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옛날 산티아고에 쏟아졌던 별을 보기 위해 우리는 성당으로 나갔습니다. 밤 12시 골목의 집들은 불이 꺼져 있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든 시간입니다.
성당 광장을 향해 골목 언덕길을 오르는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와 같이 잠을 못 이루는 순례자들이 모여 광장에서 환희의 순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함께 길을 걸었던 시크한 아르헨티나 아저씨, 영화학도 플로라와 알란, 독일 CEO 피에르와 랄프 그리고 별명이 ‘엠마 왓슨’인 미국인 처녀와 그밖에 이름 모를 순례자들이 한데 어울려 불빛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높이 떠 있는 별과 그 아래 고색창연하게 서 있는 성당의 첨탑을 바라보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뒤늦게 올라온 우리를 발견하자 “순옥, 원일” 이름을 부르며 뛰어옵니다. 이 감동의 물결 앞에 다시 눈물이 쏟아집니다. 알란이 자기 아버지 나이인 우리를 꽉 끌어안더니 귀에 속삭입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살 거야”
다음 날 우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정오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순례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을 하고 시작하는 미사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성스러워 뜨거운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듭니다. 8명의 수사들이 힘을 다해 흔드는 황금빛 향로가 대성당의 천장을 비행하며 순례자들의 머리 위를 오갈 때 형언할 수 없는 느낌과 함께 벅찬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34일간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합니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는 자신이 꾼 꿈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숱한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고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을 발견합니다. 아버지가 바라던 신학교를 그만두고 양치기가 되고, 스페인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가는 모험을 합니다. 그렇게 건너간 아프리카 탕헤르에서 가지고 간 돈을 몽땅 잃고 좌절하지만 다시 크리스탈 가게에서 정착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자신의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피라미드로 향합니다.
우리는 산티아고 34일을 끝내고 <연금술사> 산티아고의 흔적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납니다. 스페인 남부 타리파로 향합니다. 타리파로 가는 길은 지난합니다. 세비야에서 타리파로 이동하는데 예약했던 2시 버스를 놓쳤습니다. 표를 바꿔 우여곡절 끝에 늦게 타리파(Tarifa)에 도착합니다.
바다가 있는 타리파(Tarifa)는 북부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입니다.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분위기가 혼합되어 매우 아름다운 작은 도시입니다. 구 시가지의 하얀 집과 좁은 골목에 위치한 호텔은 이슬람식 건물입니다. 친절한 남자 주인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갑니다. 방이 예술입니다. 이슬람 건축물을 동굴집처럼 꾸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중정을 거실로 개조하여 천정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방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 공간과 욕조를 화강암으로 회칠하여 가림막을 세웠을 뿐 공간이 침실과 하나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기분 좋게 늦은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러 나갑니다. 주인장에게 추천받은 식당은 워낙 사람들이 많아 이름을 적어 놓고 순번을 기다립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가 10시 40분에 저녁식사를 하며 타리파의 밤을 맞이합니다. 타리파는 이곳 이베리아 남부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이슬람 세계였습니다. 레콩키스타가 진행되면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이 물러나고 카톨릭 세상으로 바뀝니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 등의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지요. 14킬로미터 바다를 건너면 아프리카 탕헤르에 닿습니다. 두 곳은 전쟁과 평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교류하고 섞였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탕헤르(Tanger)를 향해 부두로 나갑니다. 지브롤터 이름으로 명명된 해협은 대개 물살이 좀 빠릅니다. 물빛은 밝은 코발트 빛으로 아름답고 구름 없는 하늘은 그지없이 짙푸르고 태양은 강렬합니다. 그늘은 선선하고, 햇볕은 따가운 사막의 건조 기후입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라 서둘러 대형 유람선에 수속을 밟아 올라섭니다. 바다 국경을 넘는 거라 출입국과 승선 서류를 작성하고 코비드 확인증을 제시합니다.
배에 올라 한 시간 여를 가니 아프리카 해안입니다. 하선 전에 입국 심사를 하고 육지에 올라설 때는 간단한 짐 검사와 여권 확인 정도로 수월하게 통과하는 걸로 보아 두 도시 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탕헤르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언덕 위에 하얀 네모 집들이 매우 인상적인 곳입니다. 언덕을 둘러싸고 성벽을 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현대적 도시를 입힌 모양입니다. 탕헤르 구시가지는 서울의 안국동이나 북촌식으로 개량이 된 듯 획일화되고 상업화된 느낌입니다. 가죽과 천 종류의 수공예품 상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작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과일과 고기와 생선을 파는 상점들이 나옵니다. 무슬림이 90%가 넘게 사는 곳이라 고기는 물론 소고기와 닭고기뿐입니다. 무척 싱싱해 보입니다.
온통 아랍어로 쓰여 있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우리는 이층 도시 관광버스를 탑니다. 첫 번째 코스는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인데 생각보다 큰 탕헤르 시가지의 규모에 놀랍니다. 다음으로 외곽을 도는 코스를 따라 헤라클레스 동굴을 비롯하여 해나 절벽과 이름다운 이슬람 등대 그리고 세계 유명인들의 별장 등을 구경하며 탕헤르를 즐깁니다. 도시는 관광객들과 차도르를 입은 아프리카 현지인들로 북적입니다.
어느새 지브롤터 해안을 따라 언덕 위에 올라서 있는 탕헤르의 집들이 저녁 햇살에 물들어 갑니다. 돌아가는 배 시간이 촉박하여 해지는 모습은 남겨두고 탕헤르를 떠납니다.
아쉬운 마음을 타리파의 저녁노을로 대신합니다. 해안의 성벽과 활처럼 뻗어 있는 해안선 그리고 지브롤터 바다가 연출하는 타리파의 저녁은 짙은 오렌지색 감성을 느끼게 합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진 산책길의 풍경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입니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를 따라온 타리파의 밤이 깊어가며 비가 내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다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꿈의 실현을 포기하고 정해진 세상의 틀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며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게 되는 것이지요. 안온한 틀 안을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몽상가라 하며 세상에서 소외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꿈을 잃고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라도 꿈을 찾으려 하면 다 늦은 나이에 무슨 꿈이냐며 평가절하도 당합니다. 꿈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용기를 철부지 취급합니다. 힌두교에서는 나이 60이 되면 이전 생의 업을 다했으니 다음 생을 위해 길을 떠납니다. 자신을 깨닫고 다음 생으로 떠나기 위한 것이지요.
어릴 때 현실의 벽에 막혀 꿈을 펼치지 못했다면 퇴직 이후라도 잃었던 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퇴직 이후의 자유가 아닐까요? 자유는 용기 없이는 획득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며 잘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날 것인지 등을 생각하게 해 주는 지난 34일의 여정은 내 인생 최고의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의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길을 걷다가 만난 어느 젊은이의 묘비명이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 나의 검을 찾기를 바라면서 34일을 걸어왔습니다. 하루 평균 25km 이상 두 발로 걸었고 저녁에는 그것을 글로 걷는 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냈습니다.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나의 검은 두 발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 걷는 것이었습니다.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교감하고, 소통하고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기쁨을 준다는 것을 이 길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꿈결 같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장을 덮으려 합니다.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읽고 난 기분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 뒤에 아쉬움과 공허함이 마음의 한 켠을 휘저어 놓습니다. 삶도 이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는 또 다른 순례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길을 다시 걸을 생각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습니다. 전에 비해 단단해진 몸이 주는 자신감도 한몫합니다. 건강한 몸에 담긴 맑은 영혼도 충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