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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Aug 16. 2022

'의대'라는 이름의 병

요새 컨설팅을 하다보면, 특목고든 일반고 학생이든 할 것 없이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의대를 희망하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다. 과장없이 하나 건너 하나 상담이 의대 관련일 정도이니, 자연계열에서 조금 우수한 학생들은 모두 한 번씩 의대를 꿈꾸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예비 고1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나 상담은 대부분 의대를 가려면 어떤 고등학교를 가야 될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실 이 질문은 너무나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어서 섣불리 정답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학부모들에게 꼭 되묻곤 한다. 서울에 있는 의대를 가고싶으신 건가요?


이 질문에 조금 고민하는 학부모가 있고, 자신있게 네, 라고 대답하는 학부모가 있다. 그럼 그 목표에 맞춘 뻔한 처방이 보통은 이루어진다. “공부 잘 하는 학교에 가서 전교 1~2등을 하면 서울에 있는 의대에 갈 수 있습니다.”



주요 상위권 메이저 의대들이 뽑아가는 학생들을 살펴보면, 지방 소재 고등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1등급을 받는다고 해도 여의치가 않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본인의 학교가 그 소재지 인근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학교라면 특정 학교의 의대는 절대 쓰지 말라고 만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콧대 높은 의대들이 높은 문을 걸어두고 버티고 있으니, 그 폐쇄적인 집단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의대와 비의대의 차이도 물론 크지만, 의대를 원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메이저와 지방 의대 간의 뚜렷한 서열도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의대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넘어 고통까지 받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다.





 오래 ,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전교권에 속하는 여학생이   상담을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의사인 집안의 아이였다.  학생의 경우 수학과 과학의 성적이 다른 과목보다 뛰어났고,  국어와 영어와 기타과목의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학생이었다. 런 식으로 성적의 편차가 나는 경우는 보통 서울대 공대를 지원해봄직했다.



서울대 공대에서 원하는 과를 쓴다면 대부분 다 합격할 것 같고 의학계열을 희망한다면 치대, 한의대를 써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부모의 표정이 모두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저희는 의대를 보내고 싶은데요, 그 아이의 아빠가 뒤이어 이야기했다.  



보통 의대를 가고 싶은 학생들은 내신등급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부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다수였다. 이 학생도 그러한 유형에 속했다. 학교에서 한 동아리 활동이나 수상실적, 수행평가를 채우는 빈약한 내용들이 학생의 높은 내신등급과는 괴리가 있었다. 시험 공부를 죽어라해서 받은 좋은 내신이라는 무기 하나만 가지고 지원해야되기 때문에 의대를 가고싶다면 중위권 의대까지는 지원 가능할 것 같고 아주 운이 좋다면 중앙대까지는 써 볼수는 있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 학부모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오해를 곁들여, 일단 중앙대나 경희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느 대학 무슨 전형이 미달이 자주 나고, 어느 대학은 보통 서울대나 연세대에 붙은 아이들이 빠져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뒤이어 물었다. 나는 그런 가능성은 솔직히 없어보인다고 말했지만 그 부모는 둘 다 결국 본인들의 희망 대학을 나에게 나열하는 식으로 컨설팅을 마무리하고 떠났다.  



더 큰 문제는 뭐였냐면 그렇게 상위권 의대라는 열망에 사로잡히다 보니, 수능 공부를 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의대 면접수업과  논술수업을 듣게 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알게 된 나는 학생은 지금도 지방대 의대에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니 앞으로는 수능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결국 학생은 면접과 논술 수업에 중요한 나머지 시간들을 소비하고 말았다.



그 학생의 결과는 어쩌면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논술에서도 합격하지 못했고, 학종 전형에서는 모두 다 서류를 통과하지 못한 채로 1단계를 불합격했다. 수능 성적도 애매했다. 사실 정시로도 서울대의 낮은 과나 연고대의 중상위 과를 지원할 수 있는 높은 성적이었지만 그 학생과 학부모의 기준은 이미 메이저 의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부모들은 이번에는 그 점수를 가지고, 정시로 갈 수 있는 의대가 어디인지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차라리 반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지만 그 부모들은 어디 의대가 혹시 펑크가 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더니, 가진 원서 세장을 모두 의대에 지원했다. 결과는 다시 뻔해졌다. 모두 불합격이었다.



그 학생은 이제 정말 갈 곳 없이 재수를 해야 했다. 재수를 해서 받아온 두 번째 수능성적표에 적힌 점수는 한의대나 치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법한 하의권의 의대를 한 개 추천을 해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안된다, 적어도 수도권에서 갈 수 있는 의대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전년도에 비해 눈이 많이 내려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가족들은 ‘이름이 있는 대학의 의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미 그 해 재수 때에도 이미 학종으로 이름난 곳의 의대들을 다시 도전해보고 모두 불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교과전형으로 가능해보이는 지방의 의대도 있었고, 학종으로도 지방대 의대에 다시 도전을 해보면 한 군데는 붙을 것 같아 조언해지만, 그 부모들은 모두 그런 의대는 가기 싫다면서 모조리 다시 중상위권 의대를 지원하는 데에 원서 여섯장을 써버렸다.



그 학생의 결과는 삼수였다. 삼수가 되어서야 이제 부모와 함께가 아니라 학생 혼자 나를 종종 찾아오기 시작했다. 학생은 의대에 그렇게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첫 해에 내가 말해주었던 서울대 공대도 만족하면서 다녔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동기들이랑도 친해지고 싶은데 혹시나 삼수에도 원서를 잘 못 써서 사수를 하게 된다면 남들은 졸업할 나이에 입학을 하게되는 것이니 대학이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도 한탄했다.



그 학생은 결국 삼수에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해서 수능 성적이 많이 떨어졌고, 사수를 해서야 본인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학과가 적성에 잘 맞았는지 언제는 나를 한번 찾아와선 대학원에 가서 학과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도 수다를 떨고 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의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너무 큰 나머지, 학생들이 마땅히 생각할 수 있는 다른 길들이 모조리 막혀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사실 오늘의 이 이야기는 유별나게 특별한 에피소드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일일히 기억을 되짚을 수도 없을만큼,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나는 의대가 낳은, 의대라는 이름을 가진 일종의 병과 같은 집착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무언가에 집착하고 되풀이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없이 목격하기도 하고,  상담해주기도 한다.  병은  끈질기게 누군가를 붙들어놓는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2, 3 그리고 입시의 막바지까지 학생과 학부모를 끊임없이 의대라는 달콤한 환상속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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