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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25. 2024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물건

윤혜가 남색 우산을 아끼는 까닭은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 비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윤혜는 우산이 여러 개 있지만 유독 한 우산을 좋아한다. 남색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가 있고 나무로 된 손잡이에는 no more rain이라고 쓰여있다. 널찍해서 웬만해선 빗물이 들이치지 않는다. 강풍도 문제없겠다 싶게 빗살이 촘촘하고 튼튼하다. 비슷한 우산을 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지만 실패였다.

이틀째 비가 꽤 온다. 아직 본격적인 장마철도 아닌데 비가 꽤 많이 내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남색 우산을 꺼내야 하는데, 윤혜는 고민한다.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 행선지에 따라 남색 우산 소지 여부가 결정된다. 윤혜는 두고 왔을 때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한다.

오늘 윤혜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 S그룹사 공통으로 채용하는 인턴에 지원했는데 시험에 통과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평소라면 두고 갔을 텐데 큼지막한 땡땡이우산이 비를 잘 막아줄 것 같아 과감하게 쓰고 가기로 한다. 우산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처음 보는 면접에 관한 걱정을 불식시킨다. 면접은 평이했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묻고,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을 물었다. 면접관들이 대답을 듣고 윤혜를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했을까가 궁금해진다. 합격 발표가 언제였던가를 찾아보려 우산을 팔에 건다.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쳤다. 잃어버리기 딱 좋은 날이라 오는 내내 손에서 우산을 놓지 않았다. 버스에 타기 전에 윤혜는 우산에 묻은 물기를 조심스레 털고 차곡차곡 우산을 개어 접었다. 우산은 승준이 영국 여행을 다녀오며 준 선물이다.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윤혜를 위한 문구를 새기고 윤혜가 좋아하는 색과 무늬를 고려해 고른 것을 윤혜는 단번에 느꼈다. 그러면서도 실용적이라 아주 승준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승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준에 대한 미움은 옅어졌다. 여러 기억이 미화되어 자꾸만 윤혜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모르는 척 우산을 어딘가에 버리고 올지 생각해 본다. 다시 찾으러 갈 수 없는 곳은 어디일지 고민하며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집 앞에 누군가 있다. 승준이다. 집 앞에 승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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