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첫 번째 대치키즈
내가 논술강사로 일했던 학원의 위층에는 아주 크고 유명한 영어학원이 있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이었냐면, 당시 논술을 가르치던 학생들 중에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을 준비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그 영어학원 출신일 정도였다.
같은 빌딩을 사용하다 보니 영어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을 가끔씩 마주칠 때가 많았는데 처음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자기 몸집만한 캐리어를 들고 큰 건물을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영어학원의 교재는 어른이 들고 다니기도 힘들만큼 두꺼웠고 또 여러 권의 교재를 한번에 가지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등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기보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영어책이 잔뜩 든 캐리어를 쓱쓱 밀고 다니는 아이들을 곰곰이 관찰하다보면 많은 생각들이 함께 지나가곤 했다.
언제는 그 영어학원에 다녔던 학생 중 한 아이의 엄마가 입학사정관 출신이었던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알음알음 자리를 만들어 찾아왔다.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의 엄마는 대학 입시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이 많은 편에 속했다. 나를 찾아온 목적은 ‘어떻게 해야 서울대를 갈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지금에야 워낙 입시에 몰두해 있는 학부모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어린 나이에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흔하디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논술강사로 일하고 있던 당시엔 초등학생이 입시문제로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막상 찾아와서 내 앞에서 서울대 이야기의 본론을 꺼냈을 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어린 학생이 벌써부터 최상위권 대학 입시를 목표로 공부해야 되나, 라는 마음 한켠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에게 먼저 물었다.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학생의 대답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의사. 참 뻔하디 뻔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다시 묻자, 학생은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의사니까 의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아직까지는 그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며 설명을 했다. 그리곤 자신이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얘기를 해줬는데 이미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수학기본서는 다 본 상태라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의 수학기본서를 공부하고 있고, 생명과학과 화학 역시 고등학교 과정을 거의 다 끝내가서 AP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영어도 토플시험을 꾸준히 치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그런 것들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준비해왔다. 물론 교과에 대한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 학생이 내 눈에도 특별히 명석하게 보였던 것은, 독서의 양도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였음에도 당시 논술학원에서 커리큘럼으로 짜고 있는 수준 높은 책들을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 그리고 학생은 무엇보다 자기는 독서가 재밌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 학생은 완전한 대치키즈라고 불릴 만했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대치동의 학원 안에 빼곡히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의 영어학원, 두 번의 수학학원, 그리고 두 번의 과학학원으로 평일이 채워지면 주말에는 독서학원과 스피치 학원이 남아 있었다. 그 학생 역시 영어학원의 또래들처럼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대치동의 빌딩과 빌딩 사이를 매일 쉼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시간에 쫒겨 학원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학생은 엄마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보다 바쁘게 사는 아이가 어떻게 엄마랑 얘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는 빠듯한 일정이다보니 밖에서 엄마와 저녁을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환경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대치동의 흔한 부모라면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가 숙제를 했는지, 학원진도는 잘 따라가고 있는지, 학생이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할 텐데 이 학생은 누구보다 알아서 스스로 잘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잔소리에 귀한 저녁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식당에서의 대화는 수학이나 과학 등 그날 배운 내용에 집중해서 엄마가 아는 지식들을 함께 나누고 알려주는 깊이 있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식당에서 엄마와 다정하게 학문적인 수다를 떠는 것이 아이에겐 일종의 행복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초반에 느꼈던 경계심이 풀어지고, 엄마가 그 학생이 진짜 원하는 길을 찾아주기 위해서 나를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인연을 맺어 그 애가 차츰차츰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늘 그때와 비슷하게 공부했으며 월등히 성장해나갔다. 애초에 의사라는 큰 목표가 확고히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달성을 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찾아온 당시에도 그 학생은 중학교에 가면 수학 경시대회인 IMO에서 수상을 하는 것이 목표이고, 그게 안되면 KMO에서라도 상을 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엔 KMO에서 동상을 받았다. 영어도 토플 만점을 목표로 공부하다가 11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물론 독서에서도 정해진 목표가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선정한 권장도서 백 권을 다 읽고 이해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학생은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그 백 권을 전부 탐독했다. 점수로 환산하기 힘든 독서를 정말 다 읽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면, 내가 그 학생과 책을 함께 읽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읽으면서도 짧은 시간동안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다 이해했는지까지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스스로 충분히 소화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 학생은 열심히 독서의 단계를 스스로 행복하게 마쳐 나갔다.
그 학생과 나를 비교해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나의 학창시절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 학생은 평범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의 욕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잠시 꿈꾸더라도 취미, 여가, 사교 등의 사치는 대치동의 빡빡한 스케줄에 막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기도 했다. 그 학생은 결국 의대에 진학했다.
이렇게 공부 외에 다른 것을 꿈꾸지 않는 학생이야 말로 대치동의 부모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이 학생이야말로 사회적 인식으로 굳어져 있는 그 대치키즈의 전형이 아닐까. 내가 만난 거의 첫번째 대치키즈의 모습은 이랬다.
대치동엔 이런 아이들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아이들이 이와 같지는 않다.
(참고: 대치동에는 하위권을 위한 학원이 없다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