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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석 Nov 18. 2024

카페인 과음

2024.11.16

 축축한 하루다. 먹구름이 이른 시간에 밤을 불러왔고 이런 날은 어김없이 비가 온다.


 툭 툭 쏟아지는 비가 어딘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도 찾아온 스타벅스. 테이블 위로 올려진 뻔하고 빤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오늘 내 하루의 전부 같았다.


 매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알아들을 수 없던 재즈는 내 감정에 소용돌이치기 좋은 OST 같았다. 이런 날은 책도 읽기 싫고 글도 쓰기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지만, 역시 그리고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는 것 밖에 없었고 그래서 다시 펜을 들고 빈 머리로 빈 종이 위에 양심을 죽이고 쓱 쓱 휘갈겨 단어들을 흘려보냈다.


오늘, 내일, 내일

걷고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네가 건져지던 날

 

울어볼까 했는데

전부 말라서 쿡 쿡

눈알이 아프기만 했고


바람이 없었는데

몰아치게 흔들리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는데

대답을 했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쓰고 싶지 않은 날, 쓰면 이런 글이 써진다. 이건 내가 쓴 것이 아닌 내가 쓴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내게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카페인의 몹시 취한 것 같다. 이게 바로 벤티의 위엄威嚴인가.. 오늘도 잠을 설치 것 같다는 생각을 미리 했다. 수능이 끝난 첫 주말이라 그런지 매장 안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서로 오순도순 모여 찌르는 듯한 웃음소리를 허공에 날렸다. 그 소리가 내 귀를 틔게 해 주었을까. 주위에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다 끝나니까 어른이 된 것 같아'

'제주도 말고 부산이나 가자'

'아아,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


 주위에 딸기시럽 같은 상큼함이 내게도 뿌려지는 것 같았다. 짙은 먹구름 사이 항상 빛나고 있는 달 하나가

저기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잡고 있던 펜을 놓고, 다시 잡아 썼다.


오늘, 오늘, 오늘

걷고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내가 건져지던 날

 

울어볼까 했는데

전부 말라서 큭 큭

웃음만 났고


바람이 없었는데

몰아치게 흔들려

이대로라면 너에게도 닿을 것 같아


"안녕, 잘 지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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