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를 걷기 위해서 마츠시마 관광호텔을 떠나 레이호쿠 마치로 이동한다. 이곳은 아마쿠사 제도를 이루는 큰 섬 두 개 중에서 하도(下道), 즉 아마쿠사 시모시마의 북쪽에 있는 곳이다. 이른 새벽 일어나 체크 아웃을 하며 친절한 지배인 마루다 하루키씨를 찾았으나 출근 전이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마츠시마를 떠난다. 낯선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사람이다.
< 아마쿠사-레이후쿠 코스 >
도착한 도미오카 항에서 지도를 받아 하얀 배들이 떠 있는 항구를 걷는다. 안쪽으로 하얀 흙벽이 아름다운 ‘하겐도테(百件土手)’로 불리는 돌담이 길게 뻗어 있다. 그 너머에 도미오카성이 우뚝 솟아 있다.
< 아마쿠사 레이호쿠 시작점 >
높고 단단해 보이는 성벽을 돌아 길을 꺾으니 옛날에 대관소가 있던 ‘산노마루’이다. 빨간색 도리 수십 개가 깃발처럼 도열해 있는 계단을 오른다. 대나무 숲 사잇길은 정오가 다 되는 시간인데도 서늘하다. 계단의 끝까지 오르니 도미오카 성을 둘러싼 흰색 벽과 돌담이 나타난다. 꽤 높이 올라와서인지 마을과 바다가 모두 성 아래에 있다.
도미오카 성은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1637년) 때 정부군과 싸워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사기가 충천했던 농민군이 총공세를 펼쳤던 곳이다. 그러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던 도미오카 성은 생각보다 견고하여 결국 농민군은 성을 포기하고 철수하게 된다. 이후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 2005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제법 규모도 크고 역사 전시관도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니노마루 광장에는 4명의 인물 동상이 있다. 가쓰가이슈(1800년대 정치가), 라이산요(에도 시대 역사가), 스즈키 시게나리(아마쿠사 초대 대관), 스즈키 산쇼(승려)이다. 친절하게도 동상에 대한 설명이 한글로 되어 있어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그중 ‘스즈키 시게나리’는 아마쿠사 제도에서 존경받는 대표적 인물이다. 무거운 세금으로 고통받는 도민들을 위해 1653년 막부에 ‘석고(고쿠다카)반감’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목숨까지 버린다. 그의 죽음으로 논란이 일자, 마침내 6년 뒤 아마쿠사 제도의 세금을 반으로 탕감하는 정책을 막부에서 결정하게 된다.
성을 나와 동백나무 길을 내려가니 한 사람만 간신히 걸을 수 있는 푸른 밭둑 길이 이어진다. 농한기로 작물이 없는 밭에 민들레가 무릎 높이까지 자라고 한쪽의 도랑에 물이 흐른다. 밭 저편에서는 농부들이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다.
바다를 왼편에 두고 벚나무가 양쪽으로 서 있는 곤겐야마 산책로를 걷는다. 어디선가 12시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마을마다 성당이 있는 유럽과 달리 일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이곳 아마쿠사 제도에서 성당의 종소리를 듣다니 참으로 놀랍다.
내친김에 저 멀리 보이는 도미오카성을 배경 삼아 조촐한 점심을 펼치니 파도 소리가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곤게야마를 내려와 마을 길로 나왔는데, 쭉 뻗은 대로를 쫓아가다 길을 잃고 만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 눈이 뚫어져라리본을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간신히 밭둑에 파란색 페인트로 방향 표시를 해둔 모양을 찾았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폐가가 나온다. 그리고 숲이 우거진 산이 가로막고 있다. 점입가경으로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더니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다행히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 이 길로 올라가 쭉 돌아가면 된다.”라고 설명을 해주셔서 산길을 돌아 도미오카 해역 공원에 다다른다.
하얀 모래와 소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는 도미오카 해수욕장을 거쳐 국도를 건넌다.
건너편으로 멀리 운젠다카(雲仙岳)가 보이는 잔잔한 바다에는 파래 양식용 말뚝이 촘촘히 박혀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타일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바닷길을 걸어 스즈키 시게나리를 모신 즈이린지(瑞林寺)의 산문으로 들어선다. 공적비의 글씨가 모두 닳아 없어져 자세한 내용을 볼 수가 없다.
< 스즈키 시게나리의 공적비 >
절을 지나 공동묘지를 지나고 다시 마을로 향한다. 골목길을 가는데 길 가운데에 작은 짐승 하나가 부들부들 고개를 떨구며 죽어가고 있다. 처음 보는 작은 짐승이라 기괴하고 섬뜩하였으나, 일단 먹을 것을 주어 보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떡을 잘게 부수어 던져 주니 냄새를 맡다가 힘겹게 받아먹는다. 이제 살 수도 있겠거니 안심이 된다. 한편으론 이 길에는 오래된 혼백들이 아직도 위로받지 못하고 떠도는 듯한 기운이 있는 듯하다. 뜻밖에 본 길 위의 작은 짐승이 그 혼백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마을에는 하얀색 벽의 ‘구로세 화과자점’이 있다. 1873년에 창업하였고 현재 7대와 8대손이 가업을 이어받아 화과자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명성에 비해 그리 요란하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기까지 한 모습에 절로 장인의 품격이 느껴진다.
< 구로세 화과자점 >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가 사적인 <도미오카 기리스탄 공적비>가 보인다. 1637년 시마바라 아마쿠사 봉기로 목숨을 잃은 1만여 명의 목을 세 군데로 나눠 묻은 곳 중 하나라 한다. 10년 후 초대 대관인 스즈키 시게나리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기독교가 탄압받고 있던 냉엄한 시기에 지방 관리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그의 애민 사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 길은 석양을 볼 수 있는 <시라키오 해변>이다. 비교적 파도의 질이 안정적이어서 서핑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지역이라 하나, 철 지난 바닷가에는 소나무 사이로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또다시 길은 밭 사이를 가로질러 <엔쓰지산>을 오르고 내리며 100Ha나 되는 <시키 평야>로 향하게 한다. 거세지는 빗줄기로 밭에 심어진 양상추와 녹색의 파잎이 한층 더 싱그러움을 발한다. 미래 시대에는 드넓은 평야를 가지고 대대로 농업을 이어가는 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논과 밭이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산자락을 잘라 전원주택을 짓는 우리나라가 걱정되는 순간이다.
이제 길은 막바지 목적지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시키 성터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성터만 남아 있는 이곳은 210명의 기리스탄들을 가시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가혹한 박해의 현장이었다.
오르막을 오르니 <시키 린센>을 모신 신사가 있는 공원이 나온다. 레이호쿠정 시키는 아마쿠사 최초로 기독교 전래지가 되었고, 나아가 ‘기독교의 섬’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시키린센’이다.
오늘의 종착지 레이호쿠 온천센터인 린센노유에 오르기 전 핵병기에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는 비가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드디어 ‘레이호쿠 규슈 올레에 잘 오셨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몸이 비에 젖고 심신이 지쳐 온천욕을 하려는데, 주민 외에 외부인들의 입장을 금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코로나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나, 피로에 지친 올레꾼에게는 가혹한 날이다.
그러나 피곤함에 지친 몸과는 달리 가슴은 일렁이는 횃불처럼 화끈거리고, 머리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한다. 종일 죽음을 불사하며 종교적 신념을 지켜냈던 농민들과 이들의 고충을 진심으로 아파했던 시즈키 시게나리의 삶을 따라 걸으며 충만해진 나를 만났던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