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들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1월부터 호기롭게 시작한 업무는 애초에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결과다. 몸에 염증 수치가 높은지 걸핏하면 벌겋게 달아올라 말 못 할 통증을 주어 소염제 처방을 받아야 했고 치열, 피부(면역체계 및 알레르기 반응의 원인), 피지 낭종 제거로 종합병동이나 다름이 없다. 기력이 쇠하고 생기가 없어 항상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다. 빨래 건조대에 마른빨래를 소파 위에 던져 정리하기 직전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아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조용한 사람이 갑자기 웃으면 무섭다더니 딱 이 모습이었으리라.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누나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자라서 영상으로 유행하는 '현실 남매'는 우리 집과 전혀 관계가 없었고, 가족 모두 내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많이 졌는데 이후로도 아플 때마다 등에 엎고 병원 갔다가 결석은 안된다며 기어코 교실 앞까지 데려다주시는 가 하면(천식으로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고생을 많이 하였음) 다 큰 동생 아프다고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병원에 데려가는 일, 기차표를 미리 예매했는데 전날 과음으로 꼼짝을 못 하자 약국에서 술병 났을 때 먹는 약을 사다 먹이고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표를 바꿔다준 일 등(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는 기차역에서 직접 예매를 해야 했다) 셀 수 없이 많다.
지금은 딸을 둔 아빠가 되었지만 아플 때 징징대며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와이프에게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 일을 좀 쉬면서 병원에서 검사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관심과 걱정인데 내가 느끼는 온도차와 서운함은 무엇인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생각해 봐도 아픈 사람한테는 병원에 가라는 걱정 외에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맞벌이에 아이 하나만 신경 쓰기에도 벅차고 힘든데 남편이 아프기까지 하니 심신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겠나. 아마도 내 부모님과 누나들은 나를 사랑함은 기본이요 상대적으로 느릿느릿하고 안일해 보이는 나에 대해 더 많은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심신이 약해지면 의지하고 싶다더니 요즘이 딱 그렇다. 그러나 부모, 남편으로서 짊어지는 무게는 이를 쉬이 허락하지 않는 법. 아픈 만큼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적당히 참아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병원을 간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므로.
아이들의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 주먹만 한 얼굴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쭉 내밀고는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딸아이의 표정에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