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 목)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los del Camino)-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21Km 8시 출발- 14시 도착)
< 상세 일정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llos del Camino 0.0km) → 아르요 산 볼(Arroyo Sal Bol 6.0km) →온따나스(Hontanas 11.0km) →성 안똔 아치 (Arco de San Anton 16.5km)→ 카스트로헤리스 (Castrojeriz 21km) >
6시 40분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와 뜰에 내려서니 별이 쏟아집니다. 마치 어제 벽화에서 본 콤포스텔라의 전조를 보는 듯합니다. 저녁해가 길고 아침 해가 늦게 뜨는 현상은 우리 한국과 위도가 다른 데서 오는 현상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모처럼 별자리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벽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기온도 3도로 오늘은 낮에 좀 더울 것 같습니다. 아침을 예약 안 했는데 식탁에 차려진 아침상을 보니 시장기가 동하여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동안은 아침에 출발부터 하고 두어 시간 가다가 간식을 하고 그다음 마을의 카페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하곤 했습니다.
산볼(San Bol)이란 작은 마을까지 5.8km, 그다음 마을 온타나스(Hontanas)까지 5km를 가야 하는데 문을 나서면서부터 갑자기 바람이 불어옵니다. 마을을 벗어나니 지금까지 봐왔던 끝도 없는 너른 평원이 사막처럼 펼쳐집니다. 새벽에는 바람이 잠잠했는데, 바람막이가 없는 푸른 고원에 북동풍으로 바뀐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다행히 기온은 내려가지 않아 그나마 추위는 덜한데 사정없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걸음을 뒤로 처지게 합니다. 어제는 걷는 방향으로 남풍이 불어 서쪽 방향으로 걷는 우리에게 햇빛도 뒤에서 비쳐주고 바람도 밀 듯이 불어 주어 수월하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완전히 반대로 불어 앞으로 전진하기에도 몹시 힘이 듭니다. 광활한 대자연의 푸르름과 맑게 갠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에도 버거울 만큼 바람과의 싸움이 시작된 까미노 순례길입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삶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갑자기 남편이 실직을 했습니다. 하루는 네 살 된 큰 딸은 걸리고, 두 살 된 작은 딸은 업고 시내버스에 올라탄 적이 있는데, 운전기사가 곱지 않은 시선과 퉁명스러운 말투로 애 둘이면 한 사람 요금을 더 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위축되었던 기가 한 풀 더 꺾이며 얼마나 설어웠던 지, 아픈 추억입니다. 갑자기 넓은 평야의 까미노 길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그때 생각이 데자뷔 되며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도하며 걷습니다. 이럴 땐 가끔은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뒤로 걸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하늘을 보니 흐렸던 구름이 바람에 살짝 물러가는 듯하고 대신 해가 반짝 떠오릅니다. 이 초록 구릉을 다 올라서면 저 햇살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희망을 가지며 거센 바람을 가르며 발걸음을 빨리해봅니다. 그러나 구릉을 올라서니 또 다른 구릉이 나오고 바람은 잦아들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10여 Km 바람을 거슬러 사투를 벌이며 걸음을 옮기니 그 너른 평야에 알베르게와 카페를 함께 겸하고 있는 외딴집이 보입니다. 얼른 그곳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차를 마시는데 주인아저씨가 한 마디 합니다. “까미노들은 이 바람의 평원에서 앞만 보고 가려고 하지 옆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집처럼 이 아늑한 곳을 보지 않는다”라고요.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익숙한 재즈 음악이 들립니다. 쳇 베이커의 ‘퍼니 밸런타인’ 그리고 토니 베넷의 ‘솔 앤 보디’를 뒤로하고 아쉽지만 다시 길을 나섭니다.
바람은 여전합니다. 풍차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요. 초록의 고원은 구릉으로 이어지며 한없이 계속되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바람이 잦아듭니다. 때마침 불어오던 바람이 따뜻한 햇살을 몰고 옵니다. 바람은 불지만 햇빛에 몸도 녹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여유를 가져 봅니다. 경작지에 심어진 밀과 콩은 바람에 단련되어 더욱 단단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삶도 그럴 것입니다.
내리막길의 끝에 그림 같은 마을이 들어서 있습니다. 온타나스(Hontanas)라는 마을로 까미노 계획을 짤 때는 어제 일정에서 여기까지 왔어야 했는데, 계획대로 않기를 잘했습니다.
구불구불 완만하게 돌아가는 시골 오솔길은 걷기에 참 편안합니다. 다 허물어진 커다란 성의 건물이 보입니다. 산 안톤(Arco de San Anton) 마을로 허물어진 건물은 중세 시대에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피부병을 치료했던 수도원으로 순례자들에게 안식처도 제공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운영된다던 알베르게도 문을 닫아 썰렁합니다. 프랑스 아주머니 두 분은 이곳에서 묵는다고 했는데 살짝 걱정이 되나, 다음 마을인 카스트로 해리스(Castrojeriz) 가 저 멀리 보입니다. 물론 코앞에 보여도 한참을 가야 닿는 거리이지요.
포장도로 옆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습니다. 앞서가던 영국 부부가 멈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자리를 뜹니다. 갑자기 우리 부부에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부르고스 지역 신문사(DIARIO DE BURGOS)에서 까미노 취재 중이라 합니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급 관심을 보이며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할 수 없이 한국의 까미노 홍보대사 역할을 합니다.
산 위에 우뚝 솟은 허물어진 성이 보이고 그 아래 예쁜 마을이 보입니다. 까미노 순례길은 성당으로 이어져 있고, 성당은 굳게 문이 닫혀 있습니다. 성당 옆 카페에 들어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고 오래된 냄새가 납니다. 약간 걱정이 되었으나 먹물 파에야를 주문했는데 기막히게 맛이 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과 수다도 떨어 가며 잠시 쉼을 갖고 오늘 머물 알베르게를 찾아 마을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워낙 한국 사람이 많이 왔던지 알베르게 젊은 관리인이 한국말로 인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모처럼 일찍 도착하여 빨래를 하여 정원에 널어놓고 마을 구경을 나갑니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마을은 들어설 때 우뚝 솟은 산이 보이고 그 위에 폐허가 된 성이 보입니다. 마을 뒤편 구릉에 있어 올라가 봅니다. 전형적인 화강암 지형으로 흙 색깔이 흰색이고, 지금은 인적이 없으나 사람이 살았을 법한 동굴 집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좁은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갑니다. 성은 허물어져 탑 주변 형태가 조금 남아 있으나 그 위용으로 보아 규모가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성은 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마을은 물론 사방의 광활한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무어인과 원주민들과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 합니다. 눈을 감으니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평원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느덧 조용한 마을에 어둠이 내립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아침에 잠을 깨니 호흡기에 남아 있는 와인 기운과 함께 어제저녁의 유쾌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뜰 창을 여니 하늘에서 기적처럼 별이 쏟아진다. 어제는 춥고 바람은 불었지만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까미노 길 내내 이렇게 아름다운 새벽하늘은 처음이다. 어제 마을을 들어서며 보았던 벽화의 전조가 잠깐 재현되며 20일쯤 뒤에 별이 빛나는 산티아고 광장의 환희를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 섞인 감상에 젖는다.
차비를 하고 문을 나선다. J가 물병을 두고 간 모양이다. 물병을 배낭에 챙겨 넣고 현관문을 여니 바람이 구름을 몰고 세차게 불어온다. 이른 아침의 환상은 엄혹한 메세타의 현실 앞에서 참혹하게 무너져버린다. 한 치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이곳의 날씨 또한 그렇다.
아로요 산 볼(Arroyo Sal Bol)이라는 마을의 카페에서 바람을 피한다. 따뜻한 수프로 요기를 하고 방문객들이 남긴 메모지가 벽면에 가득한 이곳에서 카페 콘레체 한 잔 하고 다시 일어선다.
어제의 길보다는 좀 더 거친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광활하고 거친 평야지대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해발 평균 600~800 정도의 고원 지역을 메세타(Meseta)라 한다. 메세타 지역은 바람이 매우 세차고 기온차도 심해서 아침과 저녁에는 춥고 낮에는 덥다. 정면에서 불어 치는 강한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문득 겨울밤 별빛에 의지해 밤길을 걸었을 순례자들이 떠오르며 마음을 단도리한다. 아득한 길 끈의 지평선을 오르고 내리며 걷고 또 걸어도 바람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표현이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적절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리 힘이 드는데 아내는 얼마나 힘이 들까? 우리가 함께 살아온 35년의 세월 동안 세찬 바람이 불어닥쳐 둘의 관계가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교육 현장의 부조리와 교육과 사회의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긴 세월을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해 온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다. 신혼초 장모 생신에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던 적도 있었고, 경찰서에 연행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도 많았고, 연수와 회의 등으로 며칠씩 집을 비운 적도 부지기수였다. 결혼 직후 직장에서 쫓겨난 사위에게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은 장인과 장모에게 진 신세는 또 어떤가? 이제 막 신혼으로 안으로는 살림살이와 경제적 기반도 마련해야 했고, 밖으로는 철벽 같은 제도와 관습의 벽에 맞서 몸을 부딪혔던 그 시절에 아내와 갈등도 많았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세월 앞에 좀 더 의연하게 아내와 가족들 앞에 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 년 가까운 세월의 해직과 복직 후에도 하던 일을 계속했으니, 그 시절 아내는 무척 외롭고 힘들었으리라. 물론 나도 그랬다.
바람이 구름을 빠르게 몰고 다니더니 가끔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기온은 조금씩 오르고 바람에도 더운 기운이 섞여 들어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 나지막한 평원의 구릉지를 넘을 때마다 언젠가는 쉴 곳을 만나리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걷는다. 길의 오른편에 멀리 카페가 하나 보인다. 너무 멀리 있어 지친 순례자들은 그냥 무심히 지나쳐간다. 하지만 우리는 쉬어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바람을 가르며 언덕 위 카페를 향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혹시라도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쳇 베이커의 흐느끼는 듯한 노래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바람을 견디어야 하는 것이 어디 우리뿐이랴. 이 거친 땅에 심어진 밀들과 유채들은 이 건조하고 세찬 바람에 단련되어 더 특별한 결실을 맺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부부가 견디어 온 35년의 시간 속에서 관계가 더 단단해졌듯이...
약간의 내리막길 끝에서 예쁜 온타나스(Hontanas) 마을이 나타난다. 바람은 좀 더 부드러워지고 길은 걷기 편해진다. 조그만 더 기운을 내 걷자. 혼자 걷기 힘들 때는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산 안톤(Arco de San Anton) 마을 입구 수도원은 ‘성 안톤의 불’이라 불리는 질병을 치료한 곳이었다. 이 질병은 귀리 등의 곡식에 기생하는 맥각균(麥角菌)에 오염되는 ‘맥각 중독증(麥角中毒증症)’이라는 질병으로 손 발 등이 뜨거워지고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인데 이 수도원에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어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이 순례자가 되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다. ‘성 안톤’도 이 병에 걸렸다 나았고 이후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시의 건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세 개의 아치와 무너진 건물만 을씨년스럽게 남아있다. 이곳에서 프랑스 누님들이 묵는다고 했는데, 문을 연 알베르게가 없다. 이 분들은 프랑스 가이드북을 토대로 일찍 출발하고 일찍 도착해서 오후의 시간을 즐기는데, 오늘은 낭패를 볼 것 같아 자못 걱정이 된다. 그나마 다음 마을인 카스트로 헤리스(Castrojeriz)가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다.
분지에 자리 잡은 카스트로헤리스의 빨간 지붕들이 멀리 보이는 언덕을 내려서니 차도가 나오고 그 옆길을 걷다가 젊은 영국인 부부와 인사를 나눈다. ‘부엔 까미노’ 이들과 헤어져 걷는데 멀리 앞에서 이 부부들이 멈춰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다가가 보니 부르고스 지역의 모 신문사였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영국 부부를 보내고는 우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년 이상 코비드 19 팬데믹으로 뜸했던 이 길에 아시아 그것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은퇴 부부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기사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젊은 기자는 우리가 걷는 동기를 묻고 한국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표를 많이 끊었는지 등을 묻는다. 영국인들보다 우리에게 관심을 더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제 바람은 잦아들고 날씨가 더워 땀이 날 지경이다. 산 정상에 허물어진 성채가 있고 그 아래로 아까 멀리서 보았던 그 마을이 이제 코 앞에 있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다. 산 정상에 폐허가 된 성채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몽생미셸(Mont-Saint-Michel)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 앞으로 아담한 성당이 전경(前景)이 되어 그림처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에 메뉴 사진이 크게 걸려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먹물 빠에야도 있어 들어가니 나이 든 주인장이 맛있게 요리를 해 주신다.
우리가 오늘 머물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알베르게 관리인이 한국말로 인사를 해 놀랐다. 스페인 중북부 고원의 어느 작고 한적한 마을에서 현지인이 한국어를 한다니..?
모처럼 마을의 산책길을 따라 성당도 지나고 마을을 휘돌아 난 길을 올라 성채에 오른다. 화강암 지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고 성채는 이 마을을 지키는 요새였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마을과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혜의 요새였던 것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벌어졌을 중세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장면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음 짓는다.
숙소는 아래층으로 통하는 개방된 계단 위의 다락방 형태로 우리 둘만의 독립된 공간이고 창밖의 풍경도 좋다. 오늘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메세타의 긴 시간도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 순례자들의 저녁 회합을 준비했다는데 우리는 알베르게 자판기에 있는 삼양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한 상태여서 빠지기로 한다. 내일 프로미스타(Fromista)라는 지명이 매혹적인 곳까지 가는 메세타 길은 또 바람이 얼마나 불 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침낭에 든다. 오늘을 잘 이겨낸 나와 내 아내가 내일도 잘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