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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Jun 08. 2022

대치동에는 하위권을 위한 학원이 없다

대치동 학생들에 대한 연민

대치동에는 하위권을 위한 학원이 없다





대치동 한복판에서는 부모의 세심한 관리와 학생의 열중, 이 두 가지가 시너지가 일으켜서 그럴듯하고 보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과연 대치동의 모든 이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느냐를 따져본다면 사실 그렇지 않다. 대치동의 30%정도는 열심히 노력하고 싶지만 그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케이스다. 학생이니까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놀고 싶고, 쉬고 싶은 욕구들에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이 쉽게 패배하지만, 어쨌든 학원에는 가기는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불안하기 때문이다.




대치동에 널린 게 학원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이름값을 하는 유명한 학원들이 몇몇 군데 있다. 7살 미만의 아이들을 붙들어 앉혀놓고 정석을 다 풀 때까지 집에 못 가게 하는 엄격한 관리 시스템이 있는 어떤 수학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모들은 아는 연줄을 다 동원하기도 한다. 이런 학원들은 학원 이름으로만 남지 않고 특수한 헤게모니를 만들어낸다. 학원 몇기 출신이다라는 영광스런 이름표가 생기는 것이다. 영재원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대학별, 지자체별로 운영되는 영재원은 기수에 따라, 그리고 파벌에 따라 커뮤니티가 형성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엄마들도 존재한다. 그 엄마들은 학부모집단들을 끌고 올라가면서 어떤 선생이 좋은지, 어떤 수업이 도움이 되는지의 정보를 파악하고 만들어낸다. 그 정보와 인맥을 얻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배타적 커뮤니티에 속한 엄마의 자녀들은 지시를 받고 일종의 트랙처럼 수업을 돌게 되는 것이다.




대치동의 나머지 부류 중 상당수 유형은 바로 이런 겉모양들을 흉내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유형에 속한 부모들은 학원이든, 영재원이든 대치동의 학부모들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커뮤니티들에 진입하기 위해, 그리고 각종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대형학원의 설명회를 다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폐쇄적인 벽에 금세 가로막히게 된다. 즉, 주도하는 엄마들의 흔적들을 따라가면서 최고의 선생들이 아닌, 그 밑의 이류 선생들의 수업을 들으며 커뮤니티에 진입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이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만났던 학생도 이러한 부모를 두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 학생은 태도는 굉장히 삐딱했지만 의식은 성숙한 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열성인 부모를 두고 있었음에도 학생은 공부에 큰 흥미도, 열정도 없었다는 점이다. 처음 그 학생과 엄마가 컨설팅 자리에 들어왔을 때 인상깊었던 것은, 엄마하고 같은 자리에서 컨설팅을 받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하는 학생의 태도였다. 선생님이 자기하고만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엄마가 나가 있는 다소 특이한 상황에서 첫 컨설팅을 하게 되었다. 이제 엄마도 없으니 편하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요, 아마 좋은 대학에 못 갈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쭉 설명해주었다. 여덟살 때부터 위에 서술한 유명한 수학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입학테스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엄마가 성화를 부려서, 결국 그 입학시험을 위한 과외를 따로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떨어져서 크게 혼나고, 다시 다른 2지망 수학학원의 가장 낮은 반에 들어가서 계속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국어논술학원에도 가야한다고 해서 '그냥' 다녔다. 그렇게 학원을 여러군데 다니면서 공부는 하지 않다보니, 거기서 늘은 것이라고는 국어 수학 실력이 아니라 ‘눈치보는’ 스킬이라고 했다. 빡빡하게 관리하는 학원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잘하는 건 숙제 베끼기로, 친구들이 해 놓은 숙제를 빨리 받아서 마치 자기가 푼 것처럼 배끼는 것은 진짜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학생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지켜보면서 학습관리를 해주었지만, 엄마는 그런 학생과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에는 엄마가 영재고를 가야 한다고 해서 결국 그 학생은 영재고 준비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반에서는 올림피아드 준비를 하는데, 자신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을 들으라고 엄마가 자기를 넣어놨다고 온갖 불평을 쏟아냈다. 결국 선생님에게 쫒겨나듯이 학원을 나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대치동에서 듣고 싶었던 수업을 듣게 되었다며 자랑을 했다. 엄마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 같다면서 얘기한 수업은 인강 1타 수학강사가 한 강의실에 몇백명을 몰아넣고 하는 대형 현강 수업이었다.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수업이 아니라, 드디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그 친구가 해준 말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자기는 항상 대치동 은마사거리의 횡단보도를 낮이나 밤이나 뱅글뱅글 건너간 기억밖에 없다고. 그리고 제발 학교 끝나고 마음 편히 놀아봤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그 학생은 결국 놀았어도 학원에 갔을 것이라고 덧붙이듯 말했다. 주변에 학원에 가지 않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놀기 위해서는 모순적이게도 학원에 가야만 했다. 그리곤 말했다.




 “선생님 제가 대치키즈인데요.
대치키즈로 살려면 그냥 학원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대치동을 생각하면, 보통 만들어진 대치동을 떠올린다. 대치동이라는 이미지는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 점철된다. 대치의 내로라 하는 대형학원들도 설명회를 하면 최상위권만을 위한 설명회를 준비하고 그렇게 홍보한다. 서울대와 연고대, 그리고 으레 이야기하듯 서성한과 중경외시이, 기껏  해봐야 건동홍숙까지 설명을 하지만  아래 대학으로는 구체적인 정보를 구할   곳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상위 대학에 수시로든, 정시로든   있는 대치동의 학생들은 20%정도로 적다.




그렇다면 나머지 80%의 대치키즈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그 80%에 속했던, 처음은 삐딱했지만 사실은 착했던 그 학생은 고3때 엄마랑 싸웠다면서 방에 찾아와 하소연을 하면서 자기가 다른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딱 하나 후회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대치동에서 자기 엄마를 죄인처럼 만든 게 가장 후회스럽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엄마는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서 거의 모든 설명회에 다 참석했는데, 항상 자기가 가지도 못할 대학의 정보만 잔뜩 듣고서는, 정말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의 정보는 하나도 묻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자기 자식의 실제 성적은 꽁꽁 숨긴 채로 정작 어디 가서 우리 애는 어디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준비해야 좋을까요와 같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생의 수준에 맞는 대학의 정보를 알려주는 학원은 대치동에 없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대치동에서 죽어라 떠돌았던 날들을 뒤로 하고, 결국 본인이 하고 싶었던 글을 쓰는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합격했다. 그 학생과 다른 대치동 학생 가운데 누가 더 행복할 인생을 살아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대치동엔 하위권 학생을 위한 학원이 없다.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런 학원들은 굉장히 음성적으로 움직여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홍보 문자도 뿌리지 못한다. 학원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치동에도 공부 못하는 애들이 더 많다. 그런 학생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런저런 학원들을 가기 위해 은마사거리의 횡단보도를 뺑뺑 돌면서 남들과 섞여 기계적으로 대치키즈로 살아갈 뿐이다. 그게 내가 대치동에 와서 대치동 아이들한테 느꼈던 첫 번째 연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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