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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Aug 03. 2022

대치동의 이기적 유전자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교육환경이 좋은 대치동에서 키우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대치동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그게 언제냐면 학부모들의 알력싸움이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경우다.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엄마가 나에게 컨설팅을 오면 이런 하소연을 했다. 수연(가명)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엄마는 주도적인 성격이 아니라, 학교를 휘어잡는 학부모 그룹에 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수연이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너는 대치동에서 무슨 팀수업(선생님을 따로 섭외해 팀으로 듣는 과외수업) 듣느냐고 물으면 다른 아이들이 너는  듣는 거야 라면서 핀잔을 준다고 했다. 아이들끼리도 팀수업을 만들  있고,  수업에 참여할  있다는 것이 일종의 권력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 부류의 아이들은 본인이 듣는  수업을 과시하면서 심지어는 엄마에게   짜증나니까 팀수업에서 빼줘, 라는 식의 무기를 휘두르며 다른 친구들을 배제하기도 했다.




수연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전국의 학부모들이 중학교 때부터 갖은 시간과 노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학하고자 하는 곳이었다.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체로 만나보면 아이들도 아이들같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수연이의 경우에는 아주 착한 학생이었다.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더 챙겨주려고 하면 자기에게만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워 저 이거 안해도 돼요, 하면서 손서리치는 아이였다. 컨설팅과 수업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거의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정성을 쏟지만, 유달리 심성이 착한 학생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남들이 보기에도 성격이 좋으니 입학하고 얼마 안 있다가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임시반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무리가 있었는데 그래도 담임이 지명해서 시킨 거니까 임시 반장을 할 때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수연이가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1등을 하자 그 아이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고했다. 중간고사 이후에 반장선거가 있었던 학교였기 때문에 그  무리는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개인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반장 선거할 때 수연이를 찍지 말자고 종용하고 다녔다. 쟤는 성적도 좋기 때문에, 임시반장이 아니라 정식 반장이 되면 좋은 '스펙'을 몰아주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몇명이 복도에서 밀치고 지나가거나, 임시반장으로써 선생님의 전달사항을 반 앞에서 이야기하면 뭐래, 헛소리하네 라는 식으로 조롱한다고 했다. 수연이는 나를 따로 찾아와서 이런 이유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그 어렵다던 학교의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한 직후였다.




그리고 대치동의 세계가 지나치게 좁은 나머지, 그 학생 중에서도 수연이를 제일 괴롭히던 학생과 엄마가 우연찮게 내 컨설팅을 받으러 왔다. 그 학생의 엄마는 내가 건네는 조언이며, 분석들을 한마디 한마디씩 다 부정하면서, 컨설팅을 받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말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행동했다. 자기 생각이 확고하게 맞다 싶으면 내 말을 무시하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학생은 뒤늦게 수업이 끝나서 컨설팅 중간에 참여했다. 내가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엄마가 피곤하면 아이도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 학생의 엄마는 자신의 딸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로 보이는 듯 말했지만, 정작 그 학생은 나에게 학교 경시대회를 꼭 나가야 되는지 묻더니 학교생활에 충실함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나가는 편이 좋다는 나의 조언에 대놓고 입을 삐죽였다. 선배들이 그런 얘기 안하던데, 라면서.




수연이가 말하길, 그 학생은 그룹 탐구활동의 주제를 정할 때는 자신의 전공적합성에 맞춰서 정해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면서도 막상 주제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해지면 실제로 활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수연이가 자료를 보내달라고 말하면, 자신은 지금 학원 숙제때문에 너무 바쁜데 이번에만 너가 해 줄 수 있느냐고 떠넘긴다는 거였다. 물론 다음번에도 또 똑같은 소리로 활동을 제대로 하지않고 남에게 넘기면서 쏙쏙 빠져나갔다.




무임승차하는 학생들, 그리고 집요하게 누군가를 괴롭히는 학생들이 많은데도, 사실상 대학에서 이러한 것들을 가려낼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대학의 몇 분 되지 않는 인성면접으로 이러한 학생들을 걸러낼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생들이 버젓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최고 대학들에 너무나도 쉽게 입학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고는 한다.  









이기적인 학부모들의 유전자는 종종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입시실적에 목매는 우리나라의 학교들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공부를 잘한다는 명목만 있다면, 그 학생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비호를 받는다. 선생과 부모가 그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고 혼내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경우가 특수한 경우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대치동은 이러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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