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번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요리를 할 때는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가장 쉽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거다 싶으면 한글로 정리해서 출력한 후 나만의 요리책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레시피를 차곡차곡 모아 요리 교과서(나만 보는 책)를 만들었다.
내 요리 교과서에는 양념도 묻고 빨강, 파랑 볼펜으로 수정도 하여 지저분하다.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곳도 많아 정신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삶에 보물 같은 책이다.요리를 해보고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에는 메모를 해서 양념양 등을 조절하여 메모해 둔다. 그러면 다음에 같은 요리를 할 때 실패할 확률이 아주 낮다. 특히 1년에 몇 번 안 하는 오이 피클, 오이지, 갈비찜, 묵은지찜, 버섯전골 등은 꼭 요리 교과서를 봐야 자신 있게 할 수 있다.손자가 메추리알 조림을 좋아한다. 메추리알 조리법도 들어있어서 요리할 때마다 펼쳐보고 하기 때문에 매번 맛있다. 가족들도 요리 솜씨가 좋아졌다고 하며 맛있게 먹는다. 물론 나한테 요리 교과서가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친정엄마는 요리를 잘하셨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도 뚝딱 무치고 찌개도 금방 끓여주셨다. 김치도 맛있게 담그셨다. 생각해보면 이 나이 되도록 내가 김치를 직접 담가 먹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늘 친정어머니께서 김치를 담가주셨기 때문이다. 공주처럼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공주가 살아 있긴 한 것 같다. 친정어머니께서는 김치가 떨어지면 손자들 얼굴도 볼 겸 올라오셔서 김치를 담가주셨다. 파 감치도, 총각김치도, 열무김치도 쉽게 잘 담그셨다.매년 12월에는 김장을 해주셨다. 배추김치는 많이 담가서 김치냉장고에 두고 1년도 더 먹어 남은 묵은지로 김치찌개를 끓여먹고 김치찜도 맛있게 해 먹었다. 거기다가 총각김치와 파김치도계절마다 담가주셔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표 김치가 늘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런 친정어머니가 작년부터 인지 기능이 떨어져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신다. 작년 12월에 김장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다가 짝꿍과 둘이 해 보기로 하였다. 한 번도 김치를 사 먹은 적이 없어서 큰 용기를 내어 담가 보기로 했다.
김치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이웃 학교 교장님이 결혼한 아들이 신혼여행을 갔다 오는 날 음식을 많이 차리셨다고 한다. 몇 가지는 직접 만들고 몇 가지는 평소에 잘 가는 반찬 가게에서 주문했다고 한다. 철없는 아들이 식사하며 그냥 맛있게 먹으면 좋으련만
"이거 엄마가 만드셨어요?"
하며 자꾸 물어보아서
"그럼, 엄마가 만들었지."
"아무래도 김치는 엄마가 한 것 같지 않은데요."
그래서
"응, 김치는 대기업 다니시는 이모님이 담가 주셨어."
라고 말했더니 아들이 갸우뚱하더란다.
김치는 농협김치를 주문한 거였다고 했다. ㅎㅎ
사 먹어도 되지만 그동안 할머니 김치에 익숙한 가족을 위해 한번 담가 보기로 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시긴 하지만 어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조금 든든했다. 매년 주문하던 해남에서 절임 배추를 40킬로를 주문했다. 큰 아들네랑 작은 아들네도 담가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넉넉하게 주문했지만 맛있게 담글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무채를 몇 개나 썰어야 할지 몰라 유튜브도 보고 아는 분께 여쭈어도 보며 준비했다.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무와 파, 갓, 마늘 등을 넉넉하게 준비하였다. 찹쌀풀도 전날 쑤어두고 무와 파도 다듬어 준비해 두었다.
김장 매트를 깔고 채칼로 무채를 썰고 새우젓과 액젓에 양념을 버무렸다. 우리 가족은 젓갈 냄새가 나는 것을 싫어해서 매년 새우젓과 액젓만 넣고 김장을 담갔다. 가장 중요한 것이 김치 속에 들어갈 양념 간이라 맛보고 또 보고, 배추 속에 싸서 엄마도 드리며 양념을 완성하였다. 짝꿍도 맛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배추에 속을 넣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김치통이 늘어날 때마다 행복도 늘어났다.
그런데 어쩜 배추도, 무도 딱 맞게 샀는지 신기했다. 아무래도 내가 엄마 음식 솜씨를 닮았나 보다.
정리까지 하고 나니 너무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김장을 했다는 뿌듯함에 짝꿍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렇게 담근 김치는 다행히 짜지 않고 먹을만했다. 할머니표 김치보다는 조금 덜 맛있지만 자꾸 하다 보면 나도 잘하리라 생각한다.
이제 파김치에도 도전해 보았다. 지난번에 한번 담가 보았는데 모두 맛있다고 했지만 뭔가 약간 부족한 것 같아 이번에는 정말 맛있게 담가 보려고 신경을 썼다. 쪽파는 머리가 크지 않은 것으로 세 단을 샀다. 다듬어 놓은 파도 있었지만 머리가 너무 크고 싱싱하지 않아 다듬지 않은 파 세단을 사 왔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쪼그리고 앉아서 우영우를 보며 다듬는데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팠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렇게 힘드니 만들어 놓은 것을 사다 먹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를 깨끗하게 씻어 소쿠리에 받쳐놓고 찹쌀풀을 먼저 쑤었다. 찹쌀풀이 식은 후에 지난번에 적어놓은 레시피를 조금 수정하여 양념을 만들었다.고춧가루 양이랑 액젓 양을 조금 줄여서 양념을 만들었다. 맛있어야 할 텐데--정성을 다해서 파를 버무려서 통에 조금씩 돌돌 말아서 꺼내기 좋게 담았다.
날씨가 더워 반나절만 상온에 두었다가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파김치 레시피)
쪽파 큰 단 3단 액젓 2컵 반 매실 1컵 고춧가루 2컵 반 단것 조금 찹쌀풀 3T+물 3컵
며칠 후에 시누이네랑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파김치를 꺼내 놓았다. 너무 맛있다고 한다. 파도 크기가 딱 좋고 양념도 딱 알맞다고 한다. 정말 맛있는 거 맞냐고 또 물어보았다. 왠지 뿌우 뿌우 자신감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