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0
오늘도 천장을 보고 시간을 때리다 죽이고 시간은 아무 말이 없어서 죽이기 편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정말 투명한 시간 시체들이 나를 덮쳐 숨 막혀 죽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대충 씻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무더기에서 옷을 골라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처음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심장을 움직였다. 그란데 사이즈 투샷 아메리카노는 내게 CPR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두근두근. 플라스틱 잔 밑바닥이 얼음 사이로 보일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일단, 노트를 펴서 첫 문장을 썼다. 준비 없이 흘겨 쓴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타는 것은 모든 허락되지 않은 날'
그다음 흘린 것들은 모두 어색한 단어들과 부끄러운 문장 그리고 허용되지 않은 마침표뿐이었다. 마음을 조금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스타벅스 앱을 열고 아이스 라떼 한 잔을 시켰다.
얼음만 남은 잔을 치우고 가득 찬 잔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채로 다시 노트를 펼쳤다. 눈앞으로 달라진 건 잔 안에 색뿐이었지만 전부가 변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쓴 첫 문장은
'꽃이 없는 빈 나뭇가지를 들어도 행복한 날'
그다음 흘린 것들은 뻔하고 빤한 단어들과 부끄러운 문장 그리고 용서하기 바쁜 마침표였다. 쓱 쓱 쓴 글은 전부 의미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깊게 내 속에 새겨져 작년에 흘린 것을 다시 써 보라 해도 토씨 두 개 정도는 틀리고 다시 써낼 수 있다.
집에서 나올 때는 해가 아직 내 정수리 위에 있었는데, 어느덧 창밖으로 짙은 그림자만 있었다. 매장 안에도 가족들부터 연인 그리고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이 빼곡히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 둘 떠나 빈자리가 많아졌다. 잔은 아직 절반이나 남았는데 꼬르륵. 아직 쓸 글들이 더 남았는데 꼬르륵. 나도 집에 가고 싶어졌다.
어느덧 한 잔 반을 넘기니 두근거림이 손에도 전해졌다. 나는 사실 카페인이 몸에 맞지 않는다. 조금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어서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해야지 진정이 된다.
하지만, 카페인을 줄이거나 피할 수가 없다. 이게 카페인 중독이라는 건가? 하지만 카페인 없이 하루를 보내면 다크서클이 내 몸을 둘러싸 뭐를 하든 누구를 만나든 축 처져 있기만 한다.
A5 노트의 시 네 편 정도 흘겨 적다 보면 머리가 미친 듯이 울리고 미묘하게 구토감도 이른다. 하지만 내가 기다린 순간은 지금이었다. 그러니까 객기로 쓴 글. 그게 정말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다. 배에서는 꼬르륵 고픈 소리와 까르륵 아픈 소리가 바꿔가며 쉬지 않고 난리였고, 손은 금단증상이 아닌 순수한 카페인의 떨림으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펜을 잡고 쓴 첫 문장은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날'
그다음 것들은 아프고 아프고 사랑스러운 단어들과 문장 그리고 뼈가 시린 쉼표였다.
나는 오늘도 내 하루를 미워하기 바쁘다. 나는 여전히 오늘도 나를 미워하기 바쁘다. 마음에 애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티라미슈 하나를 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