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게 위로 04화

비밀통로와 저녁노을 같은 것

고독해야 보이는 것

by 낙유

독서와 운동은 시간을 내서 열심히 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열심히 고독해져야 한다.


언제부턴가 조용하고 고요한 것을 견디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노래, 영상, 각종 뉴스에 라디오까지 온갖 불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할 기세로 눈과 귀를 자극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정신없는 현실은 재미를 주면서 생각하기를 빼앗아 간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좇아야 하거늘,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는 이를 쉬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


고독은 사전적으로 외롭고 쓸쓸하다 정의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심오하다.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어지는 숲에 가려진 비밀통로 같다고 할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여름날,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기 위해 먼저 마주해야 하는 저녁노을 같은 것이다. 그러니 고독이라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우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비밀통로를 지나고, 저녁노을을 뒤로하면 새로운 세계와 반짝이는 별들은 또 다른 내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익숙하고 포근하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보물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 진리들이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해줄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 중 하나가 기다리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먼저, 미용실에서 머리 커트가 다 끝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다. 머리 스타일에 특별한 관심이 없을뿐더러, 흰머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매번 염색을 권하는 미용 디자이너들의 말에 지쳐있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한쪽씩 잘려 나가며 깔끔해지지만 조만간 다시 너저분해 지기에 미용실에 앉아있는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귀를 울리는 면도기 소리를 뒤로 하고, 거울 속에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얼마 만에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하는지 한동안 잊었던 내면에 다가가 묵은 의문과 대답, 생각을 나누며 우주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듯했다. 너무도 반가워 거울에 대고 악수를 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후에는 미용실에 앉아있는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어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형체는 없으나 또렷이 들린다. 바로 내 목소리가.


당신은 누구인가? 을 잃지는 않았나? 잘 살고 있나? 산다는 건 뭔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나?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나? 무엇을 좋아하는가? 타인을 잘 살필 줄 아는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게 뭔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잃고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거나 하지는 않고? 사랑하며 살고 있나? 어른이라는 게 뭐지? 과연 어른이 되었는가?


문답을 주고받다 보면 느끼는 바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그동안 나를 너무 돌보지 않고 생각 없이 막살게 내버려 둔 미안함이다. 우리는 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안에는 또 다른 '나'가 있다. 이 또 다른 '나'를 자아라고 부른다. 자아는 내면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좋은 세계를 만들어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이나,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끊임없이 불안한 감정을 가진다거나 등의 사념이 가득한 좋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좋지 못한 내면세계는 외부세계를 사는 나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그 원인을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 항상 비관적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시간을 내어 이 자아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다독여주고 돌봐주고 잘 이끌어가야 한다.

두 번째는, 내가 지향하고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한 정당성이다. 사는 것에 정답이 있다 생각지는 않지만 과연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소외받는 사람이 있는데 조직 발전이나 성과를 위해 내쳐야 한다는 경우라던지, 체육활동을 위해 동호회 단체에 모였는데 회비는 모두 똑같이 내지만 실력에 따라 뛰는 시간을 달리 한다거나 하는 등이다. 소외받는 사람의 경우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적응을 못하다 보니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어 더 관심을 갖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면 될 것 같은데,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더 알려주고 연습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이를테면 조직, 단체가 우선이냐 아님 다소 늦더라도 구성원 모두를 챙겨서 같이 가느냐의 문제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수에게 너무 가혹한 결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은 약속시간이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항상 약속시간에 20~30분 정도 미리 도착한다. 그래서 약속시간이 되었음에도 상대방이 도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만남은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다. 이 감정에 대해 내면의 '나'에게 질문하며 대화를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늦게 오는 상대방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안 좋은 이유가 뭘까?'

'응, 그건 말이지 나는 상대방이 기다리지 않도록 배려해서 일찍 왔는데 상대방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왜 기분이 나쁠까?'

'나는 상대방에게 배려를 받지 못하니 손해 본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

'손해 보는 게 꼭 기분이 나쁜 거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리고 나 혼자서 상대방을 배려했는데 그걸 똑같이 바라는 건 욕심이고, 욕심대로 안된다고 상대방을 탓하는 건 자기 잘못이야. 상대방의 배려를 받았으면 당연한 게 아니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네, 그럼 기분 나빠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럼 기다리는 동안 뭘 하면 좋을까?'

'느긋하게 책 보면서 기다리면 되겠다. 책 볼 시간도 넉넉지 않은데 초조한 마음 핸드폰으로 달래는 것보다 훨씬 좋은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약속시간에 늦어도 감정의 변화가 심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대방들은 약속시간에 많이 늦지도 않는다.


내면의 '나'와의 대화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나의 고민, 복잡한 감정과 생각, 문제들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내면의 또 다른 '나'이기에 이 만남을 꾸준히 이어 가야 한다. 또한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하다 보면 삶의 기준이 생기고 영혼이 안정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동안 숱하게 호들갑 떨었던 일들이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닌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