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뮤지엄 산 미술관에서
당신은 큰 산이었습니다
우리 앞에 늘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늘도 되어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따뜻한 햇살도 나눠주며
세상 속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긴 세월
우린 당신의 그늘 속에서
근심 걱정 없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은 산이 아니라 허허벌판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늘을 만들어 주지도
바람을 막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당신을 지킬 힘조차 없어
작은 바위에 몸을 숨깁니다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도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지팡이가 너무 약해
보행기에 몸을 의지합니다
그 옛날
아름다웠던 날들을 가끔 이야기합니다
예쁜 처녀로 돌아가
널뛰기하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젊은 날 아버지와 냇가로 소풍 갔던 추억도 생각해냅니다
한라산을 완주하던 건강한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주민번호를 자랑스럽게 외우던 똑똑한 당신은 어디 있나요
서울에도 있는 삼겹살이 맛있다며
바리바리 싸가지고 고속버스로 올라오던 정 많은 당신은 어디 있나요
그런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제 고작 여든여섯
백 살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아무것도 몰라도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어느 날 작별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떠날까 봐 겁이 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어떤 것도 생각이 안 나도 우리 곁을 떠나지만 말아주세요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도록
산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주세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내 나이 이제 예순넷
당신이 지나온 세월을 따라갈까 봐
매일매일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