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1
저번주까지만 해도 전부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 날씨였는데, 오늘은 봄을 닮은 온기로 가득한 날이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날씨도 기념하는 것일까? 역시 날씨는 언제나 내 마음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멍하니 스타벅스로 가는 길, 골목마다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사랑에 빠진 눈동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아름답다. 그러니,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내 눈동자는 썩은 동태눈깔과 같다. 초라해짐이 익숙했는데 초라해짐에 외로움을 더하니 익숙하지 않은 허함이 빈 속을 채웠다.
스타벅스로 들어와 이 허함을 채우기 위해 달콤함과 조금 폭력적인 자바 칩 프라푸치노를 벤티 사이즈로 시켰다. 크림 위에 초코시럽.. 이 얼마나 폭력적인 음료인가.. 빨대로 슈욱 빨자마자 쏙 쏙 꽂히는 초콜릿 칩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 후.. 달콤함에 달콤함. 이런 행복감이라면 이빨이 전부 썩어도 물 대신 먹고 싶은 생각이었다.
나는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설탕 덩어리라고 기겁하는 마카롱도 내게는 마가렛트 같은 느낌이다. 빵보다 초코가 더 많은 케이크도 칼로리와 당뇨의 위험이 없다면 한 판을 전부 먹어치울 수 있다.
단 맛을 생각하니, 훈련소에서 먹었던 초코파이가 생각이 난다. 훈련소에서 간식으로 나온 초코파이.
군대의 초코파이는 환상에 가까운 음식이라 했던가.. 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끈적한 마시멜로도 샤르르 녹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아까워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니까, 나는 단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도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남자처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연인에게 아주 달아서 미칠 것 같은 빼빼로를 받고 싶었다.
그렇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새침한 표정으로 책이나 읽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여성분과 계속 눈이 마주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잠깐 화장실로 가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테이블 위로, 번호가 적혀 있는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태어나 26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누가 준 것인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건너편으로 앉아 있던 그 여성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이시는 걸 보고, 심장이 미칠 것처럼 두근두근거렸다.
설마 유튜브 몰카는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 혹시 그 유명한 종교 포섭 방식인가도 의심해 봤지만 심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단 향이 나를 달랬다.
하지만, 이어서 쓴 맛이 올라왔다. 느껴지는 이 쓴 맛은 현실이었다. 지금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내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처음 쪽지를 보고 설렜던 그 순간은 두 계절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분명했지만, 싸늘하게 피어나는 현실은 지독하게 암울하기만 했다.
항상 여기저기 훑고 다니며 운명 같은 사랑을 기대하고 꿈꿨지만, 막상 그러한 기회가 눈앞에 오니 두렵기만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사랑을 간절히 바랐고, 이렇게 사랑이 곤히 내 앞에 놓여 있어도 짙은 그림자를 키워 외면하고 도망친다. 나는 아무래도 평생 혼자일 듯싶다..
자바 칩 프라푸치노가 달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톨 사이즈에도 카페인이 100mg 들어 있다.
단 맛으로 유혹하는 카페인의 덫이랄까. 그러니까 오늘 내 하루는 자바 칩 프라푸치노 같았다.
단 맛으로 유혹하던 암울한 현실의 덫.
번호가 적힌 쪽지를 버릴 수는 없어, 지갑에 넣어둔 채 보낼 문자 대신 공책을 펼쳐 시 한 편을 썼다.
오래 분출을 기다렸던 분화구에겐
작은 미동은 폭발을 촉구했다.
어디까지 쏟아오를 지 알 수 없는 불안은
초초함과 함께 설렘을 동반했다.
드디어 만개하던 열꽃
하지만 결국 핀 것엔 향은 사리지고
꽃잎도 전부 떨어져 가시만 남았다.
그래, 꽃말은 누가 짓든 상관없는 일이니
그 말을 이렇게 짖는다.
'小寒'
그러니까, 색은 붉고 몸은 뜨거운데
전부 얼어버려
너를 보고도 웃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