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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un 12. 2024

강낭콩 보며 눈물 흘린 사연

 

https://brunch.co.kr/@spacious/177


지난 강낭콩 생매장 사건 이후, 다시 심은 강낭콩을 시시때때로 들여다보았다. 심은 지 하루 만에 싹이 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은 이틀째 되니 조바심이 난다. 혹시 뭔가 또 잘못된 것은 아닐까. 물을 더 줘야 할까, 햇볕이 부족했나. 영양제를 줘볼까. 마음 같아서는 땅을 파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애만 태운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화분으로 달려간다. 어머! 강낭콩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흙을 밀어낸 것이었는데 저번에 도로 묻어버렸으니, 씨앗이 얼마나 낙담했을지 다시 한번 미안하다. 그리고 기특했다. 흙이 무거웠을 텐데 멋지다, 낭콩아!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면 더 잘 클 거라는 조언에 고민하다 낭콩이로 정했다, 빤낭콩. 빨리 크거라! 학급 알림이 왔다. 3일 후에 강낭콩 발표가 있으니, 사진을 준비하라신다. 시간이 얼마 없다. 강낭콩이 조금만 더 빨리 컸으면 좋겠다. 흙을 헤쳐 영양분을 흡수하라고 뿌리를 마사지해 주고 싶다. 줄기를 잡고 쭉쭉이 체조를 시켜주고 싶다. 이런 어이없는 발상을 제외하면 막상 강낭콩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얼마 없다. 물을 적당히 주고 햇볕을 충분히 쐬어주고 창에 놓아 바람을 맞게 해 준다. 결국 커야 하는 것은 강낭콩 자신이다. 낭콩아, 힘을 내보렴! 싹 틔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가 싶더니 그다음은 하루 사이에 쑥쑥 잘도 큰다. 잭과 콩나무 같다. 몇 번의 실패 후에 보는 이 당연한 성장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고맙고 감동스럽다. 다행히 늦지 않게 잘 커 주어 발표에 사진도 낼 수 있다. 아이 역시 자기 강낭콩이 가장 작았지만 발표할 수 있었음에 안도한 듯하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에는 '비교'라는 행위가 기본값으로 존재한다. 아프고 느린 동생이 없었더라도 나는 이 아이를 지금처럼 존재 자체로 고마워하고 기특해할 것인가. 혹은 동생이 영재고 준비 중인 수재였더라도 나는 이 장남을 따스한 눈으로 그저 격려하는 엄마였을까?'


최근에 울며불며 읽었던 이은경 선생님의 에세이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내가 강낭콩을 한번 밀어 넣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특하고 대견하게 생각했을까? 매일매일 고맙다고 잘 크고 있다고 격려했을까? 실패 후 다시 심은 강낭콩을 보듯 아이를 대할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수학 문제 못 풀었다고 혼낼 일도, 영어 숙제 안 했다고 혼낼 일도 없을까? 하지만 책에 나온 대로 현실 육아에서는 비교가 디폴트값인지라 적용이 쉽지 않다. 일부러 실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날 상기시켜 주는 많은 이야기에 감사해야 한다. 코로나 시절에 간절히 바랐던 것은 일상의 회복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마트를 가고 싶었다. 처음 마스크를 벗었을 때는 내가 마셨던 공기가 원래 이렇게 신선했던가, 마트에 원래 사람이 이렇게 북적였던가. 당연했던 것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던가. 그런 느낌이 벌써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 매일 두통에 시달렸을 때는 두통만 없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잘 맞는 약 덕분이었는지, 무언가 나의 마음과 머릿속을 헤집어 놓던 문제가 해결되었던지 어느 날부턴 두통이 사라졌다. 처음 몇 주간은 아침마다 감사했다. 눈을 뜨면 무거운 머리와 함께 두통이 시작되는 날이 많아서 눈 뜨는 게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침이 서른 번이 채 반복되기도 전에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또 다른 소원이 마음에 자리 잡았고, 새로운 욕심에 눈을 번뜩였다. 심하게 겪은 일도 잊히는 것이 순간인 나를 어쩌면 좋을까. 강낭콩을 열심히 돌보면서 실패를 곱씹어야겠다. 그때 그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자체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백점을 맞지 않아도, 보너스를 주지 않아도, 밥을 사주지 않아도 고마운 존재들인데 그런 말을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네가 엄마 딸이라 행복해.’ ‘오늘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녀오다니 고마워.’,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평일 저녁에 같이 야구 볼 수 있어서 즐겁다.’, ‘이렇게 함께 시간 보내서 정말 좋다.’, ‘서로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감사일기를 매일 쓰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 3가지의 감사하는 일을 적어 인증한다. 처음에 감사 일기 쓰는 것은 노력이 필요했다. 6개월 정도가 되어 가는 요즘은 감사가 늘었다. 먼저 양적으로 늘었다. 3개를 적고 나면 더 적고 싶은 것이 생각나 하나를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빈번하다. 질적으로도 늘었다. 예전에는 한참 생각해서 적어야 했다. 지금은 감사가 세밀해졌다. 예전에는 억지 지분이 꽤 되었다면 지금은 진심 지분이 대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한 일상을 감사하며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감사한다. 강낭콩 키우기를 단번에 성공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실패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실패 후에 다시 잘 자라서 감사하다. 감달이 되고 싶다, 감사의 달인.

하늘 향해 쑥쑥 크는 강낭콩들. 고마워!



*'마흔이지만, 아직도 우당탕탕' 연재를 마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당탕탕 하는 저를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신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 유의하세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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