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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26. 2022

유 선생님 사모님의 복지관 나들이

복지관 나들이 가시는 유 선생님 사모님


"유 선생님 사모님, 복지관 가셔야지요.”

"오늘이 무슨 요일인데?”

"어제가 일요일이었으니까 오늘은 월요일이지요.”

유 선생님 사모님이 천천히 일어나신다. 허리가 조금 안 좋으셔서 일어나시는 것도 한참 걸린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오늘도 신나게 복지관으로 나들이하신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우리 엄마 이름이다. 물론 이름은 따로 있다. '임헌복' 여사가 우리 엄마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잊은 지 오래되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 선생님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사모님 호칭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아시는 분은 다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정말 건강하셨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사모님 표 요가를 1시간씩 하셨고 나도 돌리기 어려운 두꺼운 훌라후프를 매일 천 번씩 돌리셨다. 65세까지는 산악회에 가입해서 매주 등산을 하셨다. 산악회 회원들 중 5등 안으로 먼저 산 정상에 오르실 정도 날렵하셨다. 설악산 대청봉, 제주도 한라산도 거뜬하게 오르셨는데 지금은 동네 뒷산에도 못 가신다. 세월이 참 야속하다.      


평생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셨던 유 선생님 사모님께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유 선생님 사모님의 자랑이

"나는 건강하여 평생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고 수술도 안 했다.”

는 거였는데 연세가 드시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유 선생님 사모님께서 작년 봄에 넘어지면서 어깨를 다쳐서 20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 계신 것이 스트레스가 크셨는지 갑자기 인지가 나빠지셨다. 어쩜 그전부터 조금씩 안 좋아지셨는데 혼자 생활하고 계셔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퇴원하시며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옆에 계시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주야간보호센터라는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작년까지는 우리 집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유 선생님 사모님이 작년 추석쯤에 장기 요양 인정등급으로 4등급을 받아 주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게 되었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매일 복지관으로 나들이하신다. 주야간보호센터를 복지관이라고 부르신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듯 집 앞에서 미니 셔틀버스를 타고 가신다. 현관 카드키와 핸드폰을 넣은 작은 가방을 크로스로 맨 후 지팡이에 의지해 집을 나선다. 저녁에 가끔 고향 친구분이 전화를 하시면

"낮에 복지관에 갔다가 조금 전에 왔어. 거기서 운동도 많이 하고 저녁까지 먹고 왔어. 실장님들도 잘해 주고 재미있어."

신나서 통화하신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신나서 이야기하시는데 듣는 나는 눈물이 난다. 고향 친구분들도 이제 많이 돌아가시고 몇 분 남지 않으셨다. 몇 분 안 남으신 분 중 한 분이 유 선생님 사모님이라서 너무 감사하다.


유 선생님 사모님이 처음부터 복지관을 좋아하신 건 아니다. 처음 복지관에 모시고 가려던 전날 밤에 주무시다 갑자기 나오셔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사위에게

“얘가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가려고 거짓말을 시켰어. 나 안가.”

 “그럼 가시지 마세요. 그냥 집에 계셔요.”

달래 드리고 주무시도록 했다. 다음 날 여쭈어보니 한번 가 보신다고 하여 모시고 갔는데 가시자마자 어르신들과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복지관은 일요일과 설날, 추석을 제외하곤 모두 운영한다. 일요일에 저녁 식사를 하시며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지루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복지관에 가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유행가를 좋아하시는 유 선생님 사모님은 수요일을 매일 기다리신다. 수요일에는 노래강사가 오기 때문이다. 노래 교실 할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유행가를 부르신다. 기억력이 없으신데 신기하게 유행가 가사는 잊어버리지 않고 부르신다. 특히 현철 노래 '청춘을 돌려 달라'를 자주 부르신다고 한다. 내가 신이라면 유 선생님 사모님께 청춘을 돌려드리고 싶다.


우린 유 선생님 사모님이 복지관에 즐겁게 나들이하시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란다.

기억력이 없어도, 혼자서 나들이를 못하셔도, 전화받는 것도 자꾸 잊어버려 매일매일 가르쳐 드려도 지금처럼 인지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매일매일 기도한다.     


"유 선생님 사모님, 오늘도 복지관 잘 다녀오세요."

유 선생님 사모님은 오늘도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지팡이를 집고 복지관으로 나들이 가신다.

그 옛날 잘 차려입고 봄나들이 가듯이 마음 가득 미소를 띠며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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