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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Oct 26. 2022

36화 34년과 34일의 끝(34일 차)

(2022.4.27. 수)

  *. 오 아메날(O Amenal)-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17.0Km 8시 30분 출발- 12시 00분 도착)            

 < 상세 일정 : 오 아메날(O Amenal 0.0km) → 산 빠이오(San Paio 4.5km) → 라바꼬야(Lavacolla 6.5km) → 빌라마이오르(Vilamaior7.5km) → 산 마르꼬스(San Marcos 11.5km) → 몬떼 도 고소(Monte do Gozo 12km) → 산 라사로(San Lazaro 14.5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estela 17km)>


by 개미(옥이)


 전날 마신 리오하 와인 때문인지,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라 그런지 잠을 설쳤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무릎 보호대를 하고 바셀린을 정성껏 바르며 발 마사지를 해 줍니다.

< 하늘로 쭉 뻗은 유칼립투스 >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두려운 설렘과 기대감을 다시 장착하고 길을 나섭니다. 안개가 마을의 지붕을 감싸고, 햇살이 부드럽게 비추는 오 아메날(O Amenal)의 도로를 건너 숲으로 연결되는 길은 유칼립투스 군락입니다. 이곳 숲의 특징은 키 큰 나무들이 많고, 습기로 이끼가 끼어 원시림 같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새들의 합창은 계속되고, 까미노 순례자들의 흥분된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거진 숲 사이를 걷는 길은 포근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쭉 이어집니다.


늘 그렇듯 도시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섭니다. 이제 긴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입니다. 멀리 대성당의 종탑과 첨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34일을 걸으며 이미 수많은 상상을 해왔기 때문에 이 현실 앞에서 감각이 무뎌지고 오히려 무심해집니다. 이제 한 시간만 걸어가면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감흥을 깨지 않기 위해 점심도 굶으며 대성당을 향해 길을 재촉합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역시 고풍스러운 도시입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산티아고(성 야고보)가 순교하여 유해의 행방이 묘연하던 중, 별빛이 나타나 숲 속의 동굴로 이끌어 가보니 가리비로 쌓인 성 야고보의 시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곳을 ‘별의 들판’이란 뜻으로 콤포스텔라(Campus Stellae)라고 했다 합니다.

< 순례길 페트루스 이브와 함께 >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비가 또 부슬부슬 내립니다. 한식당에서 모처럼 저녁을 먹을 것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광장에 이르기 전, 성당 순례를 마치고 온 순례자들이 카페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생장에서부터 함께 한 렌초와 레베카가 뛰어와 축하해 줍니다.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길 멘토 페트루스, 이브도 만났습니다. 역시 길 위의 감동은 사람들입니다.


좁은 골목 아치를 지나니 성당 광장에 기쁨에 들뜬 사람들의 환호성이 가득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곳으로 이끌었는지는 모르나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평생 꿈꿔온 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해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더 늦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길을 나서기 위한 마음의 결심도 쉽지 않았습니다. 티켓을 사고 일정을 조정하면서도 두려웠습니다.

파리로 들어와 생장으로 이동하고 첫날 피레네를 넘을 때 여기까지 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요.

표지석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너무 까마득해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활한 메세타에서 걷기도 했고, 거세게 쏟아지던 비바람에도 맞서야 했고, 끝도 없는 길에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 속에서도 걸었습니다. 오직 " 하루도 쉬지 않고, 두 발로 끝까지 가겠다"라고 한 길과의 약속만 떠올리며 걸어왔습니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도착 >

노란 민들레 꽃이 홀씨가 되어 날아가고, 메말랐던 나무에 초록 잎이 무성해져 그늘을 만들어 주고, 보기 싫던 남편의 수염이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광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한 대성당의 외관에 압도됩니다. 성당의 종소리와 백파이프 소리가 들리고, 6일간의 일정을 끝낸 학생들이 무리 별로 들어올 때마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의 환호 소리가 대성당 광장에 울려 퍼집니다.

< 성당내부의 중앙제단과 향로 >

성당의 내부로 들어갑니다.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중앙제단에 야고보가 지팡이를 들고 앉아 있고, 다시 그 위에 5층 탑처럼 생긴 거대한 판을 천사들이 손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 별 두 개가 성당 천장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 앞쪽에 커다란 향로가 매달려 있습니다. 엄숙과 경건함이 우러러 나올 수밖에요. 아픈 동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인생이라는 커다란 액자 속의 '34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작은 액자를 나가려 합니다.

그 길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요? ‘순례자’의 코엘료처럼 나의 검을 찾았을까요?

오늘도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온 76살 된 할아버지는 건강의 비결을 물으니 걷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라 합니다. 캐나다 온타리온에서 온 70대 부부는 세 번이나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일상에서 벗어나 자꾸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하네요. 나이는 삶의 열정과 패기를 구분하는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 삶이 이어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이 길을 걸으며 칠십 나이의 젊은이들, 남아공의 다리아, 프랑스 언니들, 영국 형제들을 만나 나이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갖게 됩니다.


34년간의 직장 생활은 굴레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회적 혜택을 받기도 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자유이기도 하지만 한편 공허하기도 하겠지요. 그동안 이름 옆에 따라붙었던 많은 수식어들이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살아왔음에 아쉬움과 후회가 들기도 했답니다. 이 길을 걸으며 모든 것을 벗어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유인으로서의 나,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알게 되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가 꿈속의 보물을 찾아간 곳에서 보물이 있는 곳은 자기가 꿈을 꾸었던 바로 그곳임을 알게 되었듯이 나의 검도 내 속에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재발견하는 과정으로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이는 삶의 부활이요,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알을 깨고 다른 세상으로 나오려는 어린 새처럼, 폐허가 된 농장을 보며 스칼렛 오하라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라고 하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했듯이 나의 은퇴 이후의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려 합니다.

오늘 밤은 먹구름이 걷히고 대성당 위로 별이 쏟아지는 꿈을 꾸렵니다.   




  by 베짱이(일이)


오 아메날(O Amenal)의 아침을 묘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시작한다. 살포시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퍼진다.  짙은 초록의 대지와 키 큰 유칼립투스가 군락을 이룬 숲길을 걷는다. 마침내 34일의 끝이라는 사실에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긴 이야기책에 푹 빠져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드는 공허함 같은 것이다. 순례길을 끝내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이후 계획한 포르투갈-스페인 남부 여행은 액자 밖을 완전히 나오기 전 완충의 시간으로 기획을 해 본 것이다. 은퇴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34일의 지난 여정을 추억하며 또 다른 여행길을 나서는 것이다. 

오늘 마지막 날의 여정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시간의 교차로이다. 

산티아고 길의 마지막 여정이어서인지 길동무들이 들뜨고 흥분된 표정과 몸짓으로 경쾌하게 걷는다. 대자연과 사람들의 작은 하모니가 큰 줄기를 이루어 산티아고 광장에 울려 퍼질 대합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순간순간 나를 잊고 조화 속에 작은 화음을 내는 악기처럼 전체 속에 부분이 되는 감동이 전달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조화가 우리 모두를 구원하고 살릴 수 있다는 섭리를 깨닫는다. 인류 앞에 놓인 위기를 간과하고 생명의 길고 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찰나를 사는 세태를 돌아본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틀 안에 자유가 결박되고 평화는 매장되어 간다. 서서히 꺼져가는 대지와 뭇 생명들의 몸부림을 외면하고, 닿지도 않을 우주의 어둠 속을 헤매기만 하는 인류를, 신이 있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시장기도 잊은 채 망연히 걷고 또 걸었다. 한 발 한 발 오체투지 하듯 정성을 다해 걷는다. 신이 있어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신앙과 같은 열망으로 기도를 올린다. “ 신이시여, 우주 대자연이시여, 대지를 굽어 살피소서. 그대(들)의 딸과 아들을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 성당 지하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 >

순례의 길고 먼 여정이 수렴되는 소실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저 멀리 보인다.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염원하며 산화한 야고보(Santiago)가 묻힌 곳이다. 순례는 순교자의 정신을 기리는 살아 있는 자들의 고행 의식이다. 오늘도 순례자들은 야고보의 시신 위에서 고행의 대가로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빌 것이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번영과 인류의 평화를 간절히 외칠 것이다.      


내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빗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성스러운 도시의 골목과 거리를 지난다. 도시의 일상은 여느 도시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길가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나 강아지와 함께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그동안 보아 왔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어귀에 이른다. 먼저 도착한 순례길의 동무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참았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밀려온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헤치며 수많은 시간을 함께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 그리고 내 아내가 나의 야고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 주며 걸어온 시간을 추억하고 노고를 치하한다. 뜨거워진 가슴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광장으로 들어선다. 이미 광장 안은 긴 시간을 걸으며 마음속에 다졌던 기도와 염원들이 기쁨과 환호로 뿜어져 나온 듯 뜨거운 열기와 빛으로 가득하다. 오늘 밤하늘에 별이 뜨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 사람들이 산티아고의 별들이기 때문이다.  

 망연히 앉아 성당의 정면을 올려다본다.  신발을 벗어 발 앞에 가지런히 놓고 아픈 발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신께 나만의 은밀한 기도를 올린다.

 저 하늘 위에서 “여기가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니라!”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와닿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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