 예실라다의 가족, 인도 분디에서의 마을 연날리기 축제, 영화관에서 현지 개봉 직후 본 세 얼간이, 자이살메르 성벽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보던 책, 우연히 만난 미국인 친구들이 알고보니 한국의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된 순간, 갈때마다 심장이 뛰는 태국의 카오산로드... 이런 행복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을 것이다.

눈물나게 외로웠던 베트남 사파, 돈 아끼려고 고른 미얀마 어느 동네 젤 싼 숙소의 감옥같은 방, 추워서 죽을 수 있다는 게 어떤건지 알게 해 준, 사기당해서 탄 인도의 고물 야간 버스, 목적지인 산토리니가 아닌 이름도 모르는 섬에 내린 걸 알고는 전력질주 하여 겨우 다시 탔던 페리.. 이런 위기의 순간들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마찬가지다.


지구에 사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인 나는, 결국 우주의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온몸으로 부딫히며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도. 아무리 예쁘고 살고싶은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갔더라도 돌아갈 따뜻한 집이 있고, 내 주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삶이냐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억들을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며 앨범을 정리하다 끄집어 내어진 빛나던 시절의 값진 경험과 기억들이 한순간 쏟아지듯 우르르 밀려왔다. 지금같이 AI에게 내 선택을 의지할 수 있는 시대에는 결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사라진 것 같이 느껴지는 삶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목메지 말고, 삶을 즐기며 감사한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어느 사건 피해자의 우울증은 어찌 보면 손바닥 뒤집기처럼 왔다 갔다 하다 나도 모르는 순간 나아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 뇌가 아주 조금씩 낫고 있나 싶기도 하다.


우주의 먼지가 왜 무거워지려고 안달을 하는가. 먼지 주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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