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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11. 2022

교사, 이제 시작

에피소드 3-나는 선생님이었다

 1980년 2월에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하고 3월 1일 자로 관악구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 4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스무 살에 교사가 되어 어릴 때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기 5명이 함께 발령이 났는데 4년 동안 우리는 뭉쳐서 너무 재미있게 지냈다. 그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만나고 있는데 지금은 나를 제외하고 4명은 모두 명예퇴직을 하고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첫 학교 제자들이 생각난다. 그 당시는 한 학급에 50명이 넘는 학생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때여서 늘 교실이 꽉 찼다. 햇병아리 담임 선생님이라 경험이 부족하여 시행착오가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야무지지 못하고 마음이 여려서 3월에 학급을 맡으면 아이들을 확 휘어잡아야 한다고 선배들이 말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 늘 줄다리기(힘겨루기)를 하였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첫해였다.      


 지금은 담임 선생님께서 병가나 연가를 내면 시간강사를 임용하여 임시 담임을 맡기지만 그땐 달랐다. 4학년에 여자 담임 선생님께서 출산을 하셨다. 그 반 학생들을 나머지 반으로 분반을 하여 한 달 동안 다른 반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지금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던 시기였다. 원래도 학생 수가 많았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교실이 더 만원이었다. 분반한 반 학생들이 소외감 없도록 신경 썼지만 그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를 고대하였을 것 같다.      


 첫 학교에서는 매달 학급별로 청소상과 아침 자습을 조용히 잘하는 반을 선정하여 교장 선생님께서 상장을 주셨다. 교실 바닥이 마루였는데 양초를 가져와서 광을 내는 등 청소 시간에 반마다 청소에 열을 올렸다. 우리 반은 거의 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1년이었던 것 같다. 첫 학교에서는 4년 동안 근무하였는데 4, 5, 6학년을 차례로 담임하였고 결혼하던 마지막 해에는 3학년을 담임하였다. 정호라는 학생은 3년 동안 계속 우리 반이 되었었다. 키는 작은 편이었는데 똘똘하고 명랑한 학생이었다. 동창회 때 들은 소식으로는 서점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다.     


 오래전에 첫 학교에서 가르쳤던 6학년 제자들이 동창회를 한다고 하여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벌써 30대 초반이 되어 있었다. 결혼한 제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미혼이었다. 6학년 동심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수다를 떠는 제자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선생님께서, 너는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한다.”

고 하셔서 그 후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도 취업하였다고 고마워하는 제자가 있었다. 그 제자가 얼마 전까지 캐나다에 파견 나가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제자도 궁금하다. 그리고 일기장 검사를 매주 하면서 일기장에 좋은 말을 써 주었다고 한다. 그때 써주신 응원 메시지 덕에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었다는 제자도 있었다.


 교사로 근무한 학교 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제자들이 있다. 2004년 3학년 2반 학생들이다. 지금까지 소식을 전하며 지내고 있는 제자도 있다. 그 해 나는 아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 인성교육 실천사례 연구발표 대회에 계획서를 내고 1년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 놀이를 통한 인성교육 등 아이들이 좋아할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서울시교육청에서 1등급을 수상하였다. 이곳에서는 2000년부터 2006년 2월까지 6년 동안 근무하였는데 매년 연구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그것이 도움이 되어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들께 

 “꼭 승진하기 위한 점수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고 1년에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연구하고 실천하면 1년이 행복하다.”

 고 늘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1년 동안 학생들에게 집중하게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다 보면 학생들과도 행복하고 학부모들도 담임선생님을 신뢰하게 되어 즐거운 1년이 된다. 물론 교사는 많이  바쁘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끼면 좋은 것 아닌가? 나는 연구발표대회에서 8회나 상을 받았고 전국 2등급을 받은 것도 두 차례나 된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32년 6개월 동안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매년 2월이 되면 1년을 돌아보게 되는데 정말 힘들었던 해도 많았다. 새로 전근 간 학교에서 6학년을 연이어 두 번이나 맡았던 적이 있다. 6학년은 첫 학교에서 한 번만 맡았었다. 교대에서 무용을 선택(그때는 교대가 2년 제라 전공이 없었음)했으므로 주로 1학년 담임을 많이 했던 나로서는 새 학년이 되기 전부터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때는 주 5일제 수업이 정착되기 전이어서 한 달에 두 번은 토요일에도 등교할 때다. 토요일에는 급식이 없어서 엄마의 마음으로 매번 초코파이 같은 것을 사 가지고 가서 우유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해는 정말 많이 힘들어서 처음으로 명예퇴직을 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무사히 졸업도 시켰다. 말썽쟁이 제자들이 나중에 찾아와서 초등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내가 가장 생각난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힘들었던 기억들이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이들이 내 진심을 알았구나.’

6학년 제자들이 지금은 모두 꿈을 찾아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교사는 늘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응원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말 한마디로 꿈을 찾는 사람도 있고, 교사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로 용기를 잃는 사람도 있다. 32년 6개월의 교사 생활 중에 나로 인해 좋은 추억을 가졌기를 바란다. 혹시 상처를 준 제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의 제자들 모두 지금은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잘 살길 응원한다. 그 후로 일곱 개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교감으로 5년 반을 근무하였고, 교장으로 5년 반을 근무하였다. 세월이 참 빠르다. 1980년에 교사로 첫발을 들여놓았는데 벌써 42년 6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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