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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6. 2023

20년 전 학부모님과 점심을

냅킨 공예로 만든 티슈 커버


오늘은 학교 자율휴업일이라 쉬는 날이라 하루 보너스를 얻은 기분이다. 내일도 휴일이라 연휴가 이어져서 마음이 참 편하다. 이번 휴일이 지나면 7월 여름 방학식까지 달려야 할 일만 남는다.


서울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이 있다.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을 타는 병원이다. 처음 혈압이 오를 때부터 다녀서 벌써 8년 째다. 3개월에 한 번씩 가서 혈압을 체크하고 피검사를 하고 고지혈증도 관리한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혈압도 정상이고 고지혈도 정상인데 의사 선생님께서 주치의처럼 건강을 관리해 주신다. 퇴직하고 나니 서울 나가는 일이 조금 힘들지만 병원을 옮기는 일도 어려워 그냥 쉬는 날이나 토요일에 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특별한 분을 만났다. 20년 전 학부모님과 후배 선생님이다. 얼마 전에 책을 출간하였다. 홍보하던 중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께 책 출간 소식을 알렸다. 명예퇴직을 하고 우리 학교에 시간 강사로도 와 주었던 후배라 아주 편하다. 축하해 준다고 하면서 오래전 좋은 학부모와 선생님으로 만났던 학부모님과도 연락이 되었다고 했다.


후배 선생님 자녀와 우리 반 제자가 같은 학년이어서 두 분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학부모님께서 학교 앞에서 가게를 하면서 후배 선생님께 도움을 많이 주어 지금까지 서로 연락하는 사이다. 얼마 전에 통화하면서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퇴직했다고 하니 한 번 뵙고 싶다고 말해 같이 한번 만나자고 했다. 마침 6월 5일이 학교자율휴업일이라 서울 병원에 갈 예정이어서 만나기도 약속을 했다.


2000년에 남부교육청에서 근무하던 나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강서교육청 관내 학교인 S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왔다. 그때 후배와 같은 1학년 선생님이었다. 그해 예술제가 있어서 반에서 3~4명씩 학생들을 뽑아서 꼭두각시춤을 가르쳤다. 지금은 특정 학생을 선발해서 하는 예술제는 없어지고 학급 단위로 전체 학생들이 무대에 서게 하거나 학급 학예발표회를 많이 한다.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배가 학년의 막내라 무용을 맡기고 나는 다른 종목을 지도했던 것 같다. 후배가 꼭두각시춤 지도는 처음이어서 교대에서 무용을 전공(우리 때는 선택)한 나였기에 무용 지도 경험이 많아서 후배에게 도움을 많이 었던 것 같다. 윤이(가명)가 꼭두각시춤을 추고 너무 재미있어해서 그때부터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예술제에서 했던 꼭두각시춤으로 인해 윤이는 예원중, 서울예고를 거쳐 이대무용과를 졸업하고 지금 예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게 진로교육인 것 같다. 그때 무용에 참가했던 다른 학생 두 명도 무용을 전공하였다고 하니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추억이 평생직장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만난 분이 윤이 엄마다. 윤이가 1학년때는 후배 반이었는데 2, 3학년 때 2년 동안 우리 반이 되었다. 그냥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글쓰기도 잘했는데 발표력이 조금 부족했고 이상하게 산수에 자신이 없어했다.


오늘 들은 이야기인데 가정환경 조사서에 윤이가 발표력을 키우고 자신감 있게 학교 생활 하면 좋겠다고 써서 보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그걸 보셨는지 윤이 발표도 많이 시켜주고 용기를 주어 그때부터 발표도 잘하고 자신감도 키웠다고 한다. 선생님 덕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다. 내가 특별히 윤이만 챙기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 지도하는 대로 잘 따르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5학년 11월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다음 해 6학년 때 학급 회장이 되고 전교 회장도 스스로 나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정말 4표 차이로 유력한 전교회장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전교회장에 입후보한 것도 몰랐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라며 감사하다고 하신다.


생각해 보면 2, 3학년 때 우리 반이었는데 2년 동안 인성교육 실천사례연구 대회에 도전하며 우리 반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때의 학생들이 지금도 많이 기억난다. 나도 2년이 즐거웠고 아마 학생들도 2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많이 성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윤이 엄마는 학부모님일 때도 늘 학급을 많이 도와주셨다.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윤이도 전학을 갔는데도 늘 연락을 주셨다. 윤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감으로 근무하던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키도 174센티미터로 엄청 컸고 예쁜 숙녀로 자라 있었다. 윤이와 만난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 교장으로 발령 났을 때도 윤이 엄마가 학교에 한번 오셨다. 만난 지 거의 6년 정도 된 것 같다.


오늘 조금 이른 시간인 11시에 셋이서 쌈밥집에서 만났다. 그냥 제육볶음과 된장찌개를 파는 집인데 쌈은 먹고 싶은 대로 가져다 먹는다고 했다. 렌틸콩으로 밥을 짓는 밥솥이 줄지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날씨가 선선하여 발코니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그냥 동네 언니 동생이 만난 것처럼 편했다.


밥 먹으며 요즘 사는 이야기도 하고 옛날 S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물론 윤이 엄마가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그때의 일을 정말 많이 기억하여 내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예향정


윤이가 벌써 30살이다. 결혼을 하거나 공연을 할 때 꼭 알려달라고 말했더니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고 했다. 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오늘은 윤이엄마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 가려고 했는데 징검다리 연휴라 길이 밀리면 3시간도 걸린다고 해서 윤이엄마가 서울로 나온 거다. 조금 아쉬웠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날짜도 정했다.


워낙 정이 많으신 분이라 요즘 마을에서 배우고 있는 냅킨 공예로 만든 티슈커버 두 개를 가지고 오셨다. 집 뜰에서 땄다며 싱싱한 보리수 열매도 담아 오셨다. 예전에도 솜씨가 좋아서 늘 학습자료도 많이 만들어 주셨던 분이다. 서로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주었다. 집에 가져와서 식탁에 올려놓으니 우리 집 식탁과 너무 잘 어울렸다. 내 취향을 너무 잘 아시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1층에 는 카페로 내려왔다. 내가 점심도 사고 차도 대접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식사값을 내고 왔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는 내가 식사와 차 모두 대접하기로 약속했다.


윤이 엄마와 후배와의 만남은 우연하게 이루어졌지만 이렇게 오래전 학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다. 왠지 그때로 돌아가 젊어진 것 같았다. 더군다나 20년 전 학부모님과의 만남은 흔한 만남이 아니기에 정말 소중하다. 후배선생님도 성격이 좋아서 만나면 늘 즐거운 사람이라 오랜만에 만났어도 너무 편하고 좋았다. 왠지 신세를 진 것 같아 그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기회는 있는 거니까 다음에 더 맛있는 것으로 대접하면 될 것 같다.


건강이 조금 안 좋으신 윤이 외할아버지께서 얼른 쾌유하셨으면 좋겠다. 친정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대도 약속을 지켜 준 윤이 엄마와 이렇게 만날 수 있도록 이어준 후배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아마 다음에 만나도 이야기꽃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쩜 더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지도 모른다.


만남은 언제나 좋다. 특히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은 더 그렇다. 헤어지기 싫어 몇 시간씩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좋았던 추억을 나누고 살아가는 일상도 공유한다. 이런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만날 날을 기대하며 헤어졌다. 헤어지고도 아쉬워 톡으로 마음을 또 나눈다. 모두 건강하게 평범한 일상의 기적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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