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학관리본부에 처음 입사해서 느꼈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서울대의 입시정책이 조금씩 바뀐다는 소식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나 신문으로부터 종종 들리곤 한다. 서울대가 움직이는 대로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방향이 들썩이는 것은 지금도, 그리고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막 입학사정관전형이 만들어진 무렵, 그런 대단한 입시판을 쥐고 흔들어 움직이는 곳의 평가인력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 당시에는 서울대가 국립대였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으로써 행정을 처리해주던 입학 관리과가 있었고, 내가 들어간 곳은 입학에 관련한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아서 하던 전문위원실이었는데 그 전문위원실의 인력이 내 예상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던 것이다.
두 번째 감상은 서울대의 모든 판단이 때로는 성급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지나치게 적은 인력의 탓도 있었겠지만, 전례가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앞에서 ‘끌어갈 수밖에’ 없는 위치의 서울대였기 때문에 정책의 성공에 있어서 확신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경험들이 부재했다. 이럴 것이다 혹은 저럴 것이다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추측이고 좋게 말하면 논리적 추론에 가까운 과정을 통해 정책들이 한꺼번에 휜쓸리듯 결정되곤 했다. 그리고 그 추론의 대부분은 현실과 굉장히 동떨어진 것들에 기반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내가 입사한 초창기에는 입학관리본부의 전체적인 내부 체계를 다듬어나가고 정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동안 구두로만 존재하던 전화 응대 방식을 전화 매뉴얼로 문서화시키는 작업이었다.
그 중 입학 전형 기준 등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말고 그냥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만 말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한번 이런 의견이 왜 나왔을까를 생각해보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대답해주기 귀찮아서였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 기준이 공개된다면 이러한 기준에만 맞춘 맞춤형 학생들이 범람할 것이고, 결국 그런 만들어진 학생들은 서울대가 원하는 인재와 다르다는 논리였다.
이 이야기를 회의 테이블에 앉아 들으면서 당시의 나는 말도 안 되는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서울대의 평가기준대로 길러진 학생이라면 그 학생은 아마도 인재일 것이다. 맞춤형으로 그런 능력들을 쌓아가며 자라왔다면 우수한 학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맞춤형으로 길러졌는데 그 학생이 인재가 아니라면, 우리 대학의 평가 기준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나라 사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공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것이 당시 내가 느낀 감상이었다. 내가 교육학과에 입학해서 가장 놀랐던 점도 이와 비슷했다. 현실에서의 교육은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만 할 뿐,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영 관심이 없는 교수들이 참 많았다. 이번에는 정말 실제의 교육과 입시에 맞닿아있는 곳에 들어갔으나, 또 똑같이 그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대치동의 입시판에서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열렬히 타던 사람이 있었다. 한 서울대생이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치동의 엄마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고 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을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운영하던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입시 정보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너무나 현실적이고 솔직한 여론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사례는 지금은 이곳저곳에 많지만, 아마도 그 사람이 시초였을 것이다.
그 정도였으니 입학관리본부에서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가 가쉽성으로 돌때마다, 그 사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그 사람의 인맥 때문이라고 선을 긋는 분위기였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열성적이고, 좋지 않게 보자면 지나치게 광적이기로 소문난 동아리의 임원이었으므로, 그 인맥을 이용해서 대치동의 유명세도 덩달아 얻은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서울대 입학관리본부가 어떤 논리로 돌아가는 지를 터득하게 되었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치 모두 경제학을 전공하려고 하는 것처럼 사고하는 것 같았다. 경제학은 모델의 학문이다. 지독히도 복잡하고 다난한 현실을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모델로 이리저리 재단해놓고 그대로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대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세를 만들어 낸 것이 맞았다. 다만 그 사람의 인맥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에서 제대로 된 입시정보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대가 만들어낸, 일명 ‘깜깜이’라고 불리는 전형인 학생부 종합전형의 사생아였던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교묘한 방식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눈을 속인다. 각 대학마다 공개된 입학 요강을 보면, 서류가 몇 프로로 반영되고 면접은 몇 프로이며 1단계 전형에서 몇 배수가 뽑힌다는 정보들이 나와있다. 서류가 50%, 면접이 50%으로 합산해서 최종합격자를 가른다고 해도, 그 둘의 영향력이 실제로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공개되어있지 않다. 이런 정보들은 강력한 폐쇄성을 가진다.
정보의 폐쇄성은 다시 말해 권력이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를 향해 쥐고 있는 대학들의 권력은 서울대에서 시작되었고 다른 대학들에게서 더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