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불안을 마케팅하는 사람들
예언과 예측의 차이는 간단하다. 예측은 분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반면 예언은 그냥 머릿 속에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이다. 그렇다면 대치동에는 예측가가 많을까, 아니면 예언자가 많을까?
논술학원에서 종합학원으로 이직을 하면서 처음 다른 컨설턴트들이 하는 설명회를 듣게 되었다. 학원의 입시 설명회, 특히 수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학종을 위한 설명회에서는 대부분 현재 어떤 위치의 학생이 어떤 수준의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가 학부모들에게는 가장 핫한 정보이다.
사실 학생의 소위 ‘스펙’을 정량적으로 수치화해서 그 학생이 왜 합격했는지, 또는 왜 불합격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학생부 몇 장, 임원 경험 몇 번, 봉사시간 총 몇 시간들의 나열은 온전히 그 숫자만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말 그대로 한 학생이 가진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기 때문에, 학원에 흘러들어오는 학생의 부분적인 정보만으로 합불의 이유를 추산하기는 매우 까다롭다.
하지만 처음 들은 컨설턴트의 설명회는 다름 아닌 이런 식이었다. 합격자들의 내신은 여기까지는 다 붙었고, 여기부터는 다 떨어졌다며 여기까지 적어도 내신을 만들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정작 중요한 비교과에 대한 설명은 상중하로 단순하게 구분해서 대충 넘어간 것이다. 비교과의 어떤 부분이 평가되는지조차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특별히 강조를 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대치동의 몇몇 유명 컨설턴트들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집중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집중을 한다. 그러면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자기가 나름대로 추측한 이런 학생들이 수시에 붙을 것이라는 멋들어진 가상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때부터는 예측이 아니라 예언의 범주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 다른 컨설턴트의 설명회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 자료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방대한 양을 자랑해서 설명회를 다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늘 인기였다. 난 입학사정관 출신이었음에도, 그만한 자료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확보해왔는지 추측조차 되지 않았다. 컨설턴트들이 아무리 컨설팅을 많이 해서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생기부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도, 수백 수천명에 달하는 학생의 내신점수와 비교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나하나가 양질의 자료는 아니더라도, 저렇게 많은 양의 자료들이 모여있으면 당연히 입시에서 유용한 정보가 되기는 한다. 나의 경우엔 입학사정관을 한 경험으로 이 학생이 왜 합격을 했는지, 이 학생은 왜 불합격을 했는지에 대한 사례 분석밖에 해주지 못했다. 사실 그게 가장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설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자료의 양에 일단 질려버린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과 그와 비슷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당 게시판에 빼곡히 적힌 정보들을 함께 모아보자고 결심했고 밤을 새가며 타이핑을 해서 데이터화를 해 나갔다.
하지만 타이핑을 하고 정보를 읽어내려가다보니 자꾸 익숙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컨설턴트의 설명회 자료 속의 데이터 수치들이었다. 그 컨설턴트 역시 해당 게시판의 내용을 참고하여 자료를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온라인의 자료들을 수집한다고 해서 비난하기는 어렵다. 본인이 직접 컨설팅한 학생의 자료만을 사용하는 것을 고수하는 것만이 컨설턴트의 역량을 나타내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풍부하고 다양한 출처의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다시 본인의 논리대로 해석하고 분석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올바른 입시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컨설턴트도 나름의 노력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문제는 그 자료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이다.
그래서 이 자료를 가지고 컨설턴트가 어떻게 설명회에서 활용하는지 궁금해졌다. 주변 학부모님들 중에 그 분의 설명회에 다녀오신 분이 있어 내용을 들어보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하나의 대학, 같은 전형에 합격한 학생과 불합격한 학생의 특징을 나열하면서 이 학생이 왜 붙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합격한 학생의 학생부가 총 26장이라 분량이 더 많고 학급회장을 세 번을 했고 봉사활동경력이 30시간이나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컨설턴트가 강조하던 것은, 이 학생은 탐구활동을 4번을 했는데 다른 학생은 1번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불합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그 컨설턴트의 자료가 실제 올라와 있는 온라인의 수치와 달랐다는 것에 있다. 합격과 불합격의 여부, 그리고 다른 스펙과 정보는 게시판 속 원데이터와 얼추 일치하지만 탐구활동의 개수는 오히려 불합격한 학생이 더 많았다. 그리고 봉사시간도 사실 엇비슷했다. 하지만 불합격한 학생의 봉사활동이 적고, 탐구활동이 적어야 불합격의 이유와 논리가 그럴듯하게 만들어지니, 결국 수치를 바꾸었던 것이다.
이로써 그 컨설턴트가 꼭 말하고 싶어한 지점이 명확해졌다. 이 학생은 ‘이것’ 때문에 합격했고 ‘그것’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논리를 학부모들에게 꼭 설득하고 싶어 자료의 수치를 조작해서 설명했던 것이었다.
컨설턴트로써 입시 설명회를 준비하다 보면 딱 한 가지만 갖춰지면 설명이 잘 될 것 같은데, 하면서 아쉬워할 때가 많다. 나의 경우 학생부의 종합적인 평가요소들을 잘 알고 있기에 더 그렇다. 컨설턴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가상의 시나리오대로 학생이 붙고 떨어지는 것은 만무하다. 딱 맞아떨어지는 사례를 찾는 것은 아주 어렵고 고된 일이다. 사실 눈에 잘 보이는 일이 극히 드물다. 앞서 말했듯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학생을 평가하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컨설턴트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예언자다.
대치동에서 예언자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스스로 그어둔 선 하나만 넘으면 된다.
사실 이 요소를 충족한 학생은 붙었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비교사례를 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들의 홍수를 거슬러 밤까지 새야 한다. 나의 경우는 찾고, 또 찾다가 못 찾으면 결국 다른 내용으로 설명회를 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밤을 새다 지친 나머지 ‘우리도 한번 넘어가 보자’는 우스갯소리를 던진 적이 있다. 사실 예언자를 가르는 문지방을 하나 건너간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대치동에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수시의 영역에서는 아무도 그 진실을 파악해내기 어렵다. 어떤 것 때문에 떨어졌다고 그 누구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예언자들 검증할 수 있는 장치는 현재로썬 없지만, 눈치로나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설명회를 유심히 듣다 보면 그 컨설턴트가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강조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극적인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면, 아마도 그 컨설턴트는 예언가일 확률이 높다. 전지전능한 예언가가 되어 학부모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대치동에는 아쉽게도 이런 예언자들이 너무 많다. 예언자들은 설명회를 할 때면 자꾸 자극적인 요소들을 건드리면서 봉사활동은 몇 시간 이상, 반장이나 동아리장은 몇 회 이상 정도의 눈에 보이는 수치들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강조의 궁극적 이유는 불안의 조성이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어지러울때마다 예언가들이 등장해서 세계멸망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놓는 것처럼, 입시판이 혼란하고 예측하기 힘들때마다 대치동의 컨설턴트들은 이렇게 학부모들의 불안을 마케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