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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단 Sep 13. 2024

빨간 라이터

“그럼, 그때까지 500만원 준비해 주세요.”

2년 전 아빠와의 통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당신의 60세를 기념하여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미국 땅을 우리 네 식구가 다 함께 밟아보자는 것이 통화의 내용이었다. “아빠 인생은 지금부터” 라든가 “꽃중년“같은 문구가 박힌 주문 제작 케이크에 돈다발을 심어, 장식과 함께 돈을 주렁주렁 뽑아내는 것이 요즘의 한국식 환갑잔치였지만, 아빠는 ‘환갑’이라는 단어에 없던 알러지도 생길 사람이었다. 50대 후반이 되며 확연히 늘어난 주름살에 셀카 찍기를 거부하는 그는 때때로 회한에 찬 목소리로 “아빠도 이제 늙었잖아...”라고 말하며 나이듦과 복잡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환갑 기념’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그 자리에 ‘12년만의 가족 해외여행’이라는 이름을 채워 넣었다. 명시적인 준비물은 패키지여행 비용 500만원이었으나, 모든 가족여행에는 암묵적인 준비물이 있는 법. 장녀인 나에게 할당된 준비물은 타지에서 예민해질 부모님을 돌볼 정서적 체력과 인내심, 때때로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능숙하게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보력이었다.      


아빠는 여행의 청사진이 머리에 복사될 때까지 계획표를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여행사 홈페이지를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며 날짜별 일정을 외웠고, 시시때때로 전화해 당신이 암기한 일정을 브리핑하며 여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했다. 계획하고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그의 템포에 맞춰, 나는 여행 전부터 나이아가라를, 캐나다의 천섬을, 그리고 뉴욕을 글자로 바삐 오갔다. 여행사 정보에 맞춰 일정표를 만들고, 아빠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수정을 거듭해야만 했다. (물론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에서 그것보다 완벽한 일정표를 제공했고 여행 내내 아무도 내가 만든 일정표는 보지 않았다.)      


이렇게 아빠가 여행의 총대를 멘 채 설렘과 걱정을 오가고 내가 그의 보조를 맞추는 동안, 나머지 가족은 태평했다. 예약부터 결제, 짐 싸기까지 모든 걸 아빠에게 맡기고 느긋한 엄마와 여행 당일 아침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대학생 남동생까지. 우리 가족은 마치 퍼즐 같았다. 아빠가 짜 놓은 퍼즐 틀에 서로 맞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라는 퍼즐 조각들이 억지로 들어가 있는 그런 퍼즐. 오목한 면에 볼록한 조각이 맞춰들어가는 알맞은 조각의 배치라기 보다는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맞닿아 어떻게든 서로를 구겨야 맞춰질 수 있는, 오목한 면이 틀에 닿아 빈 구멍이 나 있는 그런 형국이었다. 각각의 퍼즐 조각이 느끼는 부대낌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그것은 견딜만한 고통을 넘어 익숙한 느낌이 되어 있었고 어느새 일상의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예상된 시나리오로 흘러갈 줄 알았던 미국 여행은 한 통의 전화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우리의 여행 소식을 들은 왕삼촌이 여행에 끼고 싶다고 했고, 이왕 가는 거 필리핀에 혼자 사는 큰이모도 데리고 가자고 했으며, 거절은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순간부터 “왜 아시아나 안 타고 대한항공이냐”는 말로 의문 아닌 의문을 제기한 그는 아빠가 깔고 앉아있던 여행의 주인공 자리를 손쉽게 뺏들어 앉았다. 바닥부터 시작해 중소기업까지 사업을 키워낸 삼촌은 인생의 운전대를 양손으로 단단히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운전대를 쥐고 있는 한, 방향이 아무리 산으로 가도 속력이 아무리 올라가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힘의 논리를 적용하는 그에게, 우리는 동등한 가족이 아닌 직원에 가까웠다. 어느새 여행을 준비하는 우리 가족은 예의 그 퍼즐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익숙한 불편함에서 벗어난 자유도 잠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괴로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여행은 오늘날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여행이 어땠냐는 물음에 “가족여행이었어” 라는 한 마디 대답은 부연설명 없이 질문한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아...’하는 작은 탄식을 자아낸다. 가족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잘 알고 익숙하다는점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괴로워진다. 각자의 포지션이 명확한 역할놀이의 모습을 띠는 ‘가족’이라는 관념 안에서, 시시각각 다른 존재로 변화하던 한 사람은 예의 고정적인 역할에 매여버린다. 서로 잘 안다는-주로 착각인 경우가 많다- 것은 모순적이게도 지금의 개개인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에게서 단절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가족여행의 실정이 이러한데, 그것도 모자라 왕삼촌네 부부와 큰이모까지 합류하며 집단의 덩치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집단의 덩치와 개인의 존재는 반비례하는 법. 우리는 어떻게든 여행을 잘 마치겠다는 일념 하에 각자의 존재를 숨기고 하나의 덩어리로 엉겨붙었다.    

  

미국 JFK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정말 한 몸이 되었다. 열흘간 함께 할 55명의 패키지 여행객들 중 최다인원인 ‘7명 팀’이 우리의 이름이 된 것이다. 미국 백악관 구경을 마친 후 버스에서 인원 체크를 할 때도, 호텔에서 객실키를 받을 때도,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우리는 ‘7명 팀’으로 불렸다. 7명 팀 안에서도 나와 동생은 가장 희미하게 존재했다. 큰 목소리로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외치는 왕삼촌과 최대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여행을 완성하고자 하는 아빠의 비서가 되어 활약을 할 때만 보이는 듯 했다. 한국에서의 내 삶과 정체성, 독립 후 쌓아온 나라는 사람은 오롯이 내 안에만 존재했다. 여행 동안 내 이름이 불리는 일은 심부름을 하거나 잔소리를 들을 때, 급하게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 뿐이었다. 누구도 내 안에 갇혀있는 그 사람을 알아보며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북적이는 대형버스 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고립되어 갔고,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 못할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담배를 찾았다. 장거리 이동 중 들른 휴게소 편의점에서 부모님 눈을 피해 몰래 담배를 샀고 식사 중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나는 버스로 달려가 몰래 산 담배를 꺼내 들었다. 문제는 라이터가 없었다. 우리가 관광을 하고 올 때면 항상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운전기사가 생각이 났고, 한시가 급했던 나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했다. 흔쾌히 자신의 라이터를 내민 그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린 후 급히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인 담배에 입을 대고 숨을 깊이 들이쉬자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모금, 두 모금. 숨을 들이쉬고 연기를 내뱉는 행위에 그간의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빠져나가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들던 중... 인기척이 들렸다. 운전기사가 담배 한 대를 들고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급히 나만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그에게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담배 피는 한국 여자애는 처음 봐요.” 그가 말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저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나이를 듣더니 10대인 줄 알았다며 놀랐다 말했고,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여행 중 누군가 나에게 한 첫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을 시작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 여행객들을 보면 아저씨들은 늘 담배를 피는데 여자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흡연자가 없었다는 그의 말에 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 또한 부모님 몰래 담배를 피는 거라 고백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과 짧은 답이 오간 후 나의 담배는 손가락 한 마디로 줄어 있었다. 나는 이제 가 봐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망치듯 식당에서 빠져나왔던 나의 절박한 발걸음은 돌아가는 길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점심 식사 후 5시간을 더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놓인 짐가방 중 자신의 캐리어를 찾고, 객실 카드를 받기 위해 호텔 로비에 서 있었다. 피곤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나의 손을 건드린 건 빨간 라이터였다. 호텔로 걸어 들어온 그가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라이터 하나를 쥐어주고 갔다. 내 얼굴에 놀란 웃음이 번졌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로비로 향했지만 나는 그의 뒷모습과 라이터를 한참 번갈아 쳐다봤다. 그날 밤, 나의 여독을 풀어준 건 담배가 아닌 그의 라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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