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김치찌개 신기루 & 푸른 하늘(13일 차)

(2022. 4.06. 수)

by 옥이와 일이

*. 부르고스(Brugos)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llos del Camino)

(20.6Km 9시 출발-15시 도착)

<상세 일정 : 부르고스(Burgos 0.0km) →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Villalbilla de Burgos 8.0km) → 따르다호스(Tardajos 11.5km) →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Rabe de las Calzadas 13.5km)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llos del Camino 21.5km) >


< by 개미(옥이) >

< 부르고스 대학교 >

부르고스(Brugos)에서 출발하는 길은 부르고스 대성당을 왼쪽으로 두고 이어진 길을 따라 걷게 됩니다. 성당 옆 품위 있고 고풍스러운 아바 부르고스(Abba Burgos) 호텔을 지나서 곧 산 마르틴(San Martin) 아치를 통과합니다. 공원을 지나고 부르고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오니 도심에 비해 소박한 마을이 나오고, 곧이어 부르고스 대학 건물이 보입니다. 규모가 엄청 크고 건물들도 돌로 만들어져 역사가 깊은 대학인 줄 알았으나, 왕의 병원 분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1994년에대학으로 재설립하여 현재 1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큰 대학으로 성장하였고, 한국인 등 외국인 학생들이 교환 학생으로 와서 공부도 한다고 합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기는 학생들과 이른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 카페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 등 젊음의 활기가 오래된 건물과 어울려 그 분위기를 더합니다. 덕분에 발걸음도 젊어진 듯 힘차게 내딛습니다.


공원으로 진입하여 조금 걸으니 밀밭 오솔길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김치찌개 냄새가 솔솔 납니다. 거의 십여분 가까이 이 냄새는 계속되는데요... 집 떠난 지 20여 일이 지나니 후각에 이상이 생겼나 봅니다. 이곳 사람들이 어디 먼 곳에서 캠핑을 하며 풍기는 냄새였겠지요. 혹시 한국 까미노 고수들이 저 밀밭 어디쯤에서 한국 음식을 끓이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듭니다. 위장이 요동치고, 옆에서 걷던 남편은 한 술 더 떠 김치찌개인데 멸치 육수에 된장이 살짝 들어간 냄새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한 사람만 냄새를 맡으면 해프닝이라고 해버릴 텐데, 거의 10여분 걸어갈 동안 그 냄새가 지속된 것입니다. 위장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인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민가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까미노 길 순례 중 환각이 작동된 것 같습니다.

도저히 참다못해 가지고 간 간식으로 아침 식사를 풀밭 위에서 합니다. 차려진 음식은 보잘것없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모네의 풀밭 위의 식사처럼 느껴집니다. 마침 아게스에서 함께 묵었던 한국인 젊은이가 지나가다 발길을 멈추고 같이 식사를 합니다. 부르고스의 중국인 마트에서 신라면 3개를 확보했고, 최고의 관심사는 주방을 개방하는 알베르게를 찾아 매운 신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여파로 주방을 개방하지 않고 전자레인지만 사용하도록 하는 알베르게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IT 전문가의 소박한 꿈에 우리도 슬쩍 편승하며 함께 길을 갑니다.


까미노 순례길에서는 어떤 장식이나 치장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자연 앞에서 소박하게 느끼며

즐기고 그것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느새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Villalbilla de Burgos) 마을을 지나고 따르다호스(Tariajos)에 도착할 때쯤 발에서 신호가 옵니다. 11.5km를 걸은 발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무조건 수용해야 합니다. 따르다호스(Tariajos)에 진입하니 작은 마을이 나오고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 그를 보면서 서로 떠드는 할아버지들이 지친 우리에게 이곳에서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한국의 시골 마을도 그렇지만 순례길 중간에 만나는 시골 마을에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습니다. 2년 전 코로나가 극심했을 때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도 많은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빈집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를 반기는 저분들은 그런 아픔을 모두 이겨내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정감이 갑니다.

카페에 들어가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야채 수프를 서비스로 내옵니다. 마치 우리네 시골 할머니가 끓이신 된장찌개 같은 토속적인 음식이 맛도 있었지만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귀히 대접하는 그 마음에 더욱 감동을 받습니다.


<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마을의 벽화 >

2Km 정도를 걷고 만난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Rabe de las Calzadas) 마을은 벽화마을입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의 담장과 집 담벼락에 성경 말씀과 성화, '산티아고'가 양 떼를 몰고 가다 쉬는 그림 등이 곳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한 순례자 부부가 보이고 동행자로 아인슈타인,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이들의 시선은 모두 별이 쏟아지는 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져 하늘 금이 초록 밀밭 저 끝 지점에 닿아 있습니다. 하얗게 그려지는 비행운이 마치 어릴 적 밤하늘 유성을 연상시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고 너른 초록의 평원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겨버려 힘든 줄 모르고 하염없이 걷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llos del Camino) 알베르게에서 꿈에도 그리던 신라면을 맛보게 됩니다. 속이 확 풀리고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라면을 제공한 한국 젊은이와 지금부터 레온까지 2주 정도는 이 맛을 기억하며 무사히 까미노 순례길을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당이 있는 알베르게입니다. 오랜만에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정원에 앉아 햇빛 멍 때리기를 합니다. 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는 늦게 져서 저녁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라면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저녁을 먹는데 멕시코 치와와 아저씨, 프랑스 리옹과 르퓌 아주머니, 부르고스에서 오늘 새로 시작한 캐나다 아주머니 그리고 한국 젊은이와 우리 부부가 인사를 나누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치와와란 도시 이름 때문에 강아지 이야기도 하고 북한에서 왔냐는 농담에 분단 히스토리도 나눕니다. 문학 이야기도 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왜 영어 공부를 안 하는가? 멕시코 스페인어는 지역마다 억양이나 악센트가 달라 잘 못알아듣는다는 이야기, 캐나다 퀘벡의 불어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알아듣기 어렵게 변했다는 둥... 이렇게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서로 할 수 있다니, 이 또한 까미노 13일의 기적입니다, 오늘 프랑스 아주머니들 나이가 70에 가깝다는 사실이 또 긍정적인 자극제가 됩니다. 사실 이렇게 알베르게의 저녁 식사에서 한 시간 반 가량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입니다.


무엇이든 시간은 관계 또한 자연스레 성숙시킨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저녁 아홉 시가 가까워 오지만 아직도 밖은 훤합니다. 그렇게 맑던 하늘 서편으로 구름이 몰려 있습니다. 이제 폭풍은 지나갔고 낮에는 점차 열기가 더해질 듯한데 가벼운 소나기 정도는 얼마든지 견디렵니다. 이제 글쓰기를 마치고 잠을 자러 가려는데 알베르게 할아버지의 어린 손주들과 그의 부모가 글을 쓰고 있는 꼬레안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싶었지만 이들이 한국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에 가슴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밤입니다.




< by 베짱이(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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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호텔 잠을 자고 부르고스(Brugos)를 출발한다. 부르고스는 중세 도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면서도 현대식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잘 구획된 도시이다. 나는 어제저녁 강변의 산책길과 공원이 강 양안으로 쭉 이어진 멋진 거리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과 눈인사하며 걸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이 생경한 도시는 이미 나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어제의 기억이 벌써 아련한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가 버렸고 이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를 빠져나오며 슈퍼에서 종이팩에 든 1유로짜리 포도주를 사 보았다. 추운 날씨에 양치기들이 몸을 덥히기 위해 먹었을법한 싸구려 포도주를 맛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예쁜 골목과 외곽의 작고 아담한 마을을 벗어나며 만난 큰 건물은 부르고스 대학의 건물이다. 이 학교는 왕의 병원(Hospital del Rey)의 분점 형식으로 세워졌다가 이후 바야돌리드( Valladolid) 주에 설립된 바야돌리드 대학교(Universidad de Valladolid)에 속해 있었는데, 1994년 부르고스주의 공립대학교로 재설립되었다. 학생이 1만명이 넘는 종합대학교아며 한국인 유학생과 교환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대학 구내로 들어가 보니 교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보이고 수업이 있는 학생들인지 바삐 걸음을 옮기는 학생들도 보이고 아침 식사를 하는지 야외 카페에 모여 식사를 하며 담소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여행지의 대학교는 지친 여행객들이 젊은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인증 도장도 하나 받는다. 남아공 누님이 구내 에배당으로 들어 가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시내 외곽으로 나오니 공원이 나온다. 스페인 도시의 외곽에는 늘 큰 공원이 있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공원을 지나며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는 분명 김치찌개를 끓이는 냄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아내도 같은 느낌이다. 심신이 허약해지면 환영이나 환청이 들린다는데 이 또한 환각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하며 십여 분 이상을 이 냄새의 환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Das Parfum)>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코도 아닌 평범한 나와 아내의 코에서 계속 감각되는 이 냄새의 정체를 다양한 상상을 거치고 냄새가 사라진 후에도 알 수가 없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냄새에서 벗어난 후 만난 한국인 젊은이 J는 그 냄새를 맡지 못했다는 것이다. 냄새로 무언가에 홀렸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는데... 이 기억은 이 길 내내 아니 그 이후에도 우리에게 미스테리로 남을 사건임에 틀림없다.

J와는 어제 모국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IT업계에서 보는 세계 경제의 전망과 한국의 미래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젊은이의 최대 관심사는 주방을 개방하는 알베르게를 찾는 것이다. 레온에서부터 가지고 온 라면 세 개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세계정세에 대한 정보보다는 우선 당면한 '특식 요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이 길 위를 걸으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걷고 먹고 쉬고 마시고 먹는 일이 우선이다. 잘 걷기 위해 필요 이상의 짐도 잡념도 복잡한 정보나 지식도 다 내려놓는 것이 현명함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찾고 있는데 먼저 간 J가 어느 건물의 주방으로 난 작은 창을 열고 부른다. 이곳이 주방을 개방한 곳이라며 지금 라면을 먹으려고 물을 올려놓았다 한다. 우리는 좌고우면 않고 이곳을 오늘의 숙소로 확정한다. 라면 냄새가 건물 곳곳에 퍼지고 오전의 김치찌개 신기루가 오후의 현실로 이어지는 듯한 환상 속에서 J가 끓여준 라면을 국물까지 싹 비운다.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된 라면 냄새로 김치찌개의 환상을 말끔히 지운다. 씻고 나서 나른해진 몸을 위해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손님들이 늘었다.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프랑스 추리소설을 읽고 계신 프랑스 누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아내는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해 널어놓았다. 익숙한 옷조각들이 햇살을 받으며 긴 빨랫줄에 걸려 있다.


해가 기울어져 저녁노을이 질 때쯤 헤밍웨이처럼 흰 수염이 멋지고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한 멕시코 치와와 출신의 형님과 캐나다 퀘벡 출신의 한 살 어린 누이와 먼저 온 우리 일행들을 위해 준비해 주신 만찬을 함께 한다. 셰프는 키가 크고 콧수염이 멋진 주인장과 그의 인상 좋은 아내다. 주 메뉴인 빠에야(paella)와 포도주를 마시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멕시코를 '메히코'라고 ‘히’를 강하게 발음하는 형님에게 헤밍웨이 닮았다는 말에 좌중이 공감하며 그 흰 수염이 치와와 강아지를 연상케 한다는 농담에 한바탕 웃는다. 바로 이어지는 우리 부부에게 북한에서 왔냐는 자주 듣는 농담 때문에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자 아내가 핀잔을 주고 J도 너무 딱딱한 주제라고 제동을 건다. 다시 가벼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 공부를 잘 안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한다는 프랑스 누님들 이야기에 이어 ‘메히코’는 지역이 넓어 지역마다 억양이 다르며 스페인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멕시코 형님 말씀이 이어지고, 캐나다 퀘벡의 동생은 퀘벡 불어는 프랑스 현지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서로 가까워지고 친해진 느낌으로 저녁 자리를 파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만 주어지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서로 언어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실한 마음과 간절함만 있으면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인 눈빛과 표정 그리고 몸동작이 있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현관문을 열고 내다본 하늘에는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을이 곱던 하늘이었는데... 내일 길이 조금 걱정이다.


유쾌한 저녁 이후 아내의 글쓰기 시간이다. 충전기가 고장 나 반드시 전선 코드가 있어야 해서 응접실에서 오늘의 기억을 함께 살려 가며 아내가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주인장의 손주들이 우리를 보겠다며 늦은 시각인데 들이닥친 것이다. 주인장이 양해를 구하기에 우리는 오히려 반갑고 대환영이라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귀엽고 맑은 눈빛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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