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컨설턴트와 건축가의 물물교환
서울의 어떤 곳을 지나가다보면 꼭 기억에서 마주치는 학부모가 한 명 있다. 그 곳은 어느 건축사무소의 근방이었다. 입시컨설팅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날 그 건축가로부터 받은 의뢰는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입시설명회가 끝나고 나면 붐비던 학부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 같지만, 끝나고 남아서 나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많다. 대개는 의대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아이 성적은 이런 데 어디를 갈 수 있을까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언젠가 있었던 설명회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설명회를 할 때 보통 연사들은 청중들 중에서 경청하는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면서 시선을 맞춘다. 그래야 시선처리를 하기도 편하고 피드백도 잘되어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머리가 하얗게 고운 빛으로 물든 분이 정 가운데에 앉아있었다. 옷도 고급스럽고 단정하게 차려 입어 누구보다 눈에 띄었다. 나를 관찰하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시길래, 나도 덩달아 그분과 시선을 자주 맞출 수 밖에 없었다.
끝나고나서 나에게 가벼운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이 그날따라 많아 시간이 굉장히 지체되었다. 그 분은 맨 뒤에 서 계셨던은 아니지만,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에 다른 분들이 먼저 질문할 수 있게끔 앞으로 보냈다. 그렇게 제일 마지막까지 기다린 후에야 그분은 나에게 입을 열었다.
혹시 집을 지을 생각 있으신가요?
그분이 꺼낸 이야기가 대치동 한복판의 설명회 자리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생경한 것이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듣자하니 연배가 60세 초반 정도 되시는 분이었다. 본인의 직업이 건축가인데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하면 원재료비만 제하고 무료로 지어주겠다고 하는,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건축가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 받으니 그제야 이 소리가 쑥스러운 사람의 첫마디처럼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에게는 늦둥이가 있는데, 늦둥이를 맡아서 여러 가지 입시 조언을 해주면 집을 지어주는 거래로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보았다. 본인은 그 위의 누나 둘을 대학을 보낼 때에는 일이 바빠서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막내를 낳고 나선 늦둥이이자 그런지 어리광도 피우고 가족들이 모든 것을 챙겨주고 하다 보니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게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 학교에 가서 상담을 했는데, 그래도 공부를 꽤나 잘 하고 있어서 외대부고에 진학하는 것은 어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 그분은 외대부고라는 학교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들어보았다고 했다. 대치동에 설명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선 답답한 마음에 여러 설명회를 전전하다가 오늘 나의 설명회까지 오게 된 것이 지금 만남의 경위였다.
그 분은 감사하게도, 그동안 다녔던 다른 설명회에서보다 오늘 내가 했던 말들에서 신뢰와 확신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막둥이의 입시를 전적으로 맡겨보겠다는 결심도 섰다고 한다. 외대부고에서의 생활이 매우 힘들어 보여서 걱정이 드는데, 자신을 포함한 가족이 요새 입시에 대해서는 아예 문외한이니 학생부를 어떻게 만들어가야될 지, 진로는 어떻게 해야될지에 대해서 완전히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했던 얘기가 자신이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적인 관계만 맺어질 거고, 그래서 그냥 서로 필요한 걸 교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대치동 한복판의 컨설팅 업계에서의 물물교환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돈이 오가는 사무적인 관계를 피하고 싶어하는 그분의 의뢰는 마음에 와닿았다.
먼저 외대부고로 가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옛날 경기고처럼 그냥 좋은 고등학교를 가면 좋은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이라고 했다. 학력고사를 보고 대학을 가던 시절이나 수능성적표만 가지고 대학을 가던 시절에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입시에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은 학종이라는 전형도 있고 교과 전형도 있기 때문에 마냥 좋은 학교를 간다고해서 입시에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나중에 동문 덕을 보는 것처럼 인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목표에 맞춰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분은 목표가 무엇인지를 학생과 차근차근 얘기를 해볼 수가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학원으로 오시라면서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또 신선했다. 나보고 본인의 사무실로 오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시간을 낼 틈이 없다는 이유였다. 본인의 좋은 사무실에서 좋은 차를 대접해드릴 수 있다는 거였다. 출장 형식의 컨설팅은 종종 있어왔지만 대개 내 오랜 친구나 지인이라서 학원 안에서 형식적으로 만나기엔 부담스러운 경우였지, 일반 학부모를 상대로는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입시 컨설팅은 사람을 직접 부딪히고 맞대는 직업인터라,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기 마련이지만 이 건축가의 의뢰와 제안은 나에게도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제안임에도 무례하다거나, 이분이 나를 낮잡아 보는 듯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의 자녀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마침 그 시기에 시간이 되었던 터라, 사람이 다소 붐비는 역 근방의 건축사무실에 방문했다. 그분과 그분의 자녀인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먼저 앞으로 목표가 뭐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엄마하고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라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본인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방에서 의대를 나와 의사를 하고 있는 누나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그 아이의 꿈이었다.
인생의 롤모델이 바로 옆에 있으니, 의사의 꿈을 키워보는 것도 좋을 법 했다. 수시로 의대를 가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메이저 의대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독보적인 최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 반면 그 아래 의대라도 상관이 없다면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잘 공부하면 된다. 이렇게되면 전교 1등이어도 메이저의대 진학을 보장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그 학생은 지방의 의대라도 의대면 상관없다는 주의였다. 그러면 결론은 더욱 쉬워진다. 연고가 있는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최상위권을 쟁취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의대진학을 위해 삶의 터전까지 옮겨가면서 무리를 두어야겠냐고 안좋은 시선을 보낼 법도 하지만, 그 최상위권을 쟁취하는 것은 결국 학생의 몫이고 노력이다. 편법같이 들린다고 고민하던 학생은, 일단 더 생각을 해 보겠다고 돌아갔다.
그 건축가의 집에서는 결국 그 안건으로 가족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큰누나와 작은누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달려들어서 그 고민으로 머리를 싸맨 것이다. 이후 들어보니 의사였던 큰누나와 아빠는 찬성을 했고, 공학을 전공한 작은누나와 엄마는 반대를 했다고 한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떨어져서까지 살아야겠냐는 입장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라는 입장의 차이였다. 둘둘로 갈렸으니, 이제 선택은 온전히 학생 몫이 되었다.
학생은 결정을 못하겠다면서,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엄마랑 떨어져서 살 수 있겠냐고. 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하숙을 해야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때 나는 향수병에 걸려서 된통 고생을 했다. 고등학교 내신이 좋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환경이 바뀌면 그 바뀐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 이야기를 해줬더니, 학생은 그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지방으로 거취를 옮기면서까지 의대를 가야할까 고민하던, 마음 한켠의 불편한 구석은 해결되었는지 물었다. 학생은 그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훨씬 더 좋다는 마지막 조언을 건넸다.
그 학생은 결국 누나의 지역으로 이사를 가 함께 살면서 그 지역에서 공부를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성적만 가지고 보면 교과전형으로도 여러 학교의 의대에 지원할 수 있다. 종종 나에게 상담을 오면 학생부의 방향도 조언을 해주었다. 교과로도, 학종으로도 충분히 학생 역량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모의평가 등급도 잘 나오고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가장 만족스런 선택이 된 것이다.
그 학생의 과정이 잘 마무리되자, 마지막으로 그 학생의 엄마이자 건축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선생님께는 정말 무료로 집을 지어줄 수 있다고. 몸을 뉘이고 잠 잘 공간이 충분히 있는 나는 물론 제안을 웃으며 거절했다.
이 학부모와 금전적인 것이 오간 상담을 한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 말을 떠올리면 내가 아주 크고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는 컨설턴트가 된 것 같다.
한 건축가가 누구보다 정성스레 지은 집 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