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보령으로 출발한다.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보령. 바다라도 보고 가야 서운하지 않겠다 싶어 대천해수욕장으로 차를 돌렸다.
혼자 출장을 왔기에 점식 식사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지역 맛집을 찾아보지만 1인분을 파는 맛집은 찾기가 어렵다. 최소 주문이 2인부터 라거나, 여러 식재료가 들어간 푸짐한 음식들이 많아 혼자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검색을 해보다 눈앞에 보이는 뼈해장국 집으로 간다. 뼈해장국은 맛있는 집은 정말 맛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기에, 단골이 아니면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 점심시간에 두 테이블 정도 손님들이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괜찮겠다 생각하고 들어간다. 60대 노부부로 보이는 두 분께서 운영을 하고 계시는 듯하다. 보통은 할머니께서 주방을 맡으시고 할아버님은 서빙이나 테이블 정리하시는 것을 많이 봤는데 여기는 반대다. 할아버님께서 주방이고 할머니께서 서빙을 하신다.
식당에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손님을 반기는 눈치는 찾기가 어렵고, 누가 오거나 말거나 하던 일만 계속하고 계셔서 당황했다. 간혹, 찐 맛집들은 서비스가 아닌 음식 맛 때문에 인기가 많으므로 친절보다는 음식 자체에 정성을 쏟는 곳들이 있다. 어차피 음식도 식재료가 바닥나면 조기에 가게 문을 닫고, 없어서 못 팔기 때문이다. 혹시 이에 해당되는 곳인가 싶지만 여름 외에는 한산한 해수욕장에 이런 맛집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뼈해장국으로 주문을 하자 다른 손님이 계산을 하고 나가시는데 할머니께서는 인사 한마디 없으시다. 얼굴을 보니 뭔가 뿔이 나신 듯한 표정이신데 주방 쪽에서 하얗게 머리가 쇤 할아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좀 옮겨"
"......"
"어이, 이것 좀 옮겨"
"예."
아, 이거였다. 할아버님께서 할머니를 대하는 말씀이 살갑거나 부드럽지가 않고 일방적이다. 오늘 두 분이 싸우신 건지, 평소와 같은 모습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 얼굴이 너무 어두운 나머지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어렸을 때 보았던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지금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웃음이 났다.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의 말에 반대 의견이란 있을 수 없었기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셨지만 할아버지를 굉장히 사랑하셨음을 손자 손녀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뼈해장국 식당 할머니께서도 그러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이라도 풀어드릴 요량으로 시답잖은 말을 몇 마디 했다.
"대천에 오랜만에 왔는데 많이 좋아졌네요. 옛날 생각도 나고 좋습니다."
"예"
"파김치도 맛있고, 배추김치도 맛있고, 고기가 녹네요 녹아. 맛있습니다. 하하."
"예, 많이 드셔요. 허허"
김치를 모두 직접 담그신 것 같았는데, 음식 맛있다는 얘기에 그제야 살짝 미소를 지으신다. 주방은 할아버님 담당이시지만 김치는 할머니께서 담그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정리를 하시는데 아까보다는 가벼워 보이는 어깨에 힘이 느껴져 기분이 조금 풀리신 듯했다.
살면서, 기분이 좋았다가도 힘든 일에 마음고생을 하느라 축 쳐지기도 하는 일 것이 하루에도 여러 번이다. 그러다 롤러코스터 같은 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지기도 하고, 또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을 것처럼 감정이 내 맘대로 되지 않기도 한다. 우리가 감정의 변화가 없는 삶을 산다면 생각하기와 느끼기,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힘들게 느껴지는 온갖 일들도 어쩌면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는 선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무탈하고 평온함이 좋은 것은 명백 하지만 때로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변화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뚝배기를 뚝딱 비워내고 인사를 하고 나오니 경쾌한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받아 주셨다. 이제부턴 보령에 출장을 오면 점심은 무조건 여기다. 10번 다투실 일 7~8번만 다투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