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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Jul 25. 2022

돼지엄마가 사는 세상

대치동의 학부모 (1)

돼지엄마가 사는 세상




대치동에서 속칭 '돼지엄마'라고 불리는 극소수의 학부모 계층은 막강한 정보력과 인맥을 통해 전쟁통같은 입시의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가지는 학부모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같은 학부모들 위에 군림하면서 선생과 학원을 주무르고 자녀 입시성공의 타이틀을 기어코 따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




영재학교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영재원이 영재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루트로써 기능을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는 대학 입시의 성공을 위한 인맥을 쌓기 위해 가는 공간이 되었다. 영재원은 영재를 기른다는 특수한 목적에서 설립되는 기관이지만, 생각보다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영재원도 있고, 각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원도 있다. 서울대나 서강대 등 명문대에서 운영하는 영재원은 입학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재원에 들어가고자 학부모들은 수많은 노력을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살의 아이가 선행을 위해 대치동에서 유명한 수학학원을 다니는데, 이 학원은 이제 영재원 입학을 위한 거의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다.   




영재원에서 어떤 것들을 가르치는 지를 보면 진짜 영재를 위한 교육인것인가는 의심스럽다. 영재원에서 조교를 했던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창의적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수학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석학, 대수학 같은 대학의 수학 과목을 아이들에게 미리 가르치는데 그걸 이해하는 천재적인 아이도 한두 명 간혹있지만, 대부분은 그걸 그냥 거의 외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대학들과 국가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영재원을 운영을 하고 있다. 그 영재원의 입학 시험을 위해 수많은 학부모들이 대치동의 선행수학학원들의 문을 두드린다. 대치동의 큰길을 걸어다니다보면 흔하게 보이는 조그만한 독서학원들도 사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재원 입학을 위한' 학원이다.    




돼지엄마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탄생하기 시작한다. 주어진 문제를 못풀면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밤늦게까지 집에도 보내지 않는 학원을 보내는 교육열높은 학부모들끼리 모이더라도, 그 안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학부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주도로 동기 기수들이 모이게 되고, 돼지엄마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을 이끌고 명문 고등학교와 명문 대학 입시까지 그 그룹의 생명을 잇고 생태계를 꾸려가게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일반적인 엄마가 돈을 들고 특정 팀수업을 받고 싶어도 ‘나도 좀 끼워주세요’가 가능하지 않다. 같은 영재원의 동기 기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폐쇄적인 세상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영재원 코스가 그 첫걸음인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도 돼지엄마와 나머지 학부모들의 서열은 철저하게 구분된다. 입학사정관 시절, 특목고에서 설명회 요청을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몇 번 방문하고 나자 같이 간 동료 입학사정관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느냐고 질문했다. 주변 환경에 둔감했던 나는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를 되묻자, 그 학교에서 입학설명회를 할 때마다 매번 사람들이 앉는 자리가 똑같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곰곰히 떠올려보니 매번 정중앙에 앉는 학부모가 있었는데 바로 전교1등 학생의 학부모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야기의 화두를 꺼내기 전에는 옆에 않은 사람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중간에 앉은 학부모가 그 날 그 상담자리에서의 주제를 꺼내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정해진 토픽 안에서만 자기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는 했다. 흔한 설명회에서 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디에 앉는지조차 이미 다 서열의 공식에 따라 정해져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돼지엄마와 그를 둘러싼 학부모들의 생태계가 돌아간다. 보통은 자식의 성적에 따라서 학부모들의 지위가 결정되었다. 굳이 1등인 학부모가 나서지 않는 성향이라면, 그 밑의 순위로 그 역할이 내려가고는 했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부모가 지나치게 적극적인 경우라면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 학부모들은 보통 학원에 특정 강사의 수업을 듣고싶다는 어필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학부모들의 생존방식은 전교 1등 학부모를 자기의 동료로 포섭하는 것이다. 그래야 학원에 가서 이 강사의 팀수업을 본인 그룹에 배치할 만한 '입김'이 생긴다. 이런 경우 1등 학부모는 직장을 다녀 바쁘다던지, 입시정보를 일일히 찾기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돼지엄마를 마치 대변인으로 삼거나, 행동 대장처럼 이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꼭 돼지엄마여야만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생태계가 싫다면, 돈이 아주 많으면 그만이다.





보통 팀수업(선생님을 따로 섭외해서 팀으로 받는 과외수업)을 하면 학생이 내는 돈이 학원 수업료보다 매우 부담스러워진다. 실력있는 선생님을 섭외한 후 대개는 5명에서 7명 가량이서 팀비를 나눠서 내야 하는데, 한 명당 내야 하는 돈은 일반적인 개인과외비용보다 더 비싸다. 과목이 여러개인 것을 생각해보면 일반 가정에서 팀수업을 빼곡하게 진행하기엔 쉽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내가 있던 학원에서는 전 과목을 모두 팀수업을 시키는 엄마가 있었다. 심지어는 5명이 모여야 하는 팀에서 3명밖에 모이지 않았다면, 나머지 두 사람의 비용까지 본인 몫으로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학부모가 나에게 컨설팅을 받으러 왔고, 학생 진로와 학생부 내용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상담내용을 받아적거나 대부분 듣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학부모는 나의 조언에 맞도록 그런 일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학원에 있는지를 확인한 후에,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그런 선생님에게 얼마를 더 주면 다른 애 말고 우리 아이에게만 신경써주게 할 수 있나요?" 개인 선생님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아이에게 붙여줄 선생님의 독점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나 궁금했던 나머지, 그 분이 어떻게 그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대치동에도 아무리 날고 기는 직업을 가진 학부모들은 많지만, 그런 식으로 돈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것처럼 구는 학부모는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분은 약사였는데, 약대를 나와 페이 약사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자신의 동네에 건물을 하나 샀다고 한다. 대출을 내서 구입한 건물을 싹 리모델링을 하고, 1층에 약국을 차린 후 그 윗층을 모조리 병원에게만 세를 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조건을 달았다. 병원 원장들에게 자기 건물에 병원을 개원하면, 50%로 월세를 할인 해주겠다고 한것이다. 그렇게 건물은 통째로 병원건물이 되었다.




나중에는 월세를 안 깎아줘도 그 건물에 병원들이 서로 들어오고 싶어서 면접까지 본다고 했다. 면접을 본 후에는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자 진료보는 과목을 안배해서 뽑는다고 한다. 이렇게 번 돈을 아이의 입시를 결정지을 몇 년 동안 아낌없이 쏟아붓고 투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학원 내부정책상 선생님의 독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돼지엄마의 인맥파워와 아예 별개의 세상에서 혼자 입시의 판을 쥐고 흔드려면 이 정도의 스케일은 되어야하는 것이 바로 대치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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