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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Oct 13. 2022

문화적으로는 한프인입니다


해외를 여행한 적도 없고 유학을 다녀온 일가친척 하나 없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어릴 때부터 서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항상 답답하게 느껴지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에 중학생 때 잠시 아빠가 중국을 오가며 생활할 때, 이민 가서 국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졸랐던 것은 나에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국제 학교에 가는 꿈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한국 가요가 아닌 팝송만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사를 잘 이해하고 싶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정말로 영어를 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양 문화를 접하게 되고 내 일상생활을 서서히 물들였다. 동시에 외국어 자체에 흥미를 많이 느껴서 영어 외 다른 알파벳 언어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프랑스어를 독학해 보기로 했고, 혼자 공부해 봐도 마음에 썩 드는 프랑스어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영문과를 권하는 담임 선생님을 무시하고 고집대로 원하는 학부에 수시 원서를 넣었고 그렇게 모 대학 제2외국어 학부에 합격했을 때 내 전공 결정에 대한 선생님들의 타박이 심했다. 


"프랑스어 배워서 나중에 뭐에 써먹으려고? 제2외국어라면 중국어 전공해야지."


뭐든 내가 알아서 써먹을 텐데...... 그 훈수 같지 않은 훈수는 늘 그랬듯 귓등으로 흘렸다. 그렇게 남들보다 1년 일찍 학교에 입학한 '빠른 년도생'으로서 내 대학 생활은 19살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과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젊은 한국인 교수님들과 프랑스인 교수님들이 있어서 그런지 인문학부 다른 과와 비교할 때에도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권위를 싫어하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좋아하는 나에겐 딱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프랑스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4학년 때에는 벨기에 프랑스어권 지방에 교환학생도 다녀오기도 했지만 대학 커리큘럼엔 문학, 언어뿐 아니라 문화, 정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문화를 19살, 만 18살부터 주기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문화적 충격을 받을만한 것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파리가 꽤 더럽다거나, 프랑스의 행정이 엉망이라거나, 파리 사람이 불친절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시니컬하고 톡 쏘는 말장난을 좋아하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인 24살에 프랑스인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와는 4년 넘게 사귀다 헤어졌는데 전통적인 프랑스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 그때까진 몰랐던 프랑스의 면모 역시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 자존감 수준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에선 직설적인 편이라 독설가라고 평가를 받던 내가 프랑스인 사이에선 별다르게 모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란 점이 내겐 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프랑스인 친구들과 남자 친구는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로 어린 시절부터 가정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로 많은 굴곡을 겪고, 심한 우울증으로 두 번이나 인생의 고비를 넘긴 나를 '하자가 좀 있는 사람'이 아닌 '친구지만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주었다. 한국 사회에선 숨겨야 하는 것들이 나의 상처가 빛이 조금 바랬을지도 모르지만 훈장처럼 느껴졌다. 어떤 일을 겪든 그 일을 극복하고 결과로 존재하는 '지금의 나'를 존중하는 법을 20대 중반에 배우게 된 것이었다. 



여기 이민을 오고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인 '프랑스에서 문화적을 놀란 것은 없어?'라는 질문에 나는 고민을 절레절레 젓는다. 인생의 절반을 프랑스 문화와 함께 했기에 놀랄만한 것은 이미 옛날에 놀라서 이번에 이민 오고 특별히 충격받은 점은 없다고. 나는 문화적으로 절반은 한국식, 남은 절반은 프랑스식에 익숙하다고 말한다. 


나와 벨기에에서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화교 친구 디가 프랑스로의 이민 직전 10여 년 만에 연락을 해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중국에 잠깐 가족을 만나러 갔다 첫사랑과 재회해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디가 가족사진을 보내주어 친구로서 축하 인사를 건넸고, 나의 근황도 전했다. 현재 프랑스에 잠시 머물고 있으며 곧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여기로 와서 살 예정이라고 하며 나와 남자 친구 사진을 보냈다.


그때 그녀는 별안간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네 소식을 들으니 기뻐. 근데 그간 한국 남자들은 안 만났니? 나는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를 만나는 것이 같이 이야기할 것도 더 많고, 같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 외국인을 만나면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차이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잖아.”


나는 어떻게 답장의 수위를 조절할까 고민하다 아래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후 그녀는 답장이 없었다. 


“아니, 나는 우리가 연락이 끊긴 동안 프랑스 남자만 사귀었어. 사귀었던 한국인 남자 친구들과 모두 그다지 좋게 끝나지 않았어. 그 사이에 내가 겪은 일은 차차 말해줄게. 짧게 요약하면 문화적으로 나는 나 스스로가 100퍼센트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프랑스인이라고 느낀다는 것은 아니지만 난 현재 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고 여겨.”


물론 지금도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프랑스식 일 처리에 화가 날 때도 많다. 놀랍든 그렇지 않든 이건 프랑스 사람도 짜증 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누구든 현 상황을 변화시킬 생각은 없는 아이러니함이 외국인 입장에선 우습지만 말이다. 뭐든 좀 느리지만 어떻게든 굴러가는 프랑스식 방법에 익숙해만 진다면 그 속에서 어딘가 굉장히 인간적인 구석도 발견할 수 있기는 하다. 예외를 감안해 주는 유연함이라든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관대함 같은 것 말이다. 


한국에선 '혹시 교포예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을 정도임에도 프랑스에서는 한국어를 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한국인 버전의 내가 가동된다. 하지만 이 모순조차 이제는 내 정체성으로서 받아들인다. 문화적 혼종인 채로 사는 것도 어쩌면 지극히 나답지 않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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