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게 위로 18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

어쩌면 우리도 개울에 갇힌 작은 거미가 아닐까

by 낙유

나무가 우거진 숲 속. 저 멀리 산 위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는 제법 빠르게 흐르는 개울이 된다. 개울 한가운데에는 물살을 갈라내는 넓적한 돌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넓적한 돌은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크다. 어떻게 왔는지 돌 위에는 다리가 긴 거미 한 마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수. 돌 끝에 간신히 매달려 긴 다리를 물속으로 뻗어보지만 너무도 거센 물살에 깜짝 놀라 발길을 돌린다. 저 높은 산 어딘가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이 넓적한 돌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또는 거미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어떤 존재가 거미나 돌을 옮겨 주거나 길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말이다. 거미는 울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가운데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방에 물이 흐르고 있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돌 위를 돌아다니고 길을 찾아봐도 거미는 거대한 물줄기를 막을 수 없다. 까마득한 곳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줄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없는 길을 계속 찾아 헤맬지도 모른다.


같은 생명인데 인간이라고 거미와 다를까. 우리도 어떤 절대적인 흐름의 가운데에 있는 매우 작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거미가 흐르는 물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고 꿀 수 없듯이, 우리도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지 못하는 매우 나약하고 초라한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넓적 돌 위의 거미 한 마리보다 보잘것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공격하고, 이기려 들고, 손해 보지 않고, 베풀지 않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소한 이익만을 좇아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거대한 흐름 앞에서 허무와 박탈만이 남을 하찮은 것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절망적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내 안의 또 다른 나 '자아'가 하자는 대로 살고 있다.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이 아닌 자아가 시키는 대로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살아내야 한다. 자아가 날뛰지 못하도록 잘 살피고 긴장해야 한다.


자아는 기질을 가진다. 기질은 타고난 성질로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바라고 추구하고 쫓는 무형의 힘이다. 자아는 기질들에 따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를 움직이고 행동하게 한다. 그러나 비겁하게도 자아는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결과의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칭찬, 격려,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비난, 원색, 원망을 살 수도 있다. 자아는 마치 어린아이 와도 같아서 돌봄이 필요하다. 철부지 같은 이 녀석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어른이 되느냐 마느냐의 열쇠가 된다.


자아를 돌보는 것은 수많은 기질을 좋은 쪽으로 갈고닦는 것이다. 기질은 습관과도 같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적으로 나오는 행동에 방지턱을 세우는 것인데 바로 '생각하기'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습이 되면 나중에는 자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생각하는 것은 자아와 대화로 시작된다. 수많은 기질 중 한 가지에 대해서 문답 형식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고 이어가야 한다. 꼬리의 꼬리를 물어가며 대화하다 보면 기질을 바꿀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같거나 비슷한 상황에서의 자동적인 기질에 대화 내용들을 생각하며 습을 쌓아 나가는 식이다. 몇 차례 반복하면 좋지 못했던 기질은 좋은 기질로 바뀌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어른이 된다 생각한다. 직장을 다니면 어른이 된다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어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은 나이가 들어서, 경제활동을 해서, 가족을 꾸림으로써 순식간에 갖추게 되는 자격 같은 것이 아니다. 무릇 어른이라 함은 아량과 포용, 귀감, 희생, 염치, 겸손, 인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각 등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덕목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이 현명한 방법인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사리사욕을 위한 행동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적당히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지 등이다. 문제는 철딱서니 없는 자아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꿈틀대는 자아를 잘 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우리가 다리 긴 거미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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