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애 Jul 09. 2022

달리기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뛴 이야기

  

  남편이랑 사이가 매우 매우 안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 이래서 이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심각하게 힘들었다.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남편이랑 시간을 함께 보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서 함께 있어 봐야 할 것인가.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부부들을 보니까 저녁때 둘이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러나 남편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아니 못 마신다. 그래서 유흥 활동은 땡!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달리기’이다. 남편이 나와 다투고 난 후 밖에 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들어오면 종종 마음이 풀려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나갈 때 따라 나가서 달려 보기로 했다.


  발상은 좋았으나 아차차! 남편이 얼마나 뛰는지를 계산을 못 했던 것이 실수였다. 아이를 낳고 그때까지 제대로 된 운동을 많이 해보지 않았었는데, 그날 남편과 10Km를 뛰었다. 그날 뛰면서 무엇인가 바뀌었냐고? 정확히 뭔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두 가지의 결과가 나타났다. 좋은 소식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남편이 나와 뭔가 함께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함께 뛰자고 한 것을 매우 기뻐했으며 운동을 적극 권장했다. 나쁜 소식은 나는 그날 들어와서 심하게 하혈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극적인 운동량에 몸이 놀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좋은 쪽의 변화를 더 잘 잡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 달래려다가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주중에 혼자서 먼저 4Km, 그다음 날 5Km, 그다음 주에 6Km... 이런 식으로 달리기 량을 조절해가면서 늘여나갔다. 자세가 잘못된 건지 어느 날은 무릎이 아프고 어떤 날은 허리가 아프고 어떤 날은 발목이 아팠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왜 그런 걸까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적극 어필했다. 이렇게 뛰다 보니 주말에 남편을 만나서 10Km를 뛰는 것은 가뿐해졌으며, 우리는 그 거리를 뛰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남편의 직장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남편이 요즘 하는 생각들. 나는 보통 잘 듣고 기억해둔다. 절대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이다. 감정만 공감한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아이 이야기,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다고 했던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러면 남편도 열심히 들으면서 뛴다. 사실 나도 뛰면서 이야기하기보다 앉아서 얘기하고 싶다. 하지만 남편의 특성상, 앉거나 눞거나하는 정적인 동작을 하면 무조건 다른 생각을 하거나 졸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뛰었다. 하루를, 이틀을... 그리고 이제 그 달리기도 4년이 넘어간다.


  이제는 나도 남편만을 위해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나도 달리면서 뉴스를 듣기도 하고, 유튜브를 들으며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심지어 중국어 강의도 뛰면서 한 번 더 듣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도 자전거를 타고 우리의 달리기를 따라온다. 그때에는 아이가 남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뛰는 편이다.


  나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기 위해 뛰기 시작했고 우리는 참으로 건강한 가족이 되었다.     


  

이전 03화 나의 운동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