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05. 화)
*. 아헤스(Ages)-부르고스(Brugos)(22.5km 8시 30분 출발 – 16시 도착)
< 상세 일정 : 아헤스(Ages 0.0km) → 아따뿌에르까(Atapuerca 2.5km) → 비얄발(Villaval 7.5km) →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Cardenula Riopico 9km) → 오르바네하 리오삐꼬(Orbaneha Riopico 11km) → 가스따냐레스(Castanares 15.5km) → 부르고스(Burgos 22.5km) >
아헤스(Ages)의 알베르게는 요리도 맛있었지만 숙소도 매우 쾌적했습니다. 부부가 새로 집을 고치고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숙소의 난방도 최고였고, 새로 짠 침대에서는 향기로운 편백 나무 냄새가 났고 삐걱거림도 없었습니다. 다만 4인용 침상에 어제 만나 오랜만에 모국어로 긴 이야기를 나눈 한국인 젊은이와 한 방을 쓰게 되어 혹시 코를 골까 신경이 쓰여 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그런데도 아침에 컨디션은 괜찮았고, 조식을 먹고 온 젊은 친구가 당근 케익이 맛있다고 해서 모처럼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합니다. 나바라(Nabara)의 왕이었던 가르시아(Garcia)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아헤스(Ages)는 옹기종기 20여 가구 정도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10여 분 정도 걸으니 조금 큰 아따뿌에르카(Atapuerca)마을이 나오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따뿌에르카 산맥이 나옵니다. 산맥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처럼 뾰족하게 솟은 높은 봉우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동네 뒷산 정도의 구릉인데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고, 자갈길로 울퉁불퉁 거친 산길입니다.
언젠가 봤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란 소년이 잘못 가지고 온 친구의 숙제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거침없이 내달리던 구릉이 연상됩니다. 소년은 힘들이지 않고 힘차게 뛰어갔던 것 같은데 장비를 갖춘 우리는 길을 걸어가는데 힘이 들고, 경사가 심하지 않음에도 어깨의 짐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자갈길에서는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 길에서 만난 젊은이는 발목 부상으로 현지 병원 신세도 지고 일정에도 차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금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 더 늦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순례자’ 책에서 멘토인 패트루스의 지시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맨몸으로 세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세운 십자가인지 매우 큰 십자가가 정상에 우뚝 서 있습니다. 정상이 넓은 평원인데 포근하고 너른 부르고스(Brugos)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오르는 것이 힘든 만큼 내려오는 길은 매우 수월했고, 큰 도시가 보이는 것을 보아 조금만 가면 될 것 같은 만만함이 느껴졌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산길을 내려오자 바로 긴 아스팔트가 이어졌고, 한참을 내려오니 태극기가 중앙에 그려진 낡은 버스가 넓은 초원에 오브제처럼 서 있습니다. 저 버스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부르고스(Brugos)는 오래전 카스티야의 수도였던 만큼 제법 큰 도시입니다. 순례길에서 큰 도시는 평화로운 순례에 많은 시련을 주는 구간입니다.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길 양 옆으로 공장과 창고가 많은 산업단지가 꽤 길게 이어져 있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쭉 주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 아니고, 매연과 소음 그리고 도시의 복잡한 교통 등에 머리가 아프고 멀지 않은 길인데도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작은 마을들에서는 경험과 직관으로 알베르게를 쉽게 찾던 우리에게 큰 도시는 시련입니다.
대성당을 찾아 길을 가고 있는데 우리와 입성이 비슷한 순례자가 보입니다. 어제 만난 남아프리카 할머니입니다. 반가워 뛰어가 ‘올라’하며 아는 체를 하니 저를 끌어안습니다. 혼자 걷는 분이신데 연세가 74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했는데, 평소 함께 여행 다니는 것을 즐겨했으며, 산티아고를 함께 걷자고 약속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 분의 사연을 들으며 우리는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미래를 위해서 한없이 미루고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남편과 함께 걸으려 했던 이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입니다. 19살 손녀가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천상 친근한 할머니 같은 모습이지만, 걸을 때는 누구보다 단호하고 야무집니다. 22일 뒤 산티아고에 우리와 함께 입성할 것을 확신하면서 마음속 멘토 한 분을 추가합니다.
부르고스의 성당은 세비야와 톨레도에 이어 스페인 3대 성당으로 그 규모며 화려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어마어마합니다. 13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긴 세월 지어진 고딕 양식으로 프랑스 루앙이나 안타깝게 타 버린 파리 노트르담이나 사르트르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모습인데, 제단이나 벽의 조감이 아주 섬세한 것이 좀 특별해 보입니다. 이곳 출신인 ‘엘 시드(El Cid)’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장군의 벽화도 인상적입니다. 언젠가 찰튼 헤스톤이 주연한 영화를 본 기억이 있었거든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기행’에서 부르고스 성당은 ‘포탑과 총구멍과 뜨거운 냄비의 흔적이 있는 어두운 군사 요새였다. 바로 여기서 포위군에게 끓는 물과 기름을 쏟아붓곤 했다.’고 했는데 전쟁과 평화의 아이러니에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성당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너무 압도적인 크기의 부르고스 성당은 간절한 기도보다는 위압적인 권력의 상징으로 다가와 오히려 위축감이 느껴집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다 한동안 못 봤던 게리 부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거리에서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좋아라 합니다. 그동안 소식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씨에 써리스가 힘들어 점프를 했었던 모양입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기에 서로 주소를 나눕니다.
호텔 아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8시부터 식사를 시작하고 그 이전에는 음료와 타파스를 먹을 수 있습니다. 메뉴를 미리 주문하고 30분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호텔로 올라와 간단히 씻고 내려가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옆에는 프랑스에서 오신 관광객 부부가 우리에게 계속 관심을 보입니다. 프랑스 분들은 영어를 잘 사용 안 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때문에 그런 거지요. 그래도 나이가 들면 눈인사로 다 통하게 마련입니다. 또 다른 테이블 쪽으로는 현지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분들도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간간이 나누는 눈치입니다. 흰 빵이 부드럽고 쫄깃한 것이 맛있어 가지고 가겠다고 하니 그러라 합니다. 서빙하는 아가씨의 쾌활함과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뜨거운 눈빛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남편이 또 너스레를 떱니다. 현지인 남자들이 여남은 명 앉은자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갑니다. 한국에서 왔고 스페인을 좋아한다며 ‘비브라 에스파냐’를 외칩니다. 반응은 의외로 좋습니다. 등 뒤로 ‘부엔까미노’ 인사를 받으며 퇴장합니다. 이렇게 부르고스의 밤이 깊어 갑니다.
아헤스(Ages)의 파구스(Fagus) 알베르게 주인장과 안주인은 코비드19 감염병 여파로 뜸했던 순례자들의 발길이 다시 잦아질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침대도 편백 나무로 새로 짜고 건물 이곳 저곳 새단장을 했다. 음식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디 이 알베르게가 주인 부부의 바람대로 많은 순례자들로 북적였으면 좋겠다. 방은 4인실이었는데 오랜만에 온기로 훈훈한 방에서 잘 수 있었다. 어제 만난 한국인 청년 J와 동숙했는데 J는 한국을 대표하는 IT전문가로 휴식을 위해 이직을 했다고 한다. 어린 딸이 하나 있는 30대 중반의 가장이다. 그는 아마 이 길을 걸으며 인생의 새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아헤스(Ages)라는 지명의 유래나 어원은 잘 모르겠다. 발음은 ‘아게스’와 ‘아헤스’의 중간쯤인 것 같다. 예쁘고 아담한 성당이 있고 아기자기하게 꽃으로 단장한 하얀 벽의 집들과 탁 트인 풍광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부르고스(Burgos)까지 가는 길 첫 마을은 선사시대 유적과 유허(遺墟)가 잘 보존되어 있는 아따뿌에르까(Atapuerca)다. 바람 부는 광활한 고원과 밀밭이 어우러져 긴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인상적인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과 낮으막한 구릉들이 자주 나오며 해발 고도는 서서히 높아지고 바람의 세기는 더해진다. 발음하기조차 힘들고 그래서 기억도 잘 나지는 않지만 예쁘고 아담한 작은 도시와 마을이 지루한 초원길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달래 준다.
어느덧 내리막길 초입의 언덕에서 부르고스(Burgos)로 보이는 넓은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정상에는 흩어져 있는 돌들을 모아 쌓아 올린 돌무덤 가운데에 큰 십자가를 세워 두었다. 이곳이 순례길임을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 일깨워주는 듯하다.
나는 도시에 살고 도시의 삶에 길들여져 있음에도 도시를 지양한다. 그러나 시골의 정취가 끝도 없이 펼쳐진 순례길을 걷다가 도시를 만나게 되면 왠지 모를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이 아이러니한 마음의 정체는 무얼까? 이 길이 끝나면 시골살이 농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약체 도시인인 나를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로 들여다보게 된다.
부르고스 시내로 진입하는 차도변의 길은 걷기에 지친 몸을 더욱 힘들게 한다. 공장과 창고들이 즐비한 외곽의 진입로는 왜 이리도 긴 것인가? 자동차 소음과 매연과 먼지 등이 섞여 지친 몸과 마음에 피로감이 더한다. 부르고스라는 도시의 환상이 깨지는 듯하다.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였는지 우리 부부는 시장기를 채우는 장소로 그 어느 도시에나 흔한 어떤 햄버거집을 선택한다. 이제 도심에 들어 선 것이다. 여행 중 가끔은 평소에 먹지 않는 도시의 인스턴트 음식을 맛보며 그곳의 음식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교감하는 것도 분위기 전환이 된다. 리스본의 이름난 에그타르트를 그 옆 스타벅스에서 먹은 기억은 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프라하성의 예쁜 골목길을 내려와 전차길이 교차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먹었던 햄버거도 그중 하나이다.
부르고스(Burgos)는 부르고스 주의 주도이다. 인구도 18만 정도로 큰 도시로 작지만 국제공항도 있다. 도시재생과 구겐하임(Guggenheim)으로 잘 알려진 북부 대도시 빌라오(Bilbao)와 산티아고 길에서 가장 까까운 도시이다. 내일이면 D부부와 S가 빌바오에서 파리를 거쳐 시애틀로 돌아간다. 먼 여정이다. 가는 날이 내일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신학대학원의 부총장인 그가 떠나기 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전과는 달리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무신론자인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걷기로 한 동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내 아내의 간절함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고 다소 수동적 자세로 길을 시작했다. 그러나 걸어 보니 생각이 단순해지고 사유의 끈을 길게 가져갈 수 있어 좋았으며 무엇보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더 생긴 것이 기대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이 길 끝에서 나는 마음의 부자가 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듬거리는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리고 자기 가족 이야기와 신학대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사목들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시간을 내서 성경을 차분히 읽어보라며 긴 이야기를 끝냈다.
부르고스(Burgos)는 1035년부터 1560년까지 카스티야 왕국의 머리(Cabeza de Castilla)라고 불리었던 도시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군사정부의 임시 수도였다. 엘 시드(El CID, 본명은 Rodrigo Díaz de Vivar)의 탄생지로 유명하고 부르고스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Burgos)은 요새였다. 성당에 총알과 포탑이라니? 무어인(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부르고스 지역을 방어하려는 기독교인들의 요새가 성당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슬람 회당이나 불교 사찰이 요새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다. 수많은 전쟁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수없는 죽음을 가져온 것이 역사의 증언이니 부르고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스페인 3대 성당이며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산타마리아 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Burgos)은 외관은 물론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예술 그 자체이다. 마침 오후의 햇살이 강렬한 터라 오롯이 이 아름다운 고딕 성당 내부가 빛으로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는 길에 남아공에서 오신 74세의 멋쟁이 ‘누님’을 만났다. 남편과 함께 오기로 했던 길을 이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온 것이다. 그녀의 고고한 자태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그림자가 있는 듯했다. 그녀는 늘 그 그림자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
걷기 힘든 돌길이 많다. 작별 인사를 단단히 해 두었던 D 일행을 다시 만났다. 한편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어색해진 상황인데 추운 그늘에서 만나 다시 작별하기까지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이어진다. ‘미안(Sorry)’이라는 말처럼 ‘안녕(Good-Bye)’이라는 말도 하기 힘든 말이다. 내가 강제로 여자분들을 떼어 내고 그들의 무사귀환을 빌어주었다. 나중에 이메일 하자 하고 헤어진다.
추위에 덜덜 떨며 다시 호텔로 향한다. 그런데 거리에서 G와 T부부를 만났다. 또다시 ‘여자들의’ 재회가 이어지고... 역시 나중에 이메일 하자며 헤어진다.
부르고스도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 날씨가 춥다. 핑계 김에 오늘은 호텔에서 따뜻한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