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여유 May 22. 2024

강낭콩 생매장 사건

아이가 학교에서 강낭콩 씨앗 몇 개를 가지고 왔다. 심어서 싹을 틔워 학교에 가져가야 한단다. 마침 집에 화분이 있었고 흙이 있었다. 선생님이 빨리 싹튼 친구에게는 강낭콩 씨앗을 더 주신다고 하셨다며 아이는 의지를 다진다.

"그래그래, 열심히 해보자. 심을 수 있지? 잘 심어줘."

물을 줘야 한다며 마트에서 귀여운 분무기를 고르길래 사줬다. 화분은 자고로 바람이 중요하지, 하며 바람 잘 부는 창가에 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한 주가 훌쩍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아이들이 슬슬 싹튼 강낭콩을 가지고 오는지 아이는 반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온다. 아이들도 속도가 다르듯이 식물도 다르겠지. 태평한 마음이었다.

"엄마, 기쁨이는 벌써 본잎이 나왔대."

"그래? 우리 강낭콩은 왜 싹이 안 날까? "

"선생님이 아직 싹 안 튼 친구들한테 씨앗을 몇 개 더 주셨어. 다시 심어볼까?"

우리는 새로 강낭콩을 심었다. 너무 깊게 심지 말고 살짝만 심으라고 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일렀다. 며칠이 지나고 점점 많은 아이가 강낭콩 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 강낭콩은 왜 안 크지?’ 다시 심은 강낭콩이 햇빛을 못 받는 건가 싶어 자리를 옮겨보고, 너무 햇빛을 받나 싶어 또 자리를 옮겨본다. 뭔가 이상하다. 가만 살펴보니 강낭콩이 흙 위로 튀어나와 있다. 어머나?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이렇게 되었나?

"사랑아, 강낭콩이 튀어나와 있던데 다시 잘 심어줄래? 너무 꾹꾹 누르지 말고 살짝만 심어줘."


정말 몰랐다. 강낭콩이 싹을 막 틔우려고 흙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을. 모르면 좀 검색도 해보고 물어보고 알아봤어야 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맛집 찾을 때는 그렇게 검색하더니 왜 검색 한 번을 안 하고 과감하고 용감하게 살겠다는 강낭콩을 생매장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니 반에서 강낭콩 싹이 안 튼 친구는 자기랑 다른 친구 한 명밖에 없단다. 다들 본잎이 나오고 콩주머니까지 열린 친구도 있다고 했다. 아뿔싸, 너무 무신경했구나. 같이 글 쓰는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무정하게 강낭콩을 보내 버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아이의 숙제라는 것을 아는 동기들은 안타까워하면서 다들 자기가 키운 화분 사진을 보내주며 이걸 가져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화원에서 모종을 팔 테니 방문해 보라고 지도까지 보내주며 마음 써주었다. 또다시 깨달았다. 랜선이모들도 이렇게 걱정하는데 너무 무신경했구나. 싹이 안 올라오길래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키우지 않은 사진을 가져가라고 하기도, 다 키운 모종을 사기도 양심에 찔렸다. 그간 내내 무신경해 놓고 이제야 양심을 찾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이소를 방문하니 다행히 강낭콩 재배 세트를 판다. 열댓 개 사고 싶었지만 지나친 것 같아서 세 개를 사 왔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 더 살 걸 그랬나 싶었는데, 강낭콩 씨앗이 두 개씩 들어있는 것은 확인하고 안도했다. 더 이상 실패하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씨앗을 심었다. 작은 화분에도 심고 큰 화분에도 심는다. 물에 젖은 휴지 위에 콩을 올려두어도 싹이 난다고 하니 그것도 해본다. 어지간히 간절해진 마음에 누구 하나라도 싹이 난다면 눈물이 살짝 날 것 같다.

강낭콩 키트를 팔아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마워요, 다이소. 

얼마 전에 본 드라마가 생각난다. 부유하고 넉넉한 집안이지만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주인공은 어릴 적 강낭콩이야기를 한다. 반에서 자기 강낭콩만 싹을 틔우지 않았었고 그게 너무 서럽고 외로웠다고 회상했다. 강낭콩이 안 자라서 어쩌냐며 위로하는 친구에게는 '강낭콩을 싫어한다며, 그깟 강낭콩 때문에 울지 않겠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해놓고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우는 주인공이 나온다. 자기 강낭콩만 싹이 안 튼 것을 가족의 따스한 사랑을 못 받은 것과 연결시켜 생각한 것 같아 주인공이 안쓰러웠다.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가 엄마들이 공통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은 다름 아닌 '태도'다. 문제를 풀다 보면 당연히 틀릴 수 있지만 어려운 문제와 마주했을 때, 적어도 풀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제와 씨름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렇게 화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된다지만 실제로 열심히 애써 풀었는데 정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아이는 아직 배우는 중이고 강낭콩을 다시 심듯이 기회를 다시 줘야 하지 않을까. 강낭콩 씨앗을 열댓 개 심으려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기회를 그쯤은 줘야 하지 않을까. 강낭콩을 무심하게 대한 엄마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 아이의 너그러움을 배워야겠다. 완벽한 엄마가 아닌데 아이는 완벽해지길 바란 것은 아닐지 미안하다. 싹 틔우려는 강낭콩을 흙 속에 묻어버렸듯 아이 장점을 모르는 척 외면한 것은 아닐지 돌아본다. 생각할수록 강낭콩을 고이 보낸 것이 미안해 열심히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어느 날, 문제집을 앞에 두고 열심인 태도를 발견하면 강낭콩에 감사해야겠다. 싹 틔우지 못한 강낭콩이 관대한 엄마를 소환했다면 아이도 가버린 강낭콩이 슬프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강낭콩이 쏘아 올린 공이 인생만사 새옹지마까지 도달했다. 멀리도 갔구나!

누구라도 한 명만 제발.


이전 22화 아빠의 자랑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