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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Sep 23. 2022

이상한 자기 편견


성인 발레에 오는 사람은 대략 네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발레를 어릴 때부터 배웠으며 직업으로 삼은 경우, 두 번째는 발레를 계속했지만 취미로 계속해온 부류이다. 이들은 초급 수업에선 볼 수 없으니 중고급 수업과 겹치는 시간대에 한 곁눈질과 우리 반까지 닿는 소문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어릴 때 발레를 배웠지만 중도에 그만둔 경우, 네 번째는 나와 같이 발레를 전혀 배우지 않은 경우이다. 발레에서 만난 친구들은 네 번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초급 수업에는 세 번째 부류가 합류했다. 그들은 어릴 때 배워서 다 잊어버렸다고 하면서도 자세가 좋거나 수업을 곧잘 쉽게 따라갔다. 


나라고 발레를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졸라 초등학생 고학년 시절 체육 센터에서 발레 초급 수업을 끊어 동생과 들은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초급반 아이들과는 다른 나의 신체였다. 나는 2차 성징이 빨라 키도 남보다 일찍 크고, 엉덩이와 허벅지도 발달되기 시작했으며 가슴도 봉긋한 상태였던 것이다. 딱 붙는 타이츠는 그 차이를 더욱 부각했고 왠지 나는 모든 상황이 부끄러웠다. 


이것도 막 시작되던 2차 성징의 영향이었을까? 꽤 유연한 지금과는 달리 몸이 뻣뻣한 편이었는데, 엄마가 우리 수업을 참관하러 왔을 때 발레 선생님이 나에게 가로로 다리 찢기 시키는데 너무 아파 울면서 그 느낌은 확신이 되었다. 결국 발레는 몇 주도 배우지 않은 채 그만두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내가 운동 신경이 없는 몸치라고 많이 했다. 그게 기정사실이 되었던 건 발레 수업 때문만은 아니고 학창 시절 내내 항상 중하위를 맴도는 체육 실기 시험 성적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줄곧 내가 몸치라고 생각하며 30여 년 넘게 살았다.  


잊혔던 꿈을 찾듯 발레를 다시 시도했을 때는 어릴 때 느꼈던 그 바보 같은 느낌이 계속되었다. 몸은 둔한 것 같았고 수업을 잘 따라가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는 경미한 자괴감도 들었다. 그렇게 3달 정도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오고 가기만 반복하다 어느 날 내가 꽤 수업을 잘 따라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레 수업은 바에서 하는 부분(À la barre)과 바를 제외한 바닥을 사용해서 하는 부분(au milieu)으로 나뉜다. 처음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서 바에서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새로 온 학생이나 실력이 조금 더 어설픈 학생들을 내 뒤로 세웠다. 


중앙에서 점프(saut)나 스텝(pas)은 선생님의 시범 동작 이후 잘하는 학생들부터 대각선으로 뛰게끔 지시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대략 세 번째 정도에 뛰게 되었다. 엠마뉘엘은 일어난 상태에서 다리를 세로로 올리는 데블로페(développé) 자세에 대한 설명을 내 다리를 써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최고로 잘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나름 초급반에서는 잘하는 편에 속하게 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데블로페 동작 예시


나는 보통 설명을 듣고 당일 동작을 하면 조금 버벅거리지만, 혼자 집에서 머릿속에서 동작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조금 연습해가면 다음번에는 꽤 잘 해낸다. 내가 몸치로 생각된 이유는 당일 능숙한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성적 성격인 탓으로 혼자 연습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어릴 때도 알았다면, 내 몸에 대한 사용법을 진작에 익혔을 것이다. 


이 '몸치'라는 이상한 편견이 그간 많은 부분에서 나를 가로막았음은 물론이다. 모든 스포츠는 못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커서 그간 시도하지 못한 것이 많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사실 진짜 내가 아니고 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나인 경우 말이다. 


어른들은 내가 어릴 때 내 성격이 '외유내강(外刚内柔)'이라고 자주 말했고, 나는 그런 줄로 알고 자랐다. 그렇게 스스로가 강하다고 참고 참다가 두 번이나 우울증에 무너지고 이 삶을 더 살지 말지를 하루하루 고민하던 인생의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온 이후 나는 나 자신을 도리어 '외강내유(内柔外剛)'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몇 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너는 외유내강이라고 해서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 모른다. 세상에 이렇게 유리 멘탈인 외유내강도 있냐고. 


발레를 배우고 나를 한 번 더 넘어선 이후 나는 두려워했던 것을 하나씩 시도해 보는 중이다. 물론 그것이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라 실패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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