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하루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의 시선에는, ‘대치동’이라는 타이틀보다 그 공간 안에서 살아 숨쉬고 걷고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치동에 흘러들어오는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 못된 사람, 성공을 바라는 사람, 하루하루를 애살있게 사는 사람들이다. 대치동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LP가 잔뜩 꽂혀 있는 바를 운영했다. 그곳에 자주 놀러 가면서 한 단골손님과 안면을 트고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 사람의 사연을 들어보니, 꽤나 특이한 병을 앓고 있었다. 햇빛을 보면 피부 변형이 일어나고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도 여러 번 할 정도로 희귀하고 힘든 병이라, 낮에는 절대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는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만큼 세상에 위험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외출은 해가 진 저녁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을 쉽게 가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밤에 여는 이런 술집을 운영해보고 싶어도, 오히려 낮에 부지런히 챙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듣던 나는, 그 남자에게 학원에서 일하는 것을 추천했다.
학벌이 좋지 않다고 곤란한 얼굴이길래, 강사가 아니라 직원으로 일해보는 것은 어떠느냐고 다시 권해보았다. 학원가는 애초에 남자 직원들이 부족한 곳이 대부분이라 남자의 손이 필요한 구석이 은근히 많았다. 남자라면 일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은 내가 소개해 준 대치동에 터를 잡고 한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끔 짧은 통화를 하면 아직도 고마운 진심을 전해온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렵게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학원 스태프는 그에게 더 꼭 맞는 자리였음이 분명했다.
대치동을 둘러싼 수많은 껍데기 중에는 수백억을 굴리는 1타 강사들의 화려한 면모가 있다. 그들 때문에 대치동은 늘 돈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암투의 시장으로 비춰지지만, 사실 그 껍데기 아래에는 평범하게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금도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른 한 사람은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외모가 아주 출중했지만, 상위 몇 퍼센트만 반짝반짝해보이는 것은 대치동도,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전을 먹고 확 죽어버리고 싶어도, 동전마저 없어서 쉽게 죽지도 못한다고 한탄 섞인 유머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생은 서울 근처 산 중턱에서 남이 버리다시피한 밭에서 여섯식구가 초가집을 지어놓고 살았다. 부모님과 할머니, 이혼한 형제와 조카까지의 삶을 모두 책임져야 했다. 요새도 서울 한복판 산자락에서 밭을 일구며 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때 내가 숲유치원을 운영했던 시기에 그가 아르바이트 소일거리를 하러 종종 찾아오곤 했다. 연예인 지망생들은 끼가 많았기 때문에 유치원 프로그램을 곧잘 진행해 아르바이트생으로 는 아주 적합했다. 그는 아이들과도 아주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때 만난 인연으로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다.
내가 학원으로 다시 돌아온 뒤에도 그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면서 종종 오디션에 나가는데 아직도 여섯 식구를 책임지면서 어렵고 근근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길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 취직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아는 동생이라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잘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고민해보더니 강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살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대치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쉽게 문턱을 넘을 수는 있어도, 열심히 노력해야 살아남는 곳도 대치동이었다. 그 역시 아이들을 열심히, 그리고 잘 가르치면서 대치동에 자리잡았다. 가끔 대치동을 소개해 준 나를 두곤 인생의 ‘등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원이라고 하면 안 좋게만 생각했는데, 강사로 일해보니 학원이 나쁜 곳이 절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살아갈 수 있고, 꿈을 꾸게 해준 곳이라면서.
이런 사람들 외에도, 대치동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 많다. 학원에서 일하는 50대 이상의 주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아이들을 다 키운 후, 전문적인 하나의 인력으로써 대우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더 있을까? 커리어를 쌓다가 본인의 사업체를 차리는 실장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올빼미족도 학원을 찾는다. 모든 사람들이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일반적인 회사의 스케줄이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패턴과 맞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글을 쓰는 새벽 시간이 소중해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대안이자 방식이 될 수 있다.
내가 막 대치동에 발을 들였을 때는 논술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호황인 시기였다. 수능을 막 마친 11월, 한창 시즌 때 강의를 하면 학생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치동의 논술학원들은 크고 작은 곳 상관없이 붐볐다.
하지만 연세대가 정시논술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이 일종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논술은 대입이라는 문턱에서 설 자리를 점점 줄여나갔다. 대학별로 논술 인원을 축소하고 학종을 늘리는 추세가 되었다. 서울대에서 입사관으로 근무하면서도 논술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꽤나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이런 경향성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곧 논술이 사교육을 향한 질타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일종의 총알받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술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주장의 밑바탕에는 학교의 선생님들이 지도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도 논술에 의욕이 많은 분도 분명 있다. 논술로 대학을 잘 보내기로 유명했던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은 스스로 논술 문제를 만들어 아이들을 준비시키면서 더 좋은 지도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해야 1퍼센트도 되지 않을텐데 마치 사교육의 온상처럼 여겨지고, 반대로 논술과 수시를 축소하면 사교육의 꺼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를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대한민국 교육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논술을 비롯한 수시의 비중을 줄이고, 학원의 논술 강의를 줄이면 사교육이 사라지는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것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지만, 사교육을 근절하겠다는 약속도 함께 한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인 것처럼.
사교육이 교육의 탈을 쓴 일종의 사기행각처럼 비추어 질 때마다, 당연히 대치동에 시선이 쏠리곤 한다. 대치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중에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의 눈을 속이는 강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은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기 마련이고 그 진리는 대치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삶은 다양하기에, 다양한 만큼 대치동이라는 공간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