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다른 때는 일기예보도 안 맞더니 오늘은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딱 맞았다. 6월 29일에 코로나 이후 처음 대면으로 하는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었다. 거의 3년 만에 학부모님께서 학교를 방문하는 큰 행사였다. 그날 고생을 하신 선생님들을 위해 커피차를 부르려고 계획했는데 그날도 비 예보가 있어 오늘로 연기하였다. 사실 오늘도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음 주가 방학이라 더 이상 연기할 날짜가 없어서 그냥 하기로 하였다. 며칠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비 오는 날 커피차를 어디에 둘지 의논을 하였다. 1톤 트럭이라 중앙현관에 올라올 수 있다는 말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차는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중앙현관에 딱 맞게 올라올 수 있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후 오후 2시 30분부터 커피차를 오픈했다. 전 교직원이 80명 정도 되어 한 울타리에 있는 유치원에도 알려 이용하도록 하였다. 커피 100잔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차 종류는 모두 25종류가 있어서 커피를 못 드시는 분은 다른 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2시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못해서 녹차 라떼를 주문했다. 촌스럽게 2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 밤에 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누락되는 분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돌봄 교실, 학교보안관님, 급식실 조리원님들에게 꼭 말씀드려 참여하도록 일렀다.
컵 홀더 캐리커쳐
선생님들이
커피차는 처음이라 너무 좋아하셨다. 긴 줄을 서면서도 너무 행복해하셨고 동학년끼리 우르르 교장실로 와서 손 하트를 날리기도 하였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컵홀더에 캐리커쳐로 포샵한 내 사진을 넣었다. 캐리커쳐는 20대의 내 자화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족 카톡방에 올렸더니 아들이 너무 과하게 포샵한 거 아니냐고 했다. 맞다. 좀 과하게 했다. 혹시 누군 줄 몰라 궁금증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모두 바로 맞추었다. 아직 젊었을 때 모습(이미지)이 남아 있나 보다. 조금 재미를 주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모두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친목회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날렸다. 정말 퇴직하기 전에 이런 이벤트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커피차는 연예인만 받는 줄 알았다. 보통 연예인이 연예인에게, 팬클럽이 연예인에게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또 기획사가 촬영장 스텝이나 연예인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 표시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맞추는 것도 소통하며 젊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퇴직일이 가까워졌다. 이런 이벤트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다. 교감 선생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교장 선생님은 인복이 참 많으세요.”
라고 하시며 학교에 좋은 분이 발령 나서 오시고 강사님들도 필요할 때 채용이 잘 된다고 하신다. 나 때문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늘 감사하다. 내가 생각해도 난 인복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우리 학교 교육 가족 모두 너무 훌륭하고 소중한 분들이다. 내가 인복이 많아서 좋은 분들과 함께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분 한분 떠 올려 보아도 누구 하나 거슬리는 사람이 없다. 모두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주어 학교가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처음 교장으로 이 학교에 발령이 났을 때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학교에 발령이 나서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했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5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늘 기분 좋게 근무하였다. 좋은 사람들과 곧 헤어지겠지만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내 마지막 일터가 여기라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