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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Apr 05. 2024

봄에는 아이스라테를 마셔요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이 살랑거리며 분다. 힘차게 얼굴 내민 새싹 옆에는 색색의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라테를 주문한다. 좌우로 흔들면 얼음들이 가볍게 부딪힌다. 그 새로 봄 내음이 피어난다. 봄 햇살에는 자외선 말고도 뭔가 잔뜩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장 보러 마트 가는 길인데 마치 나들이 가는 길처럼 발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길에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봄햇살과 함께라 음료 하나에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인지, 봄이 좋아서 평소 마시던 라테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세상만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것일지 모른다. 해골물을 마시고는 유학길을 마다하고 돌아온 국비유학생 원효대사의 깨달음도 같았겠지. 봄에 들뜨고 설레는 것은 새싹을 내놓고 시작하는 나무처럼 나 역시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그 마음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닌 듯하다.

봄은 계획과 설계의 시간이다. 봄의 나무가 물이 한껏 오른 새순 속의 어린 새싹과 가지들이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잘 모르는 것처럼. 안마당으로 나가던 레빈도 자신의 사랑하는 농장에서 이제 어떤 계획에 착수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자기 안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계획과 설계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나까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얼마 전에 운영하는 SNS의 팔로워가 1천 명이 되었다. 엄청난 수는 아닐지 몰라도 내가 세운 계획이 달성되었다는 생각에 성취감이 가득 느껴졌다. 아이의 목표, 가족의 계획이 아닌 오롯한 나만의 계획과 목표를 세워본 것이 언제였던가. 그런 면에서 아주 신이 나는 성과였다. 마치 망고 갈비 뜯느라 입 주변에 다 묻히는 것 말고 포크로 찍어먹을 수 있게 네모 반듯하게 잘린 망고가 눈앞에 주르륵 쌓여있는 느낌, 비싼 겨울딸기 먹을 때 딸기에 내 이름 쓰여 있어서 나 말고는 손댈 수 없는 느낌. 느껴본 적 없어 생경하지만 마주하면 한껏 신날 일들이다. 이거였구나. 올봄에 유독 더 신나는 이유. 이런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설렌다. 다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나열되었던 것 같아 지루한 자기계발서였는데 내 상황을 지켜본 듯 꼭 들어맞는 조언들이 어느새 가득하다.


어떤 책은 경험과 맞물려야 의미가 바짝 다가온다. 책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발견할 때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훅 들어온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변화가 있다는 것. 책을 다시 읽었다. '그때'안 보이던 내용이 '지금'보이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반영했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신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봄햇살에 들떠 과열양상은 아닌지 찬물을 끼얹어본다. 액셀레이터만 밟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발을 슬쩍 옮겨본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SNS를 하게 된 시작점은 분명 독서다. 독서에 소홀해진 것은 같아 반성해 본다. 다른 일을 한다고 바쁜 척 수박 겉핥기식으로 책을 읽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무엇을 하든 출력을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양의 입력이 필요하다. 출력물을 뽑아내느라 바쁘다고 입력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내 안에 남아있지 않아 뽑아낼 것이 없을 것이다. 밖으로 내보이는 결과물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다면 바깥으로 내뿜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주유하라고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무시하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번만 다녀오고 주유해야지, 가는 길에 주유소가 없었으니 다음에 해야지. 이러다가는 분명 가는 길 중간에 우뚝 멈춰 서고 말 것이다. 비싼 견인차를 불러 목적지는 보지도 못한 채 끌려가야 한다. 내일은 카페에서 아이스라테를 시켜야겠다. 그 길로 커피 들고 내빼지 말고 앉아서 책을 읽어야겠다. 봄햇살에 가득 찬 들뜸과 설렘을 뒤로할 수 없을 테니 야외 테라스에 앉아야겠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하나둘씩 날아와도 펼친 책을 닫지 않을 것이다, 경고등이 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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