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Mar 08. 2024

슬기로운 노인복지관 생활, 설레는 첫 수업

수업이 이렇게 편할 수 있는 것은 비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기다리던 노인복지관 첫 수업 날이다. 지난주에 평생 교육프로그램 합격 문자를 받고 설렘으로 1주일을 보냈다. 이번 주 월요일(3월 4일)은 대부분 학교에서 입학식이 있었다. 입학하는 학생도 기다리지만, 함께 참석하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더 설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도 입학식만큼 노인복지관 첫 수업이 설레고 기대되었다. 


호사다마 (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이 있으면 방해하는 요소가 많다. 겨울 내내 건강했는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몸살인지 건강이 안 좋아졌다. 미열도 있고 목이 아파서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서 자가 키트를 해 보았다. 저녁과 아침 두 번 다 한 줄이었다. 코로나는 아닌 것 같아 집에 있는 목감기약과 타이레놀, 비타민 C를 먹었다. 특히 화요일에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지럽고 기운이 없었다.


수요일부터 수업인데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찬 바람 쐬기가 싫어서 집에 있는 감기약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쉬었더니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 주치의처럼 다니는 병원 원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감기 걸려서 고생했다고 말씀드리면 "감기약 없는 것 아시지요. 쉬셔야 합니다. TV 보고 핸드폰 하는 건 쉬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야단치신다.


하루 종일 쉬고 저녁에도 일찍 잤더니 조금 좋아졌다. 역시 감기는 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시부터 수업이라 8시 30분에 알람을 맞추어 두었다. 첫날 결석하면 수강이 취소된다고 해서 감기가 조금 나아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분에게 감기가 옮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여행 영어(중급) 수업은 완전 학습으로


오늘 수업은 두 과목이다. 오전에는 여행 영어 중급이다. 수강 인원이 20명으로 100% 출석이다. 20명 중 여섯 만 남자다. 출석을 부르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이 정말 친근하다. 숙자, 명자, 순자, 옥순이, 옥경이, 영자 등 우리 시대 이름이다. 옛날 초등학교 때 출석 부르는 분위기다. 이름도 정겹고 분위기도 편했다.


강사님께서

'Age is just number.'라는 문장을 첫 화면에 올려주셨다. 오늘 수업에 참석한 분들이 대부분 70대이니 딱 맞는 문장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자기소개를 영어와 한글을 섞어서 했다. 아무래도 나는 60대이니 젊은 축에 속한다. 영어 배우는 이유가 나처럼 손자와 영어로 대화하고 싶어서 오신 분이 몇 분 계셨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영어를 안 쓰니 자꾸 잊어버려서 오시게 되었다고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모두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욕이 불타는 것은 분명하다.


강사이신 안젤라 선생님께서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 공부 분위기가 정말 편했다. 내용이 쉽기에 오늘 수업은 완전 학습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소개해 주신 교재를 주문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손자 데리고 외국 여행 가면 영어 잘하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이건 나의 바람이지만 시작이 중요하니 꾸준하게 영어 공부하다 보면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식 교과로 영어를 배우고 있고,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있어서 일찍부터 영어를 접한다. 우리 때는 중1부터 영어를 배워서 6학년 졸업하고 겨우 알파벳만 익히고 입학했다. 그래도 햇수로 따지면 꽤 오래 영어 공부했는데 입에서 술술 영어가 나오지 못한다. 글로는 읽을 수 있는데 말로는 안 나온다. 이번 수업으로 쉬운 영어라도 술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첫 수업을 마쳤다.


오후 수업인 캘리그래피가 2시에 있어서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고 가지고 온 책 읽다가 수업에 들어가려고 한다. 1층 식권 판매대 키오스크에서 회원증을 찍고 3,500원을 넣고 식권을 출력했다. 3층 식당에는 벌써 긴 줄이 서 있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신 분도 있고, 일부러 점심 드시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들 100여 분은 무료로 식사가 제공된다고 한다.



하루에 230명 정도 식사하실 수 있다고 한다. 1층 식권 판매대 키오스크에서 식사 인원이 차면 자동으로 식권 발부가 되지 않는다. 식사는 11시 30분부터 12시 40분까지 가능하다. 식당이  크지만, 식사하는 분이 많아서 먼저 들어가신 분이 식사하고 나오시면 빈자리에 앉게 된다.


점심은 학교 급식 같았다. 어르신들 식사라 우엉도 작게 잘라서 볶아서 나왔다. 나름 배려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어조림도 맛있었고 해초무침도 새콤한 게 먹을만했다. 라면 한 그릇보다 저렴하니 그저 감사하다.


캘리그라피 수업은 처음 글씨 배우는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1층 휴게실에서 가지고 간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독서는 저속노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요즘 가방에 책 한 권은 기본이다. 한 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서 오후 수업인 캘리그라피 강의실에 올라갔다. 강사 선생님은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신 분이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되었다. Calli는 아름다움을 뜻하고, Graphy는 서풍, 서법, 화풍 등을 의미한다. 즉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다양한 표현을 통한 아름다운 글씨 예술로 법과 규칙을 엄격하게 생각하는 서예와 구별된다고 한다.


첫 시간 선긋기 연습

첫 시간이라서 캘리그라피에 대한 개념을 알고 선긋기 연습을 하였다. 수강생은 모두 15명인데 남성이 딱 한 분이다. 예전에도 배운 적이 있다고 하셔서 혼자지만 열심히 하실 것 같다. 캘리그라피는 도구가 필요해서 강사 선생님께 모두 주문했다. 주로 화선지에 붓펜으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쓰는 것이 기본이다. 처음 글씨 쓰기 배우는 마음으로 기초부터 잘 배워야겠다.


매주 수요일은 학교에 출근하는 것처럼 노인복지관으로 간다. 교사라서 늘 가르치는 일을 했다. 가끔 학부모 연수 강의도 했기에 앉아서 수업받은 것이 오래되었다. 이제 퇴직 후 제2 인생은 가르치는 교사에서 배우는 학생으로 살려고 한다. 교사보다 학생의 입장이 되니 참 편하다. 모범생처럼 강사가 질문하면 대답도 크게 하였다.


노인복지관 수업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들이라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 강사도 노인임을 감안해서 쉽게 설명해 주었다. 다른 곳에서 캘리그라피 수업을 받으셨던 분들이 젊은 사람들과 같이 수업하며 너무 비교가 되어서 한두 달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하신다. 수업료도 무료인 데다가 이렇게 분위기 좋게 수업받을 수 있으니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노인복지가 좋음에 감사하다.




이전 01화 슬기로운 노인 복지관 생활을 꿈꾸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