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7
오늘도 어김없이 스타벅스에 왔다. 내가 자주 오는 이 지점은 다른 스타벅스 매장과는 다르게 공간이 매우 작은 편이다. 하지만, 2인석보다 1인석이 훨씬 많아 대부분 혼자인 나는 집 바로 앞 스타벅스를 두고 30분을 투자해 이곳으로 온다.
오후 1시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탔는데, 한 중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탔다. 조용하던 버스가 한순간 시끄러운 시장통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활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나도 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종교 단체를 지나 드디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주문할 때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항상 자리에 앉아 사이렌오더로 주문한다. 분명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ENFP가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I가 분명하다 그것도 왕 대문자 I가 분명하다. 주문할 때도 그렇지만 음료를 가지러 갈 때도 이상하게 두근두근한다.. 이 정도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오늘 시킨 음료는 스타벅스의 인기 음료 중 하나인 바닐라 크림 콜드블루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처음에 나는 콜드블루가 디카페인과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항상 카페인을 피하고 싶을 때마다 이 음료를 시켰다.. 바크콜은 담백하게 바닐라와 크림 맛이 나며, 끝에 살짝 쌉쌀한 카페인 맛이 감돈다. 당도를 올리면 더 달게 먹을 수 있지만 그러면 칼로리가 생각보다 높아서 피한다. 바크콜의 카페인은 155mg으로 일반 아메리카노보다 5mg 정도가 더 높다. 그래서 맛과 동시에 카페인을 채울 수 있어 스타벅스 음료 중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음료다. 물론.. 그란데 기준 가격이 6,600원이라 조금 부담이 되기는 한다.
스타벅스 어플을 이용하면 내 닉네임을 정할 수 있고, 음료를 받을 때 파트너분들께서 내 닉네임을 불러주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닉네임을 재밌게 짓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 나도 조금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닉네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차은우로 닉네임을 지었다가.. 그날 거울을 보고 다시 내 이름으로 바꿨다.. 스타벅스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필사다. 지금 필사 중인 책은 이은규 시인님의 '다정한 호칭'이다. 필사하는 이유는 단어의 폭과 문장을 이어가는 법 그리고 음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하는 편이다. 필사를 하는 사람 중 책 한 권을 전부 필사하는 사람과 일정 부분만 필사하는 사람 또는 문장이나 단어만 필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나는 일정 부분만 필사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소설이나 인문학 같은 경우는 문장이나 단어만 필사하지만, 시 같은 경우는 시 한 편 한 편을 필사한다. 보통 시집 한 권당 20편 내외로 필사하는 것 같다.
필사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루의 시집 필사는 보통 4편을 정해두고 하는 데 4편을 필사하는 시간은 대략 40~50분 정도 걸린다. 필사는 학습의 목적을 두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생각하면서 하는 편이라 짧은 시간 안에 필사를 마칠 수 없다. 그래서 집을 나오기 전 1~2편 정도 필사를 하고 스타벅스 안에서는 남은 분량을 필사한다. 그래야 필사를 마치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다.
필사를 마치고 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오늘은 읽을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 바로 글을 썼다. 무작정 글을 많이 쓰는 건 사실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쓰기가 습관이 되어야 하므로 무작정 글을 많이 쓰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쓰기가 이미 몸에 배었다면 오히려 쓰는 것을 잘 조절해야 한다. 글도 김치처럼 어느 정도 숙성의 시간을 가져야 맛이 더 진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무작정 글을 쓴다. 쓴다기보다는 어찌 보면 뱉고 싸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글을 쓰면서 닿고 싶은 지점은 감각의 초월 지점이다. 일필휘지로 글을 휘갈겨 써도 우와스러운 글이 써지는 경지. 거기가 바로 내가 닿고 싶은 곳이다.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이러한 환상을 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환상 때문에 비실비실 거려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환상은 병과 같다고 생각한다. 또한 글은 내게 치명적인 독과 같다고 생각한다.
매일 하루 4편씩 시를 쓰고, 2편 짧은 산문과 2편 짧은 비평을 쓴다. 처음 2편을 쓸 때는 꽤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지만 그 이후부터는 정말 객기로 쓴다. 가끔은 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쓰는 것밖에 없어서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쓰다 보면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이 글도 어느 부분부터는 내가 뭘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의식의 흐름으로 그냥 계속 쓰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니, 글을 더 잘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하루 종일 어쩌면 내일 아침까지도 계속 쓸 수 있다.
하지만 끝을 맺어야 할 때는 끝을 맺어야 한다. 한번 정신없이 글만 계속 쓰다 쓰러진 적이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는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쓰러질 수 없으므로 마침표를 적당할 때 찍어두는 연습을 한다. 스타벅스에서는 글을 끝맺기가 쉽다.
그 방법은 주변에 앉은 커플들을 잠깐씩 보는 것이다. 그럼, 어딘가 속이 허해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잎이 바스러지는 가을 같은 계절에는 이런 방법은 정말 엄청난 효과를 자랑한다. 그러니까, 저기 앉아서 서로의 손을 몇 번이나 부비는 어린 커플을 보면서 이제 마침표를 찍는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