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04. 월)
*. 벨로라도(Belorado)-아게스(아헤스)(Ages) (28.5km 8시 30분 출발-17시 도착)
< 상세 일정 : 벨로라도(Belorado 0.0km) → 또산또스(Tosantos 5.0km) → 비암비스띠아(Villamvistia 7.0km) →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Espinosa del Camino 8.5km) →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Villafranca Montes de Oca 12.0km) →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 24.5km)-아게스(Ages 28.5km) >
오늘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고 청명합니다. 걸음이 쑥쑥 걸어지고 속도도 저절로 올라갑니다. 기분 좋은 출발입니다. 열 하루째, 34일 일정 중 삼분의 일을 걷게 되는 날입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날짜를 세는 것이 무의미 해졌습니다. 그저 해가 뜨면 일어나 짐을 챙기고 묵묵히 밀밭 길을 걷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순례자의 루틴대로 움직입니다.
일상이 단조로우니 생각도 단순해지고,
생각이 단순해지니 별거 아닌 것에 감동받고 행복해합니다.
프랑스 아주머니 두 분이 먼저 나가고 시크한 아르헨티나 아저씨가 키친에서 오트밀을 끓이며 쿠키를 나누어 줍니다.
아! 어제저녁 빨래를 말리기 위해 세탁실로 갔는데 아르헨티나 아저씨가 자신의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냅니다. 방법을 물으니 스위치를 눌러 주며 자신의 빨래가 덜 말랐는데 같이 돌릴 수 있냐고 합니다. ‘NO’하기에는 야박해 보여 ‘YES’를 했습니다.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속옷, 아르헨티나 아저씨 속옷, 남편 속옷 등등이 섞였습니다. 들고 있는 옷이 등산복인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오우! 이 일을 어찌할까요? 할 수 없이 저도 시크하게 아저씨의 말린 옷을 정리해 놓고 우리 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마지막 커피믹스와 아저씨가 준 쿠키를 먹고 마을 입구 쪽으로 나오니 베드 버그 때문에 고생한 한국인 젊은이와 더그 일행을 만납니다. 이 젊은이는 IT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 휴직을 하고 이 길을 오게 되었다 합니다. 부인과 예쁜 딸 둘이 있는 가장인데, 우리 세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결정에 찬사를 보내며 함께 걷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들끼리 수다의 봇물이 터졌습니다. 세계 경제의 흐름과 한국 기업들의 여러 가지 구체적 상황들, 한국인들의 저력,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 등 끊임없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전몰 용사 기념탑에서는 스페인 내전과 스페인 현대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1936년부터 1939년 스페인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는 공화파와 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을 추모하는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떡갈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숲을 지나 걷다 보니 마치 우리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같은 느낌을 주는 예쁜 목각 인형들이 늘어선 쉼터가 나옵니다. 더그 일행을 그곳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제 내일이면 버스로 빌바오(Bilbao)로 가서 파리를 경유해 시애틀로 간다 합니다. 첫날 만남 이후 간헐적이지만 만남이 이어졌고, 특히 둘째 날 제가 성당 저녁 미사 중 갑자기 복통으로 쓰러질 뻔하여 성당 밖으로 뛰쳐나온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어 부부가 저를 찾아 안부를 물은 것으로 시작된 인연입니다. 진이 다리가 아프다 하여 남편이 무릎보호대를 빌려준 일, 휴대폰 분실 사태를 함께 걱정해 준 일 등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많이 나눈 사이입니다. 알고 보니 더그는 월드비전 센터 산하 신학교에서 일하는 분으로 한국인 목사님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합니다. 명함 카드를 하나 받았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더그 일행과 산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에서 헤어집니다. 이 마을은 12세기에서 17세기에 거쳐 만들어진 오래된 곳이라 하는데 우리는 3.5km를 더 걸어서 아게스(Ages)에 도착합니다. 아게스(Ages)에서 유일하게 연 알베르게 '파구스(Fagus)'에 머물게 되었는데 주인장 아저씨는 뚱하게 생겼지만 생김새와는 달리 엄청 다정합니다. 저녁으로 시킨 ‘메뉴 델 디아’는 우리가 스페인에서 먹어본 음식 중 최애 음식이 될 만큼 훌륭합니다. 전식으로 나온 수프는 콩을 이용한 가정식 수프인데 추위에 지친 몸을 뼛속 깊이 따뜻하게 해 줍니다. 신선하고 육즙이 살아있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요리도 정말 맛이 있습니다. 한국인 청년과 함께 했는데 메뉴에 포함된 하우스 포도주를 병째 주고 또 리필도 해주는 통 큰 알베르게에서 모처럼 풍성한 저녁을 맞습니다.
오늘은 가을날처럼 푸른 하늘과 하얀 새털구름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광경을 보며 기분 좋게 아름다운 벨로라도의 숙소를 떠난다.
감기약을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자서인지 몸이 가볍다. 아직 발바닥이 아프거나 물집이 잡히지도 않고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것도 아침이면 회복이 되는 걸 보니 열흘을 걸으며 몸이 많이 단단해진 모양이다.
출발이 좀 늦어지더라도 아침의 스트레칭과 발마사지는 몸에게 올리는 감사의 의식과 같다. 자연의 일부인 내 몸이 길을 걸으며 자연과 하나 되는 감동을 오롯이 느끼려면 우선 몸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발마사지시에는 꼭 바셀린을 발라 마찰열을 줄이려 했고, 조금 넉넉한 크기의 경등산화는 선택에 신중을 기해 오래 걸어도 변함없이 발이 편할 것으로 준비했다. 양말을 두 겹으로 신거나 발가락 양말을 신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틱은 짐이 좀 되더라도 반드시 가지고 와서 힘들고 지칠 때 네 발로 걷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걸어가야 할 길이 걸은 길보다 워낙 많이 남은 터라 지금까지 얼마나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절반 정도는 지나야 나를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보다 예상외로 잘 걷고 즐기고 있는 아내 순옥이 사랑스럽다.
스페인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언덕 위에 촘촘히 들어선 주택들이 밝고 화사한 색감이어서 왠지 모를 행복감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또 유난히 예술성 있는 그래피티가 많이 보이고 인상적이었는데 까미노 길 내내 그래피티도 많이 보이고 특히 마을마다 벽화들이 있는데 마을 전체 분위기와 조화를 잘 이루는 듯 해 좋다.
마을 입구 쪽에 있는 알베르게의 야외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D일행이 보이는데 그중 한국인 젊은이 J가 있다. 이들과 일행이 되어 길을 가다가 전몰 용사 기념탑에서 멈춘다. 스페인 내전(1936년부터 1939년) 시 이곳에서 파시스트에 저항하다 전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 같았다. 이곳 북부 부르고스 지역은 파시스트들의 본거지였다. 유럽은 물론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화파를 지지하여 의용군으로 참전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가 스페인을 장악하게 되고 이차 세계 대전의 단초가 되기도 한 스페인 내전의 비극에 희생된 영령들을 함께 추모한다.
이 길은 종교적 순례의 길만이 아니라 스페인 현대사의 비극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스페인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내전의 상흔이 남아 지독한 지역 갈등과 대립의 감정이 아직도 심하게 남아 있다. 공화파가 많아 피해가 많았던 카탈루냐 지방에서 자신들의 기를 게양하고 카탈루냐 언어를 고수하는 모습은 그 배경이 있는 것이다.
산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의 우물가에서 열흘을 함께 한 D와 S와 작별 인사를 한다. 산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는 돌로 된 작고 단단한 예배당과 건축물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드디어 아게스(Ages)다. 하루 30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면 기착지에서 따뜻한 샤워 후 포도주 한 잔 마시는 순간의 행복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피로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최종 목적지의 입구에서부터 알베르게의 건물 앞까지 안도감과 성취감에 이어 포도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분되어 다리와 어깨의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다. 따뜻한 렌틸콩 수프와 신선하고 육즙이 살아있는 닭고기에 달지 않고 적당히 탄닌감이 있는 하우스 와인을 리필까지 해 주는 셰프 겸 알베르게 주인장 덕분에 달콤하게 취하여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