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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29. 2024

여름이 오기 전의 날씨

승준이었다 정말. 하늘색 린넨자켓을 입고 베이지 면바지를 입은 낯익은 승준이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안경을 쓰고 얼굴이 어두운 승준을 볼 때마다 윤혜는 낯설었다. 어느 날은 밥을 먹다 말고 빤히 눈코입을 쳐다본 적도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 걸까?’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어도 승준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알아차렸으면서도 관심이 없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승준이 미소 짓는다. 익숙한 얼굴이다. 윤혜가 아는 승준이다. 지금 승준의 미소는 홍차에 탄 우유 같아서 윤혜 마음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윤혜는 그 미소를 보고 안심하며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인다. 승준은 다가오는 윤혜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승준은 윤혜 손을 잡고 눈을 보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윤혜는 마음속에 꽤 빠른 속도로 많은 말이 떠올랐다.

'뭐가? 나한테 메시지로 이별을 말했던 것이? 아니면 이별을 말했던 것이? 어머니 소식을 조교 언니에게 듣게 한 것이? 어떤 것이?' 이 중에 어느 것도 승준에게 묻지는 못했다. 그냥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승준은 윤혜집 문고리에 걸어둔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윤혜가 좋아하는 가게 파이가 종류별로 가득 들어있었다. 승준은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뒷걸음질 치며 계속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승준은 분명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 어디에서 윤혜가 낯섦을 느꼈는지는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어딘가 낯설다는 것뿐이었다. 집으로 온 윤혜는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파이를 하나 꺼냈다. 가운데 빨간 잼이 들어있는 파이로 골랐다. 파사삭. 한 입 깨문 파이는 부스러기를 만들어내며 겹겹이 쌓여있는 서로를 밀어냈다. 여름 전의 적당한 습기를 파이가 머금었어도 좋았을 뻔했다. 아무래도 그 편이 더 부드러웠겠다고 생각한다. 평소 눅눅한 파이는 질색이라고 말하던 윤혜는 떠오른 생각에 스스로가 약간 낯설어진다. 반쯤 남은 파이를 깨어 물자 더 크게 덩어리 지며 부서져 떨어진다. 파이가 파도와 물방울 사이처럼 산산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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