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샬롯H Oct 11. 2022

내향인으로 외국에 산다는 것



프랑스엔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쉽게 시선을 받기 마련이며, 특히 나처럼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사는 경우엔 더욱 적다. 프랑스인들은 동양 사람 얼굴을 전반적으로 잘 구분하지 못하고, 동북아시아계 얼굴은 흔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 발을 디뎠던 2007년에 비하면 인종차별은 상전벽해에 가깝다고 할 만큼 줄었다. 나를 마주치면 '곤니찌와', '니하오'를 남발하던 사람들은 전혀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나 당황스러운 때에서도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지만, 예전에 말을 어버버 하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은 상처로 남아 프랑스로 온 지 일 년 반이 넘어가고 비교적 사람들이 친절한 툴루즈에 살면서도 긴장의 끈은 완전하게 놓지 않고 살고 있다. 혹시나 도를 넘는 무례한 인종차별주의자를 마주친다면 언제든 프랑스어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스트레스라고 할까.


내향적이고 예민한 사람에게 이런 환경은 이중고인데, 쉽게 타인에게 말을 건네지도 못하는데 인종차별에까지 정신적으로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것을 신기해했다. 왜냐하면 평소엔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심지어 말을 할 때 좀 작게 말하는 경향까지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게 말 좀 크게 하라고 자주 다그쳤고, 내가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지는 경우는 대개 친한 사람과의 일대일 상황이다. 


어릴 땐 마을버스 승하차 벨이 없었고 기사 아저씨에게 '내려주세요!'라고 말을 해야 내릴 수 있었는데 나는 고학년이 되어서도 그 말을 하지 못해 내리겠다고 말하는 승객이 없으면 서너 정거장까지도 더 지나가서 내리곤 했다. 20대 초에는 이런 성격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자체를 망설였지만 주머니 사정상 안 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고군분투했지만 주로 판매, 통역, 강사 등의 일을 하다 보니 차차 훈련이 되었고, 업무를 통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꽤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방식에 많이 익숙해져서 일을 할 때는 훨씬 더 외향적인 다른 페르소나가 역할을 수행하고 사적 생활에선 본래 성격대로 살아가는 식으로, 마치 조금 다른 두 가지 성격을 가진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되는 때는 불안이나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오면 일은 관성으로 겨우 하지만 본래 성격에 우울함이 추가된 다크 버전이 일상생활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한국에서 불안 장애가 심했을 때는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에 공포가 심해서 말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무인계산대가 있는 매장만을 찾았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내가 말을 최소한만 하든 아예 하지 않든,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한국말을 못 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다. 나는 매우 한국인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문제가 달랐다. 


이민 첫 달에는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어야만 했는데, 혼자 가도 됐겠지만 또마가 고맙게도 보호자로 함께 가주었다. 담당자는 신입인지 30분이면 해치우고도 남을 일을 한 시간 넘게 하고 있었고, 우리는 더위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불안도도 높은데 더위로 인한 피로까지 겹치자 나는 아예 말을 할 의지를 상실했다. 내가 대답을 대충 하는 듯 마는 듯하니 담당자는 또마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 분은 프랑스어 할 줄 아나요?(Est-ce qu'elle parle français ?)"


그쯤 되어서야 나도 잠에서 깬 듯이 버벅거리며 대답을 했다. 지금같이 마음이 안정된 시기엔 아주 큰 어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향인으로서 프랑스 생활엔 한국에선 없던 불편함을 겪는다. 그들에게는 내 외모가 대놓고 '외국인'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개 내가 프랑스어를 잘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서서 말을 안 하면 프랑스어를 못해서 그렇다고 넘겨짚는 상황을 여러 번 겪게 되자 가끔은 한국에선 하지 않을 말까지 일부러 길게 말해서 상대방에게 내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죄송한데 제가 포인트 카드를 깜빡 잊고 안 챙겨와서요, 혹시 핸드폰 번호로도 적립 가능한가요? 아마 제 번호로 등록해 놨을 거예요."

"안녕하세요. 제가 소포를 찾으러 왔는데, 신분증과 소포 번호 다 보여드리면 되나요? 아니면 둘 중 하나만으로도 되나요?"


코로나 시국으로 작년에 하나 좋았던 점은 외국인으로서 나를 마주하는 프랑스인들 거의 모두가 내가 관광객 일리 없고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이미 1년 전부터 프랑스가 일반 관광객에게 국경을 열면서 금방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극도의 내향형으로서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나를 또 한 번 시험에 들게 한다. 어쩌면 일상생활용 페르소나를 탄생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전 16화 문화적으로는 한프인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