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멀어지면

by 코스모스

이사를 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이사를 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나의 마음 상태이다.

신기하게도 이사하고나서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학대한 어린이집을 매일 보고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나의 일상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이사를 하고야 깨달았다. 사건이 있은지 일 년이 지났지만 그 앞을 지나다니는 건 내 숨통을 조이고, 몸을 긴장시켰다. 늘 뭔가 갑갑하고 우울하고 몸이 축축 늘어졌다. 아파트 밖에서 만나는 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괜찮은 척을 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아이 어린이집의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의 엄마들은 놀이터만 가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소단지 아파트라 자주 마주치는데, 그들이 나를 안쓰러운 듯 보는 시선이 싫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만 괴롭혔다는 사실, 그들의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상기되어 내 온몸을 찔러댔다. 처음에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똑같이 학대를 당했을까 봐 불안해했었다.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아무렇지 않게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계속 보냈다. 내 고통을 같이 느껴달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편하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들은 잘못이 없지만 그냥 내 마음은 그랬다. 머리로는 그들의 선택을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파트의 어린이집 안에 낯 두꺼운 원장이 있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다. 언제 문을 열고 나와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내가 그 마주침에서 의연할 수 없을 것이란 건 당연한 일이다. 머리채를 잡든, 욕을 하든, 모른 척하고 지나치든 금방 온몸이 굳어버렸을 것이다. 호흡이 다시 가빠졌을 것이다. 늘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일 년을 넘게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니 생각도 덜 났고, 몸이 긴장하는 순간도 거의 없어졌다. 이번에 이사를 결정한 일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최고의 선택이었다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처음에는 왜 피해자인 우리가 떠나야 하는지 화가 났었다. 하지만 생존의 문제에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일보후퇴. 살기 위해서 한발 물러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진리이다. 눈에서 멀어지니 확실히 생각이 덜나고, 쓸데없는 마음 소비가 확연하게 줄었다. 이전에는 내 우울증이 나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희망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고작 도보 15분 내외의 집으로 이사 왔음에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예전에 살다 이사한 집들은 뭔가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있었다. 이번에는 뒤도 안 보고 돌아설 정도로 오만 정을 다 떼고 나왔다.

고통을 눈앞에서 제거하는 것은, 도망치고 싶다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명한 선택이다.

이전 28화아날로그 여행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