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방문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고 말하면 항상 '한국이나 가족이 그립지 않으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한국은 그다지 그립지는 않고, 가족보다도 친구들이 많이 그립다'라고 대답한다.
이리나는 가족을 보고 싶지만 내심 그립지는 않은 내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엄격한, 전형적 구소련 스타일의 어머니 아래에서 장녀로 자랐고, 그 연유로 여전히 어머니와 갈등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훈육 태도를 버리고 딸들과 허물없이 지내려고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여전히 응어리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맺힌 마음이 튀어나와 어머니에게 매몰차게 굴 때가 많다고.
왠지 처음부터 우울증과 번아웃 이야기를 터놓고 하게 된 케냐 출신의 와테투도 나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와테투의 어머니는 와테투를 포함하여 네 명의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만 했고, 그래서였는지 말을 안 듣는 경우 신체적인 체벌을 하는 등 굉장히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인 와테투는 어머니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여러 갈등을 겪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편찮아지고 나서야 어머니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처음부터 알 수 없는 연유로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 그 친구 역시 나처럼 소위 '모범적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시절 베프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가 혼자 두 딸을 기르는 집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도 폭력 성향의 아버지 아래에서 엄마와 함께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았다. 20대 중반 정도까지도 가정의 불화는 '외부인'에겐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서 몇몇 친구들과만 이런 속풀이를 했다.
나는 가족 전체라기보다는 여러 친구들 그리고 친동생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자랐고 그렇기에 가족이란 내게 좀 모호한 존재이다. 여기서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내가 이혼 가정 출신이기 때문이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있지만 부모님이란, 그리고 가족이란 울타리를 청소년기부터 상실한 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집의 경우가 아주 특별하다곤 볼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불화가 있었던 부모님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별거를 했고, 내가 대학생 때 이혼 절차를 밟았다. 엄마와 나는 오랜 시간, 여러모로, 많이 부딪쳤다. 엄마는 통제∙명령형 훈육을 했고 사춘기를 겪기 시작한 10대 중반부터 엄마와 하루가 멀다 하고 다퉜다. 20대에 내가 두 번의 우울증을 겪는 사이에도 우리 모녀 관계는 부침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업주부로서만 15년 넘게 살다 별다른 경력, 학력도 없이 갑자기 직업을 구하고 두 명의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을 엄마의 고뇌와 당황, 고군분투를 생각하면 오히려 맘이 짠해진다. 아직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고 용서할 생각도 없다는 이리나에게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힘들지만 가능하다면, 궁극적으론 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최근 마음속 가끔씩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느끼는 이유는 더 이상 엄마 때문은 아니다. 내가 프랑스로 떠나기로 한때에 동생도 결혼을 앞둔 시기라 겸사겸사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가족이 한 번 얼굴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10여 년 만에 부모님이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엄마와 살면서도 아빠와는 20대 중후반까진 연락하고 가끔 만나며 지냈지만 대략 4년 정도 연락이 끊겼었고, 프랑스로 출국하기 대략 1년 전부터 다시 연락이 되고 있었다.
동생의 출가 그리고 나의 출국이 계기가 되어 엄마와 아빠는 다시 만났고, 지난 세월이 도리어 애정의 불씨를 살리는 기폭제가 되어주었는지 재결합하게 되었다. 처음엔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고 미안해하기도 했던 엄마에게 '엄마랑 아빠가 행복하면 됐어. 둘이 이제 잘 살아.'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복잡한 감정이 조금씩 머리를 어지럽혔다.
어릴 때부터 불화, 별거 그리고 이혼으로 그리고 그 후에도 서로가 서로를 헐뜯으며 나와 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나름대로 그 상처에 대한 봉합을 목전에 앞둔 30대 중반이 되었는데 갑자기 재결합이라니? 마치 게임을 거의 마쳐가는데 리셋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날개 아래에서 누렸어야 했던 시간들을 통째로 빼앗긴 것이 다시금 더욱 억울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엄마에 대해서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 한 여인으로서 존중하고 싶고, 용서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아빠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간의 무책임을 모두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애써 십수 년간 손에 피가 날 때까지 박박 지워버린 부모님이란, 아버지란 그 자리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