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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Oct 11. 2022

별을 보고 싶은 아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 첫 시험부터 아주 훌륭한 성적을 받은 학생이 있었다. 전 교과가 빠지지 않고 1등급인 학생이었다. 공부에 욕심도 있고, 목표도 있던 학생은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가 갑자기 책상에 피를 토했다고 한다.      



병원에 갔는데, 호흡기 쪽에 큰 병이 들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조금만 앉아서 공부를 하면 힘이 들어서 꼬박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침대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병이 차마 학생의 열의까지는 꺾지 못했던 것이다.    


  

2학기 성적은 당연히 떨어졌지만, 학생은 점점 그 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던 것도 당연했다. 침대에 누워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천장에 두꺼운 철사를 드릴로 박아서 책과 패드를 눈높이까지 걸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하나하나 다 스캔을 떠서 패드에서 볼 수 있도록 옮겨주었다. 온 가족이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해간 시간들이었다.      



인생에 들이닥친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지만, 2학년 1학기와 2학기에는 성적이 점점 올라갔다. 수학만 좀 떨어지는 성적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눈으로밖에 풀 수 없어서였다. 손으로 쓰면서 풀지 못하니, 수학만 3등급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1등급을 받았다.      







그 학생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간절히 원하는 것은 별을 보는 일이었다. 대치동에서 입시컨설팅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을 만나지만, 그 학생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리고 천문학을 간절하게 하고 싶어 하는 학생 역시 처음이었다.  



서울대학교의 천문학과를 가고 싶어 했지만, 사실 이 학생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는 서울대를 갈 수 있을 만한 성적이 아니었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이라도, 서울대의 문턱은 그보다 높았다.    


  

학생의 부모님은 학생만큼 목표가 뚜렷했지만, 학생과는 조금 달랐다. 무조건 올해 대학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힘든 과정을 한 해 더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맘에 차지 않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더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피를 토하면서 공부하는 자식의 모습을 하루라도 더 눈에 담고 싶지 않은 것은 부모로선 당연했다. 다만, 컨설턴트로서는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천문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공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으니, 학생의 목표는 당연히 서울대나 연대였다. 처음에는 내신성적으로 힘드니, 수능으로 가겠다고 노력해본다고 했다. 하지만 모의고사의 범위가 점점 많아지고, 학생의 공부량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곧잘 나왔지만 점점 체력만큼 학생의 성적도 맘에 따라주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 점점 마음까지 약해지는 아이가 옆에서 보는 컨설턴트 입장에서도 안타까웠다.     







고3의 여름이 되면, 수시 지원을 위한 배치 컨설팅이 시작된다. 이 학생도 이 시기에 맞춰 나를 찾아왔다. 배치 컨설팅에서는 으레 6 지망의 학교를 짚어주는 딱딱한 이야기만 오가지만, 학생은 뜬금없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왜 이 병이 하필 나에게 찾아온 건지, 그런 갈등 속에서 억울한 감정이 앞섰다고 했다. 서울대를 꼭 가고 싶었고 갈 수도 있었는데 못 간다는 것이 억울해서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절망하면서 보내다가, 하루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 속의 광고를 듣게 되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후원해달라는, 평소 같으면 아무 감정 없이 흘려보냈을 말들이 학생의 마음을 쿡쿡 쑤셨다. 울고 있는 학생에게 어머니가 왜 우냐고 묻자,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서울대 천문학과에 꼭 가고 싶었는데, 내 내신으로는 어렵고 정시도 도전해서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또 안 될 것 같다. 왜 내가 하필 이 병에 걸린 건지, 아픈 몸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잠 못 든 날이 수없이 많은데 라디오에 나오는 꼬마가 나중에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하니 자기가 너무 위만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별을 보는 것은 꼭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인 서울대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실컷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학생은 다른 학교의 천문학과에 간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꾸준히 별을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결국 학생은 학생이 갈 수 있는 성적의 좋은 대학의 별을 보는 학과에 진학해서, 때때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별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아서 지리산에 텐트를 쳐놓고 별을 실컷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던 학생은 이제 꿈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      






나는 학생이 대학이 목표인 삶이 아니라,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위만 보지 않는, 누군가의 삶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누구보다 낭만적인 천문학자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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