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셋째 주 월요일 6시는 백조회 모임날이다. 백조회는 옛날 백석 골프 연습장에서 함께 연습하고 라운딩을 다녔던 15년 지기 골프 모임이다. 제일 막내가 56세이고 제일 큰 언니가 71세이다.나는 네 번째 언니다. 우린 그냥 미래언니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편하게 언니라고 부른다. 오래 만난만큼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다.오늘은 딸 둘 아들 하나인 막내가 지난 주일 숙제를 마친 날이라 저녁을 샀다. 룸이 있어 모임 때마다 자주 가는 음식점인데 오늘따라 왕갈비도 냉면도 너무 맛있다고 모두들 말했다. 식사를 산 막내가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2000년에 우린 서울 아파트를 팔고 이곳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사서 입주하였다. 옆에 작은 산과 근린공원도 있고 평수도 조금 커서 사는데 불편이 없었다. 이사를 오며 짝꿍이 가까운 골프연습장에 등록을 하였고 1년쯤 뒤에 짝꿍이
"나이 들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골프라고 하는데 당신도 함께 하지."
라고 권해서 골프에 입문하게 되었다.
골프는 밖에서 보면 쉬운 운동 같지만 너무 힘들었다. 한 자리에 계속 서서 같은 동작을 하고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힘을 주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도 잘 펴지지 않았다. 의욕이 앞선 초보 골퍼 중에는 갈비뼈에 금이 가서 고생하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다. 몇 달 레슨을 받은 후에 너무 재미없어 그만두려고 하다가 골프채가 아까워 그냥 하게 되었다.
연습장에는 부부가 함께 연습하는 사람이 많아서 가족 같은 친근함이 묻어났다. 이곳이 예전에는 조금 시골이다 보니 직장 다니시는 분도 있었지만 주로 공장을 운영하시는 사장님, 조상에게 물려받는 땅에 건물을 지어 건물 월세로 생활하시는 분도 많았다. 시간도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인지 시골인데도 골프 인구가 많았다. 연습장에서는 대부분 호칭이 사장님, 사모님이다. 조금 더 높여주는 호칭으로 회장님이라고도 불러준다. 이 지역이 개발되며 신도시로 발돋움하는 시기였기에 이곳이 고향인 분들이 많았지만 우리처럼 외지에서 들어온 분들도 차츰 늘어났다.지금은 이곳이 우리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골프연습장 옆에 숯가마 찜질방이 있어서 연습 후에는 함께 찜질방에 가서 몸을 풀며 그렇게 한 분 두 분 친해졌다. 우린 몇 년 동안 연습장에 연회원으로 등록하여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서로 얼굴 보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일이 있어서 연습을 못해도 얼굴 보려고 연습장에 들를 정도였다. 그러던 중 연습장 주인이 바뀌며 연습장을 리모델링하고 스크린 골프가 들어왔다.우린 연습으로 몸을 푼 후에 지하 스크린골프장으로 내려가서 스크린 골프에 흠뻑 빠졌다. 4명 또는 8명까지 모여 깔깔대며 게임에 빠졌다. 스크린 골프로 이글도 하고 숏홀에서 홀인원도 두 번이나 하다 보니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스크린 골프에 푹 빠져 살던 즈음에 연습장에서 여성 스크린 골프대회를 하였다. 사전에 일정 횟수 이상 치고 등수에 드는 사람만 본선에 참가할 수 있어서 그때부터 삼삼 오오 모여서 도전하였다. 순위 보드에 매 시간마다 순위가 업치락뒤치락 하여 도전의 묘미를 더했다. 물론 상술이긴 하지만 1등 상금 60만 원은 탐날만하였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예선전을 치르느라 투자한 스크린 비를 모두 합하면 회사는 손해보다는 이익이 훨씬 많았을 것 같다. 나도 3회 골프대회에서 한 번 1등을 하여 상금으로 60만 원을 받아 함께 참가한 여성 골퍼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만 라운딩이 가능했다. 주말 골프는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이 함께 나가주어 너무 고마웠다. 라운딩을 나가면 정말 공이 잘 맞는 날도 있지만 안 맞는 날은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냥 라운딩 가면 오잘공(오늘의 잘 친 공) 하나만 기억해."
라며 못 쳐도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안 맞는 날은 스트레스다. 골프는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어쩔 수 없이 가끔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자식과 골프공'이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린 라운딩 후에도 아쉬움이 남아 스크린 골프로 또 라운딩을 돌고 퇴근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힘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운동하던 골프가 조금 시들해질 무렵 우리는 마음이 맞는 9명이 한 달에 한번 모임을 하기로 했다. 매달 회비를 내어 일정 금액이 모아지면 나누어 금반지도 함께 맞추고 어떤 때는 뽑기를 하여 한 사람이 타기도 하였다. 함께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도 다녀왔고 지금도 여행 갈 날을 기대하며 회비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린 연습장도 스크린 골프도 잘 가진 않지만 가끔 라운딩만 나간다. 나는 요즘 라운딩 전에 그냥 스크린만 한번 하고 나간다. 공이 맞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구력은 모두 10년 이상 되지만 타수는 생각보다 잘 안 나온다. 골프에 빠져있을 때 한두 분은 싱글패를 받은 분도 있지만 연습과 라운딩을 꾸준하게 병행해야 하는 운동인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100타가 넘는 분도 있고 대부분 8, 90대를 친다. 그래도 이제는 여유가 생겨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냥 즐겁게 라운딩을 마친다.
어제가 모임날이라 음식점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카페로 이동하여 손자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골프 이야기 등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달에 한 이야기를 이번에 또 해도 새로운 것처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오늘은 곧 시작해야 할 김장 이야기가 더해졌다. 그러며 하는 이야기가
"이제 골프 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드네."
라고 큰 언니가 말하자 다들
"정말 그래요. 우리가 스크린도 정말 원 없이 했기 때문에 지금은 별 미련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한 마음이다. 나도 그렇다. 가끔 휴일에 짝꿍과
"심심한데 우리 스크린이라도 갈까?"
"전화해보고 시간이 맞으면 가요."
그러다가 원하는 시간대에 자리가 없으면 그냥 포기해버린다. 예전 같으면 저녁 늦은 시간에도 예약하고 갔을 텐데 이젠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린다. 우리도 골프가 시들해진 건 마친가지다.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치고 싶은 마음이 내킬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한 달에 한번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너무 좋다. 골프로 맺어진 15년 인연이지만 지금은 골프보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더 좋은 우리들이다.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울까 기대하며 모두 건강하게 한 달 잘 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